[연중 제5주간 목요일]이교여인의 믿음 (마르코 7,24-30)

2017. 2. 9. 오전 7: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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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목요일]이교여인의 믿음 (마르코 7,24-30)

하느님께서는 온갖 생물을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 이름을 붙여 주게 하시고, 사람을 잠들게 하신 다음 갈빗대를 빼내 여자를 지으신다. (창세 2,18-25)
18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19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에게 데려가시어 그가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셨다. 사람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는 그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 20 이렇게 사람은 모든 집짐승과 하늘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인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찾지 못하였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24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25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는다며 간청한 이교도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신다. (마르코 7,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창세2,18-25)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22~24)

'갈빗대'에 해당하는 '첼라'(tsela; rib) 앞에 정관사 '하'(ha; the)를 연결한 것은 여자를 만든 '갈빗대'가 창세기 2장 21절에서 밝힌 아담에게서 취한 바로 그 갈빗대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여자와 남자가 본래 분리할 수 없는 한몸이었으나, 하느님께서 그 일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셔서, 비로소 이제 남,녀 양성(兩性)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창조 방법은 다른 동물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다른 동물은 암,수 함께 여러 쌍을 동시에 창조하셔서 그 짝이 되게 하셨다(1티모2,13). 따라서 동물은 그 특성에 따라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릴 수도 있고, 때로 짝짓기 대상을 바꾸고 교미가 끝나면 암,수 각자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한 남자가 꼭 한 여자만을 배필로 삼아야 하며, 또한 본래 한몸이므로 죽음이 갈라 놓기 전까지는 결코 헤어져서는 안된다 (마태10,9; '혼일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이와 같인 혼인 제도는 인간의 창조와 동시에 주어진 신성한 것이다.

한편, '그를 사람에게 데려 오시자'에 해당하는 '와예비에하'(wayebieha; and he brought her)를 직역하면, '그러자 그분이 그녀를 인도하셨다'이다. 

여기서 '그러자' 혹은 '그후에'라고 번역할 수 있는 계속적 '와우'(wau; and)가 사용된 것은 하느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 아담에게 데려가기 위함이며, 여자가 창조된 후에 즉시 그녀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음을 나타낸다.

여기 본문은 '인도하다', '출가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 '뽀'(bo)의 사역형이 사용되어 여자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그녀를 몸소 아담에게 인도하셨음을 보여 준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어지는 것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시고 몸소 결합시키셨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창세기 2장 23절의 원문에는 '이야말로(이것을)'에 해당하는 지시 대명사 '조트'(zoth; this)3번 반복된다. 즉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을 가리키는 '이야말로''남자에게서 나왔으니'에 결합된 '이야말로', 그리고 '여자라 불리리라'와 결합된 '이야말로'가 있다.

세 개의 단어가 모두 여성형 단수 지시 대명사인데, 동일한 단어가 이렇게 3번이나 반복된 것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한 여자를 바라보는 아담의 기쁨이 너무나 컸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뼈'에 해당하는 '에쳄'(etsem; bone)'살' 해당하는 '빠사르'(basar; flesh)몸 전체를 대표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뼈''몸'으로 번역된 적이 있고, '살''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이와같이 '몸'을 가리키는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각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향해 나아오고 있는 여자를 본 아담의 기쁘고 감동적인 마음을 잘 보여 준다. 또한 '뼈에서 나온 뼈','살에서 나온 살'이라는 표현은 '뼈 중에 가장 소중한 뼈', '살 중에 가장 소중한 살'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혈육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창세기 2장 23절전 까지사람을 가리킬 때 '아담'(adam)이라는 단어가 쓰였다(창세1,26 2,5.15)  

