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3주간 목요일] 일꾼 (루카 10,1-9)

2017. 1. 26. 오전 7: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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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제3주간 목요일] 일꾼 (루카 10,1-9)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인사하며,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한다. 바오로 사도는 같은 믿음에 따라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에게 인사하며 은총과 평화를 빈다. (2티모테오  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5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고 하신다. (루카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목요일  제1독서(2티모1,1-8)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6~7)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의 은사를 다시 불타오르게 하기 위하여, 과거 자신이 안수했을 때 하느님께서 티모테오에게 주셨던 은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 구절은 티모테오 1서 4장 14절 '그대가 지닌 은사, 곧 원로단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물론 표현의 차이는 다소 드러나지만, 이 둘은 거의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런데 티모테오 1서 4장 14절에서는 티모테오에 대한 안수가 원로단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언급된 반면, 여기서는 '내 안수로' 언급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디아 테스 에피테세오스 톤 케이론 무'(dia tes epitheseos ton cheiron mu; through the laying on of my hands; by the putting on of my hands)에서 전치사 '디아'(dia)'~에 의해서'( by), '~을 통하여' (through)라는 의미로서, 이것은 곧 '나의 안수를 통하여'가 된다. 

그렇다면, 티모테오는 사도 바오로의 개인 안수를 받은 것인가? 아니면 원로단의 안수를 받은 것인가? 당시 초대 교회의 관례를 보면, 티모테오는 원로단의 안수를 받았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오로가 자신이 개인적으로 안수를 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티모테오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자신(2티모1,1)의 계승자요, 대리자요, 영적인 아들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은사' 번역된 '토 카리스마 투 테우' (to charisma tu theu; the gift of God)에서 '카리스마'(charisma)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카리스마'는 본래 '거저 주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카리죠마이'(charizomai)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코린토 1서 1장 7절, 코린토 2서 1장 11절, 로마서 1장 11절 등에서 나타나는 바오로 사도의 특유한 용어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성령께서 자신의 의지대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교회의 건설과 선익을 위해 베푸시는 은혜와 능력(특은)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성령으로부터 부여받은 은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며 교회를 다스리고', '참된 자들과 거짓된 자들을 식별해서 그들을 권면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은사일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로 하여금 이러한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한편, '안수'로 번역된 '에피테세오스 톤 케이론'(epitheseos ton cheiron)에서, '에피테세오스'는 본래 '얹어 놓다'라는 뜻을 지닌 '에피티테미'(epitithemi)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70인역(LXX)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손'에 해당하는 '타스 케이라스'(tas cheiras)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어(사도6,6; 8,19; 13,3; 1티모5,22) 안수 행위의 특징적인 모습을 잘 드러낸다. 

이 행위는 안수하는 자를 통하여 안수받는 자에게 하느님의 능력이나 축복, 그리고 권위 등이 전달되는 것을 상징한다. 티모테오 역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은사를 부여 받았다.  

그런데 티모테오 1서 4장 14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 은사가 '예언을 통하여' 부과되었다고 첨언하고 있는데, '예언에 의해 부과된 것'이라기 보다는 '예언과 함께 동반된 것'임을 드러낸다. 

아마 이 예언은 티모테오가 안수를 받을 때, 안수에 동참한 원로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베푼 교훈을 가리킬 것이다. 결국 이 예언은 테모테오가 스스로 자신을 하느님께서 부르신 사람으로 확증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여기서 티모테오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는 사목적 직책과 소임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받은 은사가 외적이거나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적인 은혜라는 점을 '그대가 받은'(호 에스틴 엔 소이; ho estin en soi; which is in you)이란 표현을 통해 드러낸다.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네 속에 있는' 이다. 

곧 티모테오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목적 소임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은사를 이미 부여받았으므로, 그 받은 은사를 다시 불일듯 일으키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불태우십시오'라고 번역된 '아나죠퓌레인'(anazopyrein)본래 '계속해서 새롭게 불타오르도록 하다','계속해서 극렬하게 타오르도록 하다' 라는 뜻을 지닌 '아나죠퓌레오'(anazopyreo)현재 부정사로서, '티모테오 안에 있는 은사가 새롭게 불타오르도록'이라는 의미이다(to kindle of fresh; to fan into flame). 

