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징조 (루카 21,29-33)
요한 사도는 천사가 사탄을 결박하여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어좌에 앉으신 분이 죽은 이들을 그 행실대로 심판하고, 새 예루살렘이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본다. ( 묵시 20,1-4.11─21,2)
나 요한은 1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2 그 천사가 용을,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붙잡아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였습니다. 3 그리고 그를 지하로 던지고서는 그곳을 잠그고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4 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11 나는 또 크고 흰 어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달아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2 그리고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21,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의 변화를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아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고 하신다. (루카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제1독서(묵시20,1~4.11~21,2)
"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20,4)
여기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좌에 좌정하시고 다스리시는 것과 같이 임금으로서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들은 바로 종말론적인 왕적 통치를 수행하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다.
이것은 전투하는 지상 교회(신전지회; 神戰之會; Ecclesia militans; the military church) 본연의 모습니다.
이 지상에서는 이들이 세속 권력자들의 핌박에 고초를 당하며, 심판당하는 피의자의 신분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곤경과 환난들을 이 땅에서 당하면서도 이들의 시선이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들도 하느님과 어린양이 앉은 것과 같이 같은 어좌에 앉아 이제는 자신을 심판했던 권세자들을 심판하는 재판장의 입장에 선다. 이 놀라운 역전극은 오늘날 사탄의 유혹과 핍박에 노출된, 전투하는 지상 교회가 지니고 있는 엄청난 영적 실존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은 '순교자들'을 말하며, 이들은 동시에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과 동일한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 모두를 (묵시13,15; 13,1~18; 19,20참조) 포괄한다.
한편, 묵시록 20장 4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죽임을 당한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의 궁극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여기서 '살아나서'에 해당하는 '에제산'(ezesan; they lived; they came to life)은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에제산'(ezesan)은 '살다','생존하다'라는 뜻을 지닌 '자오'(zao)의 부정 과거 능동태로서, 역사상 두 짐승에 의해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실상은 그들이 살아있다는 놀라운 선언이다.
죽음의 힘을 무력화시킴 그리스도와 일치한 성도들에게 있어서 육체적 죽음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그들은 육은 죽었으나 오히려 영은 하늘에 살아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 날에는 하느님의 백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짐승과 거짓 예언자는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에 던져지지만(묵시19,20),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하느님의 백성은 '살아나서' 하늘 어좌에 앉아 있게 된다는 말인 것이다.
여기서 '다스렸습니다'에 해당하는 '에바실류산'(ebasileusan; reigned)은 '다스리다','통치하다'라는 뜻을 지닌 '바실류오'(basileuo)의 부정 과거 능동태로서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임금으로 통치할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그의 백성을 피로 사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린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어 주님의 재림 시간까지 계속 되는데, 그것이 천년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1000은 완전한 통치를 상징하는 수인 10의 세 번 곱해진 것이고, 통치수 10과 하느님의 수 3이 결부된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와 재림 사이의 시간, 즉 교회의 시간을 하느님의 백성이 임금으로 통치하는 천년 왕국(천년 통치)으로 표헌했다.
*천년 왕국(통치)에 대한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무천년설(Amillennialism)을 소개한다. 이것은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천년'을 문자적으로가 아니고, 예수님의 강생(육화)부터 재림까지의 전(全) 기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천년설(천년을 숫자로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無天年說이라고 한다)에 의한 종말 사건의 순서
1) 천년 왕국(통치)의 기간; 이 기간동안 이 세상 권세를 쥐었던 사탄이 결박되어 지하에 갇히고(묵시20,3),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자, 즉 물과 성령으로 세례을 받아 거듭난(새로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왕 노릇한다(묵시5,10).
2) 대환난; 천년 왕국(통치)이 끝날 무렵, 성경에 묘사된 7년 대환난이 일어난다.이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저승에 갇혀 있던 사탄이 잠시 풀려 난 결과이다(묵시20,3).이때 거짓 예언자와 적 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성도들은 환난을 당하며, 일부는 배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는 하르마게돈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을 결정적 기점으로 해서 끝을 맺고, 사탄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다.
