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용서하는 권한> - 마르코 2,1-12

2009. 1. 16. 오전 7:20:24

글자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 마르코 2,1-12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4,1-5.11
형제 여러분, 1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이 계속 유효한데도, 여러분 가운데 누가 이미 탈락하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입시다. 2 사실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그 말씀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귀여겨들은 이들과 믿음으로 결합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4 사실 일곱째 날에 관하여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5 또 여기에서는,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11 그러니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극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앞을 막아 예수님께 갈 수 없게 되자 지붕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지붕 한쪽을 벗겨 그 구멍으로 환자를 내려 보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다릅니다. 그곳은 ‘비 오는 계절’과 ‘비 없는 계절’로 확연히 구별됩니다. 따라서 비가 없는 철에는 나뭇가지나 거적 같은 것으로 대충 덮어 두었습니다. 그랬기에 환자를 내려 보낼 수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그들의 극성은 기적으로 보답받습니다.
그런데 몇몇은 법을 따집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기에 치료 행위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죄가 되는가, 안 되는가?’ ‘법을 어긴 것인가, 아닌 것인가?’ 그들은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까지도 용서하십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믿음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고려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믿었기에 지붕을 뚫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법을 생각하고 주변을 의식합니다. 결과는 따지는 행위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따지고 계산하면’ 은총은 결코 함께하지 않습니다.
 
 
 

연중 1주간 금요일 - 협동정신

 며칠 전에 제가 신학생 때 함께 공부했던 수녀님이 성지순례 단을 이끌고 다녀가셨습니다. 그 수녀님의 부탁으로 며칠 로마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분들은 프란치스코회 삼회 회원들로 대부분이 교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몇 명 회원이 아니신 분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스페인 광장 쪽으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자매님이 저만 따로 옆으로 끌고 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오기로 된 사람들이 못 와서 몇 명 원하는 신자들과 함께 왔는데 그 중에 마리아라는 선생님이 계셔요. 그 분은 20년 동안 냉담을 했답니다. 우리들이 이야기를 잘 해서 냉담을 풀고 고해를 받으라고 했어요. 그러나 스스로는 고해를 볼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신부님께서 혹시 기회를 봐서 그 자매에게 고해성사를 주실 수 없나요?”

저는 그러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명품거리를 구경하는 사이에 저는 그 자매에게 다가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는 고해성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저는 다른 자매들이 그 자매를 억지로 고해보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선 둘이 앉아서 이야기라도 좀 하자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자매가 고해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지만 자신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고해를 하고 싶냐고 했더니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주님께 다가가겠다는 약속을 받고 성사를 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떠나는 날 이 여행에서 자신이 제일 많은 것을 얻어간다고 하면서 계속 감사해 했습니다.

주위의 열심한 자매들의 극성(?)에 못 이겨 고해를 보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적어도 새로운 신앙의 결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는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중풍 병자란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다가와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는 힘이 없는 영적인 병자를 의미합니다. 그를 들것에 들고 온 네 사람은 그리스도께만 데려가면 그를 치유해 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 깊은 신앙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병자를 데려가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를 들고 예수님께로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병자를 들것과 함께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당시 육체적 병도 죄로 인해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기에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그의 병을 치유해주심으로써 당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 중풍 병자의 믿음을 보고 그를 용서해주시고 치유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데려온 이들의 믿음을 보고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다시 일어설 힘이 없을 때는 주위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라도 주님은 그 사람을 구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선 냉담 하는 이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주님께 스스로 나아올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써주는 모습이 오늘 병자를 낫게 해 준 네 명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가 안 된다면 합심해서 힘없는 이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우리들이 됩시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약자를 배려하는 공동체>


   오랜 세월 치매로 고생하시는 아버님을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기로 소문난 한 효자가 한적한 바닷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 온 종일 맥없이 자리에 누워만 계시는 아버님을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없겠는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최근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즉각 실행에 옮겼습니다.


   아버님은 젊은 시절 어부셨기에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는 것이 기억났습니다. 태풍이 불어 고깃배가 뜨지 못하는 날조차 방파제로 나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던 모습도 기억났습니다.


   아들은 우선 아버지와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담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담이 있던 자리에 예쁜 꽃들을 줄줄이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님은 담 허무는 공사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셨습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힘겹게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고개를 바다로 향했습니다. 굳게 잠겨 침울했던 그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가던 마을 사람들도 마루로 나와 앉은 아버님을 향해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고, 아버님께서는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보였습니다.


   노부모님을 모시고 계시는 자녀분들 계실 텐데, 특히 거동이 불편하신 부모님들, 병고에 시달리고 계신 부모님들 모시느라 정말 고생들이 많으시겠지요.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노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은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앙인에 앞서 인간으로서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이고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우리 부모님들, 그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과 기쁨을 안겨주셨습니까? 그분들이 우리에게 주셨던 그 행복을 이제는 우리가 돌려드려야 할 때입니다.


   몰론 점점 연로해져만 가시는 부모님들 바라보는 시선이 꼭 곱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한때 그렇게 위풍당당하셨던 분, 태산 같은 분이셨는데, 이제 완전히 노쇠해지시고, 저리 쫀쫀해지시고, 저리 구차스러워지시고, 마음으로부터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하십시오. 노화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약화는 어쩔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육체는 시들고 영혼도 시듭니다. 그저 부족하고 안쓰러운 한 존재, 측은한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 건강할뿐더러, 인생의 황금기를 구사하고 있는 자녀들께서는 부모님과의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위치가 바뀐 것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 이제는 우리가 보호해드리고, 동반해드리고, 기도해드리고, 감싸 안아드려야 할 연약하고 측은한 존재인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안에서 더 많은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약자인 것입니다.


   노화와 더불어 즉시 다가오는 감정이 서운함입니다. 허전함입니다. 무대 뒤로 물러나야 하는데서 오는 쓸쓸함입니다. 이런 부모님들에게 자녀들은 위로자요, 치유자, 동반자요 격려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 가족들의 지극정성을 눈여겨보십니다. 그들이 오늘 보여준 행동은 상식을 크게 벗어난 행동이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행동이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어야지요. 아무리 절박하다 하더라도 이게 뭡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갑자기 지붕이 열리고, 열린 지붕 사이로 끈에 매달린 중풍병자가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의 병자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병해왔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견뎌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족들의 그 적극성, 능동성 앞에 탄복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이 가장 약한 사람을 가장 많이 배려하길 바랍니다. 구성원 가운데 가장 약자를 공동체의 중심이 놓길 바랍니다. 끝까지 약한 사람을 포기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55번 / 착하신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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