사도 바오로가 보기에, 티모테오에게는 거룩한 하느님의 사목을 위임받던 당시의 은사들이 식지않고 계속 뜨겁게 타오를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당시 나이가 어렸던 티모테오는 내적으로는 교회 내에서 활동하던 거짓 교사들로 인해, 그리고 외적으로느 점차 가중되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탄압으로 인하여 크게 위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시 로마 감옥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영적인 아들 티모테오에게 에페소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사목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안수받을 때의 일을 회상시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리스도교 봉사자들은 그들 자신이 받은 일들이 아무리 보잘것 없고 작은 일일 지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만한 특별한 은사를 주시어 그 일을 맡긴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신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원문에는,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 for)가 포함되어 있어서, 티모테오에게 그의 안수식을 상기시켜 그가 부여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워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이유를 밝힘에 있어, 사도 바오로는 영어의 'not ~ but' 용법처럼, 전자를 부정함으로 후자를 보다 강조하는 '우 ~ 알라'(u ~alla)란 표현을 사용한다. 

사도 바오로가 먼저 부정하는 것은 '비겁함의 영'이다. '비겁함의'로 번역된 '데일리아스'(deilias)는 본래 '의기소침함' 이나 '비겁함', '두려워함'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비겁함의 영' '의기소침한 마음'이나 '비겁한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번역되고 이해됨이 타당하다. 사도 바오로가 이 부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당시 티모테오로 하여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티모테오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영'(마음 혹은 정신; 프뉴마; pneuma)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힘의 영'이다. 여기서 '힘'(능력)으로 번역된 '뒤나메오스'(dynameos)는 사도 바오로 특유의 표현으로, 로마서 1장 16절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어구에서 강력하게 표명된 바로 그 힘(능력)이다. 

나아가 티모테오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은 '사랑의 영'이다여기서 '사랑'으로 번역된 '아가페스'(agapes)는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표명된 대로,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서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이다(1요한4,18).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부여하는 것은 '절제의 영'이다여기서 '절제의 영'으로 번역된 '소프로니무스'(sophronimus)의 원형 '소프로니스모스'(sophronismos)'보존하다'(루카17,33)라는 의미의 동사 '소죠'(sozo)'생각'이란 뜻의 명사 '프렌'(phren)의 합성어로서, '근신하다','통제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소프로니죠'(sophronizo)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이것은 단적으로 말해 '자기 통제'(self-control)을 말한다.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1-2)”


1) 이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라고, 즉 안 믿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해 주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왜 ‘일꾼들’을 모집하려고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가?
또 하느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일꾼들’은 원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일꾼들을 찾는 것 같은 말씀을 하시는가?
2) 예수님께서 일꾼이 적다고 판단하셨다면 당신이 직접 청하시면 되지,
왜 제자들에게 청하라고 시키셨을까?
3)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더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고,
그렇다면 제자들이 청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먼저 일꾼들을 보내시지 않을까?


1) ‘일꾼들’이라는 말은,
좁은 뜻으로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협력자들’을,
즉 사도들과 선교사들을 뜻하는 말이지만,
넓은 뜻으로는 ‘모든 신앙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28-31)”


신앙생활이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생활인데,
이 생활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도 모두 포함됩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고,
그분의 일꾼들을 모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을,
“수확 때가 다가오는데 회개하고 믿는 사람이 적다.”
라고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복음 선포 활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인도해 달라고
주님께 청하여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하느님과 예수님의 일은 우리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버지께 청하시지만, 우리도 하느님께 청하게 됩니다.
“주인님께... 청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는 청하지 않을 테니까 너희가 청하여라.” 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청하는 것처럼 너희도 청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모든 것을 하느님과 예수님께 맡기고,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는 생활이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는 생활이고,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이 생활에서 ‘기도’는 ‘일’과 하나입니다.
기도하는 동안 일이 중단되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동안 기도를 중단해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기도합니다.
기도는 ‘청하는 일’이고, 일은 ‘행동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 청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을 선포하러 갈 때 기도하면서 가라.” 라는 지침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3)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일꾼이 적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청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먼저 일꾼들을 보내주시지 않을까?”
라는 질문은, “기도는 왜 하는가?” 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기도’에 관해서 가르치실 때,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시니까
너희가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은 너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고,
바로 그것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라.” 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안 주시려고 하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을 우리가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는
“주님께서 보내 주시는 일꾼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
로 해석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느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사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는 일입니다.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고, 우리는 그 일을 도와드리는 협력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교활동을 해서 사람들을 입교시킬 때,
새로 입교한 그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신앙인들도
각자 스스로 종교와 신앙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뽑으신 사람들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또 ‘기도’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일꾼’으로 변화되고,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에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
라는 뜻도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일꾼들을 청하려면 우선 먼저 자기 자신이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활동을 하려면 자기 자신이 먼저 좋은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활동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상태부터 점검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좋은 결실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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