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4주간 수요일] 엘리사벳방문 (루카 1,39-45)

2016. 12. 21. 오전 6: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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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간 수요일] 엘리사벳방문 (루카 1,39-45)

 

아가는 노루나 젊은 사슴처럼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는 연인의 모습을 노래한다.(아가 8-14)
8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9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 같답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10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1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12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13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14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잉태한 마리아가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 문안하자 엘리사벳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루카 1,39-45)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조차도>

 

    아기 예수를 잉태한 소녀 마리아가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여인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한편 거룩하게, 다른 한편 장엄하게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은 아직 스물도 안 된 처녀 마리아입니다. 더구나 정식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뱃속에는 아기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혼모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쪽의 여인은 더 황당했습니다. 너무나 쑥스럽고 머쓱해서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는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산모인 엘리사벳의 나이는 가임연령을 넘어도 훨씬 넘어 이제 인생을 마무리지어야할 그런 나이였는데 아기를 가졌습니다.

    두 분의 만남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참으로 어이없고,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정녕 황당한 대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맞이하며 교회 역사 안에 길이 남을 찬미의 송가, 마리아의 노래를 부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분의 만남 안에는 분명 특별한 누군가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시는 분, 울음을 춤으로 바꾸시는 분, 역경을 순경으로, 고통과 십자가를 축제와 환희로 바꾸시는 분, 성령의 활동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생애 안에, 그리고 엘리사벳의 인생 안에 크게 돋보이는 장면이 한 컷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인생의 부정적인 경험이라 할지라도 더 성장하고 더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도구로 삼는 지속적인 노력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바처럼 삶이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인생이란 우리에게 언제나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끝도 없는 우여곡절과 산전수전, 그 한가운데를 항해해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관건은 수시로 우리네 인생 앞으로 다가오는 삶의 부정적인 경험과 깊은 상처들을 어떻게 다스려나가고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노력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양한 인생의 풍파, 끝도 없는 휘몰아치는 삶의 폭풍, 전혀 예기치도 않았으며 조금도 원치 않았던 인생의 모험 앞에서도 성모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혹독하리만치 극심한 시련 한 가운데를 걸어 가시면서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그녀의 내면에 하느님을 향한 강한 신뢰심과 단순하고 확고한 믿음, 그 어디도 물들지 않은 순수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잠시 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예!’하고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도 또 다시 다양한 초대가 이루어집니다. 때로 성공과 안정, 평화에로의 초대도 있지만, 많은 경우 쓰디쓴 실패, 좌절, 모험에로의 초대도 부지기수입니다.

    때로 좋은 것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지만,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표시로, 좀 더 성장하라는 표시로 우리가 원치 않는 고통과 십자가도 허락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삶의 모든 국면들, 다양한 초대 앞에서 성모님처럼 기쁘게, 기꺼이 ‘예!’라고 응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매 순간 하느님의 초대에 설레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예!’라고 응답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2011.12.21.†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기쁜 소식>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루카 1,39-40).”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이를 못 낳는 여자’ 라고 불리던 엘리사벳이
아들을 잉태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루카 1,36).
그것은 분명히 마리아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한 ‘인사’는 축하 인사였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간 것은,
첫째, 엘리사벳이 아들을 잉태한 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둘째, ‘메시아 강림’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
셋째, 자신이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서둘러’ 라는 말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마리아의 심정을 나타냅니다.
(기쁜 소식은 감추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쁨은 나눌수록 더욱 커집니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당황하고 두려워서,
그것을 하소연하고 위로받으려고,
또는 도움을 청하려고 엘리사벳에게 간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나는 장면에는 두려움 같은 어두운 모습은 전혀 없고,
오직 기쁨만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1-45)”


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세례자 요한의 출생만 예고한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강림도 예고했습니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천사의 말에서 ‘그분, 주님’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분보다 먼저 와서’ 라는 말은,
세례자 요한의 출생 뒤에 바로 메시아 강림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천사의 말을 안 믿은 즈카르야는 말을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가 들은 ‘기쁜 소식’을 어떻게든 엘리사벳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자기가 잉태한 아기가 메시아의 선구자가 된다는 것과
메시아께서 곧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메시아 강림이 이루어질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을 텐데,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마리아 태중의 아기가 곧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믿었고, 기뻐했습니다.
‘큰 소리로 외쳤다.’ 라는 말은 엘리사벳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엘리사벳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일이지만
엘리사벳의 기쁨에 태중의 아기도 감응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세례자 요한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요한 3,29).”
(그 자신이 의식을 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세례자 요한의 기쁨은 이미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가득 차’ 라는 말은, 성령께서 엘리사벳을 도와주셔서
엘리사벳이 메시아 강림을 깨닫게 되었고, 믿게 되었음을 나타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사벳이 아무런 자유 의지도 없이
마치 로봇처럼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셨어도 깨닫고, 믿고, 기뻐한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한 일입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할 때,
단순하고 평범한 인사말만 한 것이 아니라,
가브리엘 천사가 자신에게 해 준 말들을 전해 주었고,
또 자신이 동정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했음도 말해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축하 인사를 하면서 동시에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전하는 ‘기쁜 소식’을 듣자
바로 믿고 기뻐한 것이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도 도와주셨고...


그런데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났을 때,
두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만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사벳이 기쁨에 가득 차서 외친 말은,
마리아에게 한 말이면서
동시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엘리사벳은 메시아 강림이라는 기쁜 소식을
공공연하게 선포한 첫 번째 선교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 됩니다.


사실 루카복음에서는,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 라고,
즉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고백하고 증언한) 첫 번째 인물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자기가 들은 ‘기쁜 소식’을 서로 전해 주고,
함께 믿고, 고백하고, 선포함으로써
그 소식이 진리이며, 참으로 인류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이라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 어머니의 만남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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