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월요일]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 (마르코 8,11-13)

2017. 2. 13. 오후 7: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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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월요일]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  (마르코 8,11-13)

마르코 복음서 8 장

아담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여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다가, 농부인 형 카인은 화가 나서 양치기인 아우 아벨을 죽인다. (창세 4,1-15.25)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바리사이들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자 예수님께서는 깊이 탄식하시며,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마르코 8,11-13)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4,1-15.25)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3~5ㄱ)  

여기서 '세월이 흐른 뒤에'에 해당하는 '와예이 믹케츠 야임'(wayei miqets yaim; in the course of time)을 직역하면, '그리고 날들의 끝으로부터 이 일이 있었다'이다. 

'세월' '한 날'에 해당하는 '욤'(yom)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야임'(yaim)이며,이러한 '날들'은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끝'에 해당하는 '케츠'(qets)있음을 보여 준다. 

'흐른'으로 번역된 '믹케츠'(niqets)'끝'이란 뜻의 '케츠'(qets)'~으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이 결합한 형태로 '~의 끝으로부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주로 심판을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창세6,13; 에제7,2.3; 이사9,6).

그러므로 창세기 4장 3절은 단순히 세월이 흐른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카인과 아벨을 평가하고 심사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카인과 아벨이 각각 자신의 수고에 따라 힘써 일하고 보냈던 날들이 마감되고,하느님 대전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에 지켜볼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전개될 사건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정해진 때, 카인과 아벨이 자신들의 수고에 따라 일한 것들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검증받아야 때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물'에 해당하는 '미느하'(minha; offering)는 반드시 인간이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선물을 나타낼 때에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바치는 선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서 이 단어는 카인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존경과 감사를 돌려 드리기 위해 바치는 것이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5절에 나오는 것처럼 카인의 제물을 하느님께서 굽어 보시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제물을 바치는 대상인 하느님 당신께 대한 진정한 존경과 감사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히브11,4참조).

사람은 보통 겉모습을 보지만, 전지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의 정성을 보시고 이러한 제물을 굽어보시고 기꺼이 받아주시는 것이다(1사무16,7참조).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직역하면, '그의 양 첫 새끼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름을'이다. 여기서 '맏배들'에 해당하는 '뻬코라'(bekora; some of the firstborn)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서 아벨은 새끼양 한 마리만을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를 바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뻬코라'(bekora)'맏배'(첫 새끼; firstlings) 외에도 모든 '처음 난 것'가리키거나 그 말 속에는 '가장 뛰어난 것'이나 '우두머리'라는 뜻도 들어 있다.  

그리고 '기름'에 해당하는 '헬레브'(heleb; fat portions)는 일차적으로 '지방'뜻하지만, '살찌고' '기름지며' '아름다운' 것이란 뜻도 들어 있다. 

그래서 본문은 '그의 양 떼의 첫 새끼 몇 마리로부터 얻은 기름진 부분들'이나 '그의 가장 좋은 어린 양들로부터 얻은 고기의 기름진 조각들'과 같이 의역되기도 한다.

어쨌든 아벨은 형식적인 제사를 바친 카인과는 달리 정성을 다해 가장 좋은 것을 하느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벨의 태도는 하느님을 만물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이며, 하느님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겸손의 표현이다(히브11,4).

'기꺼이 굽어 보셨으나' 

'기꺼이 굽어 보셨으나'에 해당하는 '와이샤'(waisha; and looked with favor on; and had respect) '기쁘게 받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아'(shaah)의 뜻은 '응시하다','둘러보다'이다. 특히 이 단어는 상대방을 돕기 위해 둘러본다는 뜻이 있으며, '돌이키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응시하신 대상이 단지 제물만이 아니라 아벨 그 자신까지도 포함된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제물보다 앞에 단어를 위치시켜서 아벨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응시하심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정성껏 제물을 바치는 아벨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 보시는 것을 의인법적으로 더 친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복음서]14장 예수를 죽일 음모(마태오26;1-5 루가22;1-2 요한11;45-53)