3) 재림; 거의 끝이 없이 무한정 이어질 것처럼 보이던 천년 왕국(통치)은 성도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을 맺는다.
4) 부활과 성도의 들어올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신앙의 정절을 꾸준히 지켜온 성도는 생명의 부활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불신앙자들은 심판의 부활을 한다.그후 성도는 신령한 몸을 입고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한다(1테살4,17).
5) 마지막 심판; 성도들이 공중에 들려 올려진 상태에서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부활한 악인들과 생존한 악인들)이 형벌을 받아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진다. 이것을 가리켜 '두 번째 죽음"이라고 한다(묵시20,14).여기에 던져진 자는 영원한 벌을 받는다.
6) 새 하늘과 새 땅; 악인들이 불 못에 던져진 후, 이 땅은 새롭게 변화되어 '새 하늘과 새 땅',즉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여기서 영원토록 산다(묵시21장).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21,29-33)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1~32)
루카 복음 21장 29~38절은 종말의 때를 살면서 종말을 기다리는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무화과나무'만을 다루는 데 비해,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모든 나무'를 첨가시켜 기록한다.
어떤 이는 '무화과나무'는 유대교를, '모든 나무'는 '이방 교회들'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제한해서 해석하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오류를 막고자 '이방 세계' 또는 '이방 교회'를 상징하는 '모든 나무'를 첨가했다고 본다.
실제로 세상의 종말은 어느 한 민족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이고 전세계적 사건이다. 루카 복음 21장 31절의 '하느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헤 바실레이아 투 테우'(he basileia tu theu; the kingdom of God)는 종말에 올 심판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상의 종말이 갖는 이중성을 잘 알고 있다.
즉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세상의 종말은 무서운 심판과 형벌의 날이 될 것이며,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 날이 영광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人子)의 오심은 확실히 세상에 대해서는 심판의 날이요,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날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를 묘사하여 독자들에게, 특히 고난받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용기와 위로와 힘을 주고자 한다. 따라서 종말에 나타나는 징조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을 주는 서곡과 같은 것이다.
한편, 루카 복음 21장 32절의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는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멸망의 전조로 예언된 모든 일들이, 당시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살고 있던 세대에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예언이 A.D.30년에 주어졌고, 예루살렘의 멸망이 A.D.70년에 있었기에, 그 사이 40년의 기간이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은 단지 예루살렘 멸망과 관계된 예언의 성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과 더불어 그리스도 재림으로 오게 되는 최후의 종말의 시기에 임박하여 나타날, 전우주적인 징조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질 것이며, 비로소 그 뒤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제 루카 복음 21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심판의 대상이 되어 완전히 없어질 하늘과 땅(천지;天地)과, 영원히 보존될 당신의 말씀을 대구적으로 말씀하심으로써, 심판과 예언의 확실성을 더해 주신다.
게다가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말씀을 동일시하심으로 인해 당신의 말씀에 신적(神的) 권위를 부여하시며, 당신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신다.
<심판, 회개> 송영진 모세 신부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29-33).”
여기서 ‘여름’은 추수철을 뜻합니다.
(당시에 그 지역에서는 여름이 추수철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알게 된다는 말씀은,
추수철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고, 추수를 준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흔히 추수는 심판을 뜻합니다.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씀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활동을 시작하실 때 이미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라고 선포하시지 않았는가?”
또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활동을 시작하실 때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라는 말씀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로 해석되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라는 말씀은,
“표징들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가 된 줄 알아라.”로 해석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시작되었고,
재림하실 때 완성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인지 모르는 먼 훗날의 일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여름’은 이미 가까이 와 있고,
지금이 바로 추수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바로 앞에 있는 루카복음 21장 25절-26절에 나오는 표징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과 바다에 나타나는 표징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라는 말씀은,
심판의 날이 가까이 온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알아라.’ 라는 말씀은, ‘알고 대비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심판을 대비하는 일은 곧 ‘회개’입니다.
또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씀과
루카복음 12장 46절의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이라는 말씀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마르 13,32),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심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왔다는 것은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는 시점은, 그 날은 아니고, 그 날이 가까워진 때입니다.
