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토요일 설날] 준비하여라 (루카 12,35-40)

2017. 1. 28. 오전 5: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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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8일 토요일 설날] 준비하여라 (루카 12,35-40)


오늘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조상들을 기억하며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임을 잊지 말고, 주님의 성실한 종으로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며 살아갑시다.


주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고 이르신다. (민수 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니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이른다. (야고보 4,13-15)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루카 12,35-4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1월 28일 토요일 설 제1독서 (민수6,22-27)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4)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로 번역한 '예바레크카'(yebarekka)는 기본 어근 '빠라크'(barak)강조 능동형 미완료 '예바레크'(yebarek)에 남성 3인칭 단수 접미어 '카'(ka)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런데 '카'(ka)를 직역하면 '그대(너)를' 이며, 따라서 미완료형이 사용된 본문은 '그대를 계속해서 복주옵소서' 라는 뜻이다. 이처럼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계속해서 그대(너)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바란다는 강한 희구형 어법이 사용되었다. 

한편,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복(blessing)도 신약 성경처럼 영적인 측면을 전제하고 있지만, '소유'(신명28,4), '소유와 성공'(욥기42,12), '번성과 번영'(창세24,1), '소유와 생산'(신명33,24), '생산과 건강, 장수'(레위26,4) 등과 같은 현실적 행복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로 번역한 '웨이쉬메레카'(yeishmereka)에서 기본 어근 '샤마르'(shamar)의 일차적 의미는 '지키다'(창세18,19),'살피다'(시편37,37)이다. 이 의미가 발전하여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다','주의하여 돌보다'는 의미의 '살피다', '감찰하다'(시편130,3), '지키다','보살피다'(잠언2,8)란 뜻이 되었다. 

본문의 '지킨다'의 표현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항상 살펴보시며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시편37,28) 여러 가지 질병이나 재해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시편76,4) 의미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하면서 각종 전쟁의 위험과 질병들 그리고 여러 가지 재해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기에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온전하게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5) 

 '비추시고'에 해당하는 '야에르'(yaer)원형 '오르'(or)'비추다'(시편77,19; 97,4),'밝아지다'(창세44,3) 란 뜻이다. 그런데 이 '오르'(or)가 본문처럼 사역형으로 사용될 때는 단순히 어둠을 빛으로 밝힌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무지했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일깨우고, 절망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자를 새로운 희망의 길로 인도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한편 순수한 영이시기에 형체가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얼굴'(phanim; 파님)없으시다. 따라서 본문은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하느님을 인간의 모습에 비유하여 묘사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얼굴'은 가시적인 형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실하신 성품이 당신 백성을 향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즉 이것은 당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하느님의 특별하신 관심과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로 번역된 '위훈네카'(yihunneka)에서 기본 어근 '하난'(hanan)아카드어 '총애를 베풀다'라는 뜻의 '에네누'(enenu)'동정심을 느끼다'라는 뜻의 아라비아어 '한나'(hanna)등과 동일한 어원을 갖는 단어이다. 따라서 '하난'(hanan)'자비를 베풀다','불쌍히 여기다'(2사무12,22; 신명7,2)라는 뜻으로 은혜를 받을 만한 권리가 전혀없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6)  

'들어 보이시고'에 해당하는 '잇사'(issa)원형 '나사'(nasa)'들어올리다'(에제3,14),'높이다'(시편93,3)란 뜻이다. '나사'(nasa)가 '얼굴'을 뜻하는 '파님'(phanim)과 함께 쓰일 때에는 관용적으로 '스스로 자기의 얼굴을 들다','기쁨과 확신에 찬 모습으로 주목하다' 란 뜻이 있다. 

본문은 당신 백성의 죄를 사해 주신 하느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당신 백성들을 주목하실 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한편 동일한 의미의 민수기 6장 25절'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와 비교해 보면, 동사만 다르게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민수기 6장 25절의 동사 '야예르'(yaer)의 원형 '오르'(or)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 애정의 감정적 표현인 반면에, 민수기 6장 26절'들어 보이시고'에 해당하는 '잇사'(issa)의 원형 '나사'(nasa)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의 적극적인 행위가 반영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히브리어 구약 성경에 약 236회 나타나는 '샬롬'(shallom)50회가 전쟁없는'평화'(레위26,6)를 의미한다. 그리고 약 25회 정도가 단순히 인사말로 사용되었고(판관19,20;1사무25,6),  나머지 약 2/3가 평화의 계약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민수25,12; 이사54,10; 에제34,25).

'평화의 계약'(berit shallom; 베릿트 샬롬)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창세15,15)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맺어졌다(1열왕5,12). 그런데 하느님과 맺어진 평화의 계약은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완전한 충족의 상태를 의미한다(말라2,5). 

민수기 6장 26절은 사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평화와 형통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것이므로 '평화의 계약'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27) 

 '그들이 이렇게 ~ 복을 내리겠다'라고 번역된 '웨사무'(yesamu)의 원형 '숨'(sum)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특정한 곳에 '배치하다', '놓다'(2열왕4,29)란 뜻이다.