<표징, 믿음>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 8,11-13).”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놀라운 표징을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신분증명서 같은 것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안 믿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 것은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라는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요구는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주시오.” 라는 뜻이 아니라,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표징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라는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요구한 대로 어떤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셨다면,
그들은 그것을 속임수라고 생각하면서 안 믿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이집트에 갔을 때,
이집트인들은 놀라운 표징들을 보아도,
또 무서운 재앙이 계속 내려도 끝까지 하느님을 안 믿었습니다(탈출 7장-11장).
(안 믿으려고 작정한 사람들은 표징을 보아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표징이 없어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징을 보여주기를 거절하신 것은,
보여준다고 해도 바리사이들은 믿지 않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또 그들의 요구는 ‘하느님을 시험하는 죄’였기 때문에
그 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또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왜 예수님을 믿고 있을까?)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3-34).”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는 예수님의 삶을 보고,
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보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문에 믿음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모두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사도 2,22-32).”
“...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 5,30-32).”
이 증언들을 보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표징은
‘부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다면, 다른 표징은 없어도 됩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의 믿음은
거의 대부분 사도들의 증언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사도들의 증언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어떤 체험을 했기 때문에 믿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시작은 그렇게 되는데,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은총을 받아서
더욱 깊은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말한 은총이 꼭 어떤 표징이나 기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표징’(기적)은 믿는 사람들에게, 또는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대단히 ‘예외적인’ 은총입니다.
표징이 신앙생활의 필수 요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심해서, 또는 불순한 호기심으로 표징이나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또 “표징이나 기적을 보아야만 믿겠다.” 라고 고집부리는 것은
사실상 안 믿겠다고 하는 것, 즉 믿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은총을 받은 것이고,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 자체도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표징을 보지 못했더라도, 어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표징이나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5-18).”
이 말씀은 “믿기만 하면 누구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끔 예외적으로 필요한 때에 표징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필요한 때에 예외적으로 표징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은총 가운데 가장 큰 은총은 ‘구원’입니다.
표징은 궁극적인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보조 수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6주간 월요일
 Why does this generation seek a sign?
Amen, I say to you, no sign will be given to this generation.
(Mk.8.12)
자신이 이 동네에서 제일 넓은 땅을 가졌다고 열심히 자랑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기 땅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라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 근처에서 제일 큰 부자임을 드러내었지요. 잠자코 이 사람의 말을 듣던 농부가 어디선가 무엇인가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전국 지도였습니다. 그는 지도를 펼친 뒤에 이렇게 말했지요.

“자네가 가진 땅을 이 지도에 표시해 보게.”

이 사람은 당황해하며 말했지요.

“전국 지도에 내 땅을 어떻게 표시할 수가 있겠나? 내 땅은 이 지도에 표시할 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아.”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도에서 찾지도 못할 땅을 뭐 그렇게 크다고 자랑하는가?”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것이 과연 하느님 앞에서도 자랑할 만한 것일까요? 티끌보다도 작은 것들을 대단하다고 자랑하고 다녔던 내 자신을 다시금 부끄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크신 하느님 앞에서 너무나도 미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기 모습에 대해 자랑할 것도 없으며, 더불어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불만을 던져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긴 과거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감히 하느님 보다 위에 서려고 했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이미 많은 기적을 보여 주셨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이 세상에 왔음을 선포하셨음에도 그들은 믿기 보다는 또 다른 표징은 무엇이냐는 어리석은 모습만을 간직했습니다.

사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특별한 표징이 내게만 내려졌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바로 일상 안에서 계속해서 주어지는 주님의 표징을 발견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훈련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기는 뒤집기를 반복하고, 약한 손으로 엉금엉금 기다가 어정쩡하게 일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걷기 훈련을 합니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로 반복된 훈련의 연속입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사랑해’라는 단어를 말하려면 수 천 번이나 듣고 어설프게 발음을 하면서 점차로 말하게 된다고 합니다.

현재의 나는 이런 다양한 훈련을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와 묵상 등 계속된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또한 하느님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성장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훈련을 통해 더 나은 나로 변화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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