그러나 창세기 2장 22절에서 '여자'에 해당하는 '잇샤'(ishah; woman)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고, 2장 23절에서 '남자'에 해당하는 '이쉬'(ish; man)라는 단어도 처음 나온다. '남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ish)는 성경에서 2183회 정도 사용되며, 여기처럼 주로 '여성'대비되는 '남성'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 단어의 정확한 어원은 모르지만, '강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또한 '여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잇샤'(ishah)는 여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남자'를 의미하는 '이쉬'(ish)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781회 정도 나오는데, 대부분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여기서 '떠나'에 해당하는 '아자브'(azab; will leave)'남겨 두다', '끊다', '짐을 부리다'는 뜻으로서 원래 속했던 집단과 관계를 청산하고 떠나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결합하여'에 해당하는 '따바크'(dabaq; be united)'붙좇다', '속하다'는 뜻도 있는데,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상호 완전한 소속감가지는 것을 말한다. 끝으로 '된다'에 해당하는 '하야'(hayah; will become) '~이다', '~이 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 '떠나'미완료형으로, '결합하여''된다'완료형으로 사용되었다. '떠나'미완료형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혼인이 지금까지 부모에게 속해 있던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니고 육체적, 인격적으로 책임있는 존재로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계속해서 탈바꿈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결합하여''된다'완료형으로 쓰인 것은,  혼인이란 남녀가 단지 육체적, 형식적인 결합이 아니라 상호간에 노력해서 서로가 상대에게 속해서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마태19,6).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마르코 7,24-30

<자녀와 강아지>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마르 7,25-30).”


여기서 ‘이교도’ 라는 말과 ‘강아지’ 라는 말은 ‘우상숭배자’를 뜻합니다.
‘자녀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빵’은 하느님의 은총을 뜻합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기록되어 있는 대로만 보면, 분명히 여자의 청을 거절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여자의 청을 들어 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덕을 부리신 것일까?
그것은 아니고,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말씀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거절하셨다가 나중에 청을 들어 주셨다는 점에서
요한복음 2장에 있는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성모님의 말씀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도 겉으로만 보면, 분명히 거절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변덕을 부리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어머니,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께서 부탁하시니 바라시는 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로 해석됩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경우에도,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라는 말씀은,
“강아지들에게 자녀들의 빵을 주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네가 간절하게 청하니 바라는 것을 주겠다. 너는 강아지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녀로서 빵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또 당신이 한 번 하신 말씀이나 일을 변덕스럽게 취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는 여자의 말은,
“주님, 이제부터는 강아지로서 살지 않고 자녀로서 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몹시 급하니 우선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여자가 자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의사들을 모두 찾아다녔을 것이고,
마귀를 잘 쫓아낸다고 소문이 난 종교들도 모두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마르 7,25)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여자는 처음에는 자기가 늘 했던 방식으로,
즉 우상에게 소원을 비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께 간청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도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딱한 처지만 보시고
기꺼이 청을 들어 주셨을 텐데,
만일에 여자가 청한 대로 여자의 딸을 고쳐 주시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청하지 않은 은총까지 주셨습니다.
그 은총은 바로 강아지였던 여자를 자녀로 만들어 주신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여자 쪽에서 생각하면,
만일에 여자가 딸을 고치는 일만 생각하고 와서 그것만 청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그랬더라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딸과 함께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우상에게 소원을 빌듯이 예수님께 빌어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만 생각하고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 덕분에
자기가 강아지 상태에 있는 비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더 급하고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여자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서 돌아갔고,
계속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여자는 처음에 청한 은총도 얻었고, 청하지 않은 은총도 얻었습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한결같은 믿음으로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한눈을 팔거나 딴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자녀로서 살지 않고 자꾸만 강아지 상태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게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더라도,
또는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더라도, 하느님과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세속의 어떤 허황한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집착한다면,
(돈이나 권력이나 헛된 인기 같은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집착한다면)
그것도 우상 숭배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인데도 스스로 강아지가 되는 것은,
즉 신앙인이면서도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은,
그것은 큰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하고,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신 분이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그 빵을 주시는 분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그 빵을 잘 받아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억지로 먹이시지는 않습니다.
잘 받아먹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먹게 되고, 먹어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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