그래서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도 할 수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과 바다에 표징들이 나타난 적이 있는가?
요즘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은 종말의 표징인가, 아닌가?”
지난 역사에서 사람들이 종말의 표징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많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표징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발생하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나 전염병 등이
종말의 표징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표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자연 현상일 수도 있고,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표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표징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지금 회개해야 한다는 긴박한 상황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대’ 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 말씀은, 특정 시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재림과 심판은 분명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만일에 그 일이 안 이루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게 됩니다.)
“내가 곧 간다(묵시 22,20).”는 말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에서 ‘하늘과 땅’은,
사람들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그러나 실제로는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라는 말씀은,
“너희 눈에는 영원히 있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유한한 것들은
모두 사라지겠지만”이라는 뜻이 됩니다.
인간적이고 지상적인 것들은 모두 유한한 것들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그것들은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란다면,
그런 허무한 것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들은, 또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은,
영원하고, 절대로 변함이 없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영원하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일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란, 영원을 향해서 나아가려는 노력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와 다른 나무들의 잎이 돋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다는 것을 안다고 가르치시며, 이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초대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시대의 징표가 너무나도 많이 깔려 있는데, 이를 올바로 보고 하느님의 시각으로 해석할 줄 아는 눈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일반 사람들에게는 마치 세상의 종말과 같아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거룩한 도시였기에, 마치 하느님의 왕국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는 반대로 이 도시의 멸망을, 묵시적 용어로 설명하면서, 이 세상에 새로운 하느님의 나라가 건설될 결정적인 계기로 봅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협소한 의미의 하느님의 나라를 고대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각성시키고, 유다인 선민사상으로부터 탈출하게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모든 민족들에게 문을 개방하도록 자극했고, 새로운 형태의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현상을 하느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희망하는 사람들입니다. 희망은 주어진 고난을 슬기롭게 이겨 내게 하는 힘이며, 오늘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모든 것이 지나갑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바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 우리가 온 몸으로 직접 체험했던 일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무시무시한 폭력을 앞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들의 횡포아래 다들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자처하며 거만한 눈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하도 그 세월이 오래 가다보니 과연 이 끔찍한 시대가 막을 내리기나 할 것인가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마치 그들의 권세가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십시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미 땅에 묻히고, 어떤 사람은 갖은 수모를 다 당하며 초라하고 구차스런 삶의 마지막 끈을 아슬아슬하게 부여잡고 있습니다.
한때 저를 매료시키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지, 마음에 드는 글귀들을 노트에 열심히 옮겨 적었습니다. 그런 노트가 수십 권입니다. 얼마 전에 노트 한권을 꺼내 읽어 그 내용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것들 역시 별것 아니더군요. 참으로 시시해보였습니다. 때로 유치해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인간만사, 인간 세상, 인간의 손때가 묻은 것들의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은 바로 유한성입니다. 지속성의 결여입니다.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정반대입니다. 하느님께서 지니신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인간과는 달리 지속성입니다. 한결같음입니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모든 인간적인 것들, 인간만사, 인간 세상은 세월의 흐름 앞에 별 도리가 없습니다.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천천히 사라져갑니다. 마침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태초의 상태 무(無)로 돌아가고 맙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도 가고, 꽃다운 청춘도 다 지나갑니다. 세상도 지나가고 하늘을 찌를 것 같던 권세도 잠시입니다. 모든 것이 떠나가고 인간 세상과 인류 역사의 끝에 오직 한 분만 남을 것인데, 그분은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끝, 종말에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겠지만 하느님과 그분의 말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사랑은 끝까지 남아있을 것이라는 말씀,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세상의 끝, 재림의 시기, 하느님을 거슬러 살아온 사람들, 하느님을 거부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때가 확실하다.
그러나 반대로 하느님 말씀 안에 살아온 사람, 하느님만 신뢰하며 그분만 붙들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해방의 날이자 구원의 날, 기쁨과 환희의 날이 분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하느님 말씀 안에, 말씀을 열심히 실천하며 살아온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찬 새 출발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