원문을 직역하면,'그리고 그들은 내 이름을 둘것이다'(And they shall put my name)이다. 그러나 새 성경은 하느님의 이름을 가지게 되는 자가 하느님의 복을 얻는 자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여 '내 이름을 두다' '내 이름을 축복하다','내 이름을 부르면 축복하겠다'라고 의역했다.

한편 누구의 이름을 둔다는 것은 곧 그의 소유(2사무12,28)가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제로부터 '나의 이름'(삐세미; bishemi) '주님의 이름'(뻬셈 예흐와; beshem yehwa)으로 복을 받는 사람은 사제의 소유가 아닌,이름의 주인인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이사63,19).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로 번역된 '알 뻬네 이스라엘'(al bene israel)을 직역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의 위에'(upon the children of Israel)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위에 복을 내리시는 것은 그들의 민족성이 우수하거나 혹은 그들이 남달리 하느님을 향한 신앙심이 두터웠기 때문이 아니었다(신명7,7). 다만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으로 하느님께서는 그들 위에 은혜를 베푸셔서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들과 계약을 맺으시고(창세12,1-3; 15,13-16) 그 계약을 지키셨던 것이다(신명7,8-11).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로 번역된 '아바라켐'(abarakem)''라는 뜻의 1인칭 단수 접미어가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가리키는 독립된 대명사 '나'(ani ;아니)를 또 기록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실 것임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것으로 축복은 사제에 의해 선포되지만,복을 집행하는 주체는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강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아바라켐'이 미완료형으로 사용된 것은 하느님께서 앞으로 계속해서 복을 베푸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1월 28일 토요일 설 복음 (루카12,35-40)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루카 복음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띠를 매다'는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여기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 '불을 켜다' 뜻의 동사 '카이오'(kaio)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에이미'(eimi; be) 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의 기본형 '가모스'(gamos)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혼인 잔치의 집'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의 기본형 '아날뤼오'(analyo)'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설>(2017. 1. 28. 토)(민수 6,22-27; 야고 4,13-15; 루카 12,35-40)


<자만하지 마라.>


설날의 제2독서 말씀은, 야고보서 4장 13절-15절, ‘자만하지 마라.’입니다.
(새해 첫날 묵상 주제로 삼기에 적합한 말씀입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3-15).”


여기서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라는 말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니 내일 할 일을 계획하는 것은 다 소용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계획대로 될 것이라고 자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하고, 재난과 불행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만일에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또 정해져 있는 미래를 바꿀 방법이 없다면?
그러면 우리가 오늘 열심히 살 이유가 없어져 버립니다.
절망에 빠져서 인생을 포기하거나,
희희낙락 하면서 쾌락으로 시간 낭비만 하게 될 것입니다.
처벌받는 것이 확정되어 있다면 오늘의 회개가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구원을 받도록, 아니면 멸망을 당하도록 이미 확정되어 있다면
신앙생활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존재로 만드신 것은,
오늘을 열심히 살아서 내일을 바꿀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정해져 있는 운명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노력해서 내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자기 운명을 미리 알기 위해서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라는 말은,
인간은 허무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데,
그렇지만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서 나온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에 ‘만일에 구원받지 못하면’이라는 말을 넣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에 구원받지 못하면, 우리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와 다를 것 없는 존재가 되고,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하는 것은
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야고 4,15).”


이 말은 모든 신앙인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원하시면’은,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에 대해서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일은 무엇이고, 허락해 주시지 않는 일은 무엇일까?”
“만일에 주님께서 아무것도 허락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일이 성공하면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일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반대로 실패하면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은 일이라고 믿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항상 주님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주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사사건건 간섭하시는 분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또 어떤 일을 했을 때 성공하면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이고
실패하면 허락해 주시지 않은 것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이 말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즉 죄가 되는 일을 계획하거나 실행하면 안 되고,
모두에게 선(善)이 되는 일만 계획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만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심도 죄입니다.)


그리고 누가 보아도 죄가 되는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는데도
자기 욕심대로 되었을 때,
그것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안 됩니다.
주님은 악한 일(죄가 되는 일)을 허락해 주시는 분도 아니고,
도와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주님이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면 사탄이 도와준 것입니다.)
반대로 누가 보아도 모두에게 선이 되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했는데도
실패하거나,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주님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주님 탓을 해도 안 됩니다.
믿음이 흔들려도 안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뜻’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인은 “모든 일은 다 주님 뜻대로 된다.”고 믿는 사람인데,
“주님 뜻대로” 라는 말은,
모든 일을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당신 마음대로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인간이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것은 다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로봇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유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이 있고,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 뜻에 합당한 일을 하면 그것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또 당신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면 그것을 말리시거나 막는 분인데,
인간들 가운데에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자기 욕심대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하와처럼 주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인은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려는 일이 정말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지
항상 잘 묵상하고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라는 뜻도 있지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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