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마르코 1,40-45

2009. 1. 15. 오전 6:52:50

글자
 
 

1월 15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마르코 1,40-45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십시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했다. 일 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오랫동안 헤맨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살지 말 것을 권한다. 하느님을 저버리지 말라는 말씀이다(제1독서). 나병은 지금도 무서운 병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이기를 포기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기에 나병 환자는 온몸으로 애원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치유하시고 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한다.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복음).    복음의 나병 환자는 병이 사라진 ‘그 순간의 기억’을 평생 간직했을 것입니다. 어떤 체험인데 잊을 수 있을는지요? 그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 몸에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았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감동과 격정이 지나간 뒤의 평온한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은 정신까지 바뀌게 했습니다. 더할 수 없는 기쁨과 자신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입니다. 달라진 그는 ‘새로워진 운명’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 뒤 그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평생 주님과의 만남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적은 ‘기억하고 있어야’ 은총이 됩니다. 그때의 감격을 찾아낼수록 그만큼 그분의 힘을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적은 ‘한순간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나를 이끌어 가는 은총입니다. 끊임없이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축복의 샘입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기도가 어찌 그 환자 한 사람만의 기도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기도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라도 사랑의 말씀입니다.
 
 

 - 믿고 한 이야기 - 

몇 달 전에 로마에서 공부하는 한 수녀님과 이야기하는 도중, 그 수녀님이 저에게 앞으로 자신의 학과 일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해진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에게는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로마에는 또 어릴 적 동네 친구 신부도 있는데 이야기 도중 그 수녀님 이야기를 해버렸습니다. 오래 된 친구라 저는 거의 감추는 것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 친구 신부가 그 수녀님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제가 해 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수녀님은 기분이 많이 상했고 앞으로는 저에게도 조심해서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친구 신부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나빠서 이야기를 선별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비밀이 있습니다. 사실 그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둘 사이의 사랑의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믿고 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다면 그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매우 기분이 상할 수 있고 그 관계 또한 조금은 멀어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들은 하느님과 단 둘이 일어난 사건들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만의 비밀이 둘만의 사랑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교리들은 매우 늦게 정립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 당신의 비밀들을 드러내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이들의 믿음을 위해서 꼭 필요한 비밀들은 드러내셨습니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나 엘리사벳을 방문하셨던 일,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벌어졌던 일들, 또 이집트로 피난 가셨던 일, 혹은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고 찾아 해맨 사건들은 성모님께서 설명해주시지 않았다면 알기 어려운 사건들입니다. 이 사건들은 후대의 그리스도를 이해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성모님은 잘 기억하셨다가 후대의 복음사가들이나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시지 않은 것들이 사실은 더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성모님께 발현하셨다는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 먼저 발현하시지 않으셨을 리가 만무합니다.   또 당신과 하느님만이 가질 수 있었던 수많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심이라든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신비라든지, 평생 동정으로 사셨다든지, 승천하실 몸을 지니고 계셨던 것 등은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런 교리들을 정하는데 거의 이천 년이란 세월을 숙고해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오상을 받고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처음에는 감추고 다녔습니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는 오상을 주시겠다는 말씀에 아예 보이지 않는 오상을 달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카타리나 성녀가 돌아가셨을 때에야 오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왜 성모님이나 성인들은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비밀을 드러내려 하시지 않으셨을까요?물론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다닌다는 것의 가장 큰 위험은 그것들을 자랑함으로써 교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 이유는 그런 비밀들을 지니고 있으면서 하느님과 더 깊은 관계를 지니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기도하다가 어떤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신자를 보면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위의 두 가지를 모두 어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천사가 나타나 성자를 잉태한 사실을 요셉에게까지 숨겼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 비밀들에 대해 침묵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물론 하느님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나병을 고쳐주신 사람에게 사제를 제외한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교만해 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느님과의 귀중한 비밀을 잃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널리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닙니다. 어쩌면 그럼으로써 육체적 병은 고쳐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교만해지고 하느님과는 더 멀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부주의하게 드러내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결심합시다.            <전삼용 (요셉)> .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릴 때부터 피부가 몹시 약했던 저는 여러 가지 피부병으로 인해 엄청 고생을 해봐서 피부병이 얼마나 괴로운 병인지 잘 알고 있지요. 또 피부병 환자들이 겪는 말 못할 괴로움도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질환이 되었는데, ‘옴’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직도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병해서 사람들을 괴롭히곤 하지요.

 

    저희 집은 아직도 이 옴 때문에 가끔씩 비상이 걸립니다. 옴은 옴진드기가 피부에 기생함으로써 발생되는 질환으로 개선이라고도 합니다. 옴진드기는 각질층 내에 터널을 뚫고 살게 되는 데, 그로 인한 가려움증이 유발됩니다. 증상이 진행되면 정말 참기가 어렵습니다. 전염성은 또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신체 여러 부위가운데 가장 후미진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손가락이나 발가락 사이에 많이 생기는 데, 한번 긁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함부로 ‘박박’ 긁다보면 증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나중에는 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번지기도 하지요.

 

   언젠가 제가 옴 비슷한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지독한 가려움증을 이기지 못해 자는 동안 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엄청 긁어버려서, 그 다음날은 손을 침대에 묶고 잔 기억도 납니다. 너무나 간지러워서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피부병 중에 별것도 아닌 옴이 이렇게 지독한데, 나병은 얼마나 사람을 괴롭혔겠습니까? 나병은 옴과는 차원이 다른 병이었습니다. 옴이야 어느 정도 고생하고 나면, 꾸준히 치료를 하면 원상복귀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시대 당시 나병은 특효약이 전혀 없던 불치병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약한 것은 나병에 걸리면 끔찍하게도 매일 오그라드는 자신의 몰골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매일 손가락 마디가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현실, 매일 조금씩 코와 눈썹이, 입술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현실을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습니다. 지옥 같은 나날이었겠지요.

 

   유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 전염병이나 악성 피부병은 격리가 최상의 방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병 혹은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입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나타나면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나병에 걸린 사람들은 성 밖으로 나가 살아야만 했습니다. 나병환자 표시가 나도록 누더기를 입고 머리도 깎지 말아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나병환자들은 인간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배척된 사람들이었고,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짐승처럼 산기슭에서 토굴을 파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병환자는 그가 하는 언행을 봤을 때 꽤 중증의 환자로 여겨집니다. 자신이 앓고 있던 나병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던지 율법조차 어겨가며 예수님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원래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로 들어올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까지 들어왔습니다.

 

   그의 태도를 한번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간절합니다. 예수님임을 알아차린 그는 털썩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나병으로 인해 서러웠던 지난 세월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떠올랐을 것입니다. 나병에 걸린 이후 인간사회로부터 추방당하고, 산짐승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찌 내게 이런 일을 허락 하시는가’며 매일 울분을 토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혹시나’ 하고 자신의 손과 발을 만져보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하고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밤사이에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나병이 낫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였기에 이제 마지막 희망을 안고, 무례가 되는 줄 분명히 알면서도, 율법을 어겨가면서 예수님께로 달려온 것입니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외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장에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간절히 부르짖는 나병환자의 외침 앞에 마침내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권능의 손을 그에게 펼치십니다. 자비의 팔을 그의 어깨에 두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나병환자의 새 삶을 한번 살아보겠다는 간절한 마음,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메시아임을 굳게 믿는 확고한 신앙이 결국 기적을 불러옵니다.

 

   오늘 저 역시 치유 받은 나병환자처럼 주님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깨끗해지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보란 듯이 새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480번 /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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