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복음서 13장> 깨어 있어라
13장은 하나의 작은 묵시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 묵시록과 마찬가지로 13장에서 말하는 종말에 대한 예언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말 예언을 호기심이나 공포심으로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1절-2절 :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1절..<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돌들이고 얼마나 장엄한 건물들입니까?">--예수님께서는 사흘 동안 성전에서 활동하신 다음에 성전을 마지막으로 떠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나가실 때' 라는 말은 예루살렘 성전이 예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처지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은 멸망하게 될 운명에 내맡겨진 것입니다. 그때 어떤 제자가 성전을 돌아보며 감탄합니다.
여기서 '스승님'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원문에는 '선생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대단히 화려하고 웅장했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대단한 돌'이라는 말은 성전 건축에 사용된 귀한 돌들과 성전 장식에 사용된 보석들을 뜻합니다. '장엄한 건물들'이라는 말은 성전의 거대한 규모를 가리킵니다.
2절..<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예수님께서는 그 웅장한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라는 말에는 '지금은 저 웅장한 건물들이 영원히 서 있을 것처럼 보이겠지만'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서기 66년-70년에 열혈당을 중심으로 해서 로마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했는데, 정치적인 독립과 종교적인 정결 회복이 목표였습니다.
그 전쟁은 성전 안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수비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마지막에는 성전 경내로 후퇴하여 저항하다가 성전 붕괴와 함께 전쟁이 끝났습니다. 서기 70년 8월 29일, 로마 병사 하나가 성전에 불을 질렀고, 성전은 벽만 남고 모두 불에 타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을 완전히 장악한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예루살렘 도성 전체와 성벽, 그리고 성전을 모두 파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은 남아있던 벽마저 모두 파괴되었고 예루살렘도 폐허로 변했습니다.
그 후로 성전은 재건되지 못했고, 지금까지 약간의 벽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은 곧 유대교라는 종교의 파멸을 예언한 것이기도 합니다.(물론 유대인들 안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3절-13절 : 재난의 시작>
3절..<예수님께서 성전 맞은쪽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예수님께 물었다.>--지금의 상황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성전을 나와서 베타니아로 돌아가다가 올리브 산에서 잠시 쉬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리브 산에 오르면 성전 경내가 한 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맞은쪽 올리브 산에 앉아서 성전을 보고 계실 때, 앞의 2절의 성전 파괴 예언에 놀란 제자들이 그 말씀에 대해 질문하려고 예수님께 다가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는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았던 제자들입니다. 다른 중요한 일에서는 보통 세 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측근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왜 네 명의 제자가 언급되고 있는지 확실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종말에 관한 계시와 무슨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4절..<"저희에게 일러 주십시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저희에게 일러 주십시오.' 라고 간청하는 말은 제자들도 평소에 종말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런 일'이라는 말은,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도들이나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시기가 언제인가? 둘째는, '그 일'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 무슨 표징이 나타날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 중에서, 그때가 언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으시다가 뒤의 32절에 가서야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5절부터의 예수님의 말씀은 주로 표징들과 재난들에 관한 말씀인데, 예수님께서는 우선 속지 말아야 할 일들부터 말씀하십니다.
5절-6절..(5)<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6)<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예수님께서는 우선 가짜 그리스도에게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와서' 라는 말은 '나라고 주장하면서' 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칭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라는 말은 자기가 구세주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속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유대 독립 전쟁이 일어날 무렵에 자신이 메시아라고 주장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세상이 어수선할 때마다 자칭 예수라는 사람들이 등장했었습니다.
그런 가짜 그리스도(메시아) 또는 가짜 재림 예수는 종말의 때가 왔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사기꾼들입니다. (5절-6절의 말씀은 가짜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7절-8절..(7)<그리고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불안해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아직 끝은 아니다.> (8)<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곳곳에 지진이 발생하고 기근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통의 시작일 따름이다.>--7절-8절은 전쟁, 지진, 기근의 예고입니다. 전쟁은 로마를 상대로 한 독립전쟁과 세계적인 전쟁을 모두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 지진, 기근은 종말이 아니고, 종말의 표징도 아니고, 표징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라는 말은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고 멀리서 소문을 듣게 된다는 것을 나타 내고 있는데, 이 전쟁은 아마도 유대 독립전쟁을 가리킬 것입니다.
'불안해하지 마라.' 라는 말은, 그 전쟁을 종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일이 반드시 벌어지겠지만'이라는 말은 그런 일들이 하느님의 섭리(계획)에 속해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벌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한 과정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아직 끝은 아니다.' 라는 말은, 그런 전쟁들이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라는 말은 로마제국 내의 민족들끼리의 전쟁, 즉 내란과 반란을 뜻합니다.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라는 말은 국제 전쟁, 또는 세계 전쟁을 뜻합니다. '곳곳에 지진이 발생하고 기근이 들 것이다.' 라는 말은 대규모 자연재해가(지진과 기근 외에도) 곳곳에 발생할 것이라는 예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통의 시작일 따름이다.' 라는 말은, 그런 일들 자체가 종말은 아니고 종말이 오기 전의 한 단계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고통'이라고 번역했는데, 새번역 성경의 번역대로 '진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여기서 '진통'은 산모의 진통을 뜻합니다.) 그 진통이 두렵기는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당황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9절..<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는 너희가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서 증언할 것이다.>--'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라는 말은, 박해를 받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붙잡혀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 아니고.) 여기서 '의회'는 회당의 유지 23명으로 구성된 지방 법정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라는 말은 유대교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여 신자들을 붙잡아서 지방 법정에 넘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회당'은 유대인의 마을마다 있었던 유대교 회당입니다. '회당에서는 너희가 매를 맞을 것이다.' 라는 말은 지방 법정에서 태형을 선고하면 회당에서 태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지방 법정에는 태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매는 39대까지 때렸는데, 바오로 사도는 이런 태형을 다섯 번이나 받았습니다(2코린 11,24). 예수님 말씀대로 서기 50년경에 유다 지방의 여러 교회가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나 때문에' 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총독들'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들을 가리킵니다. '임금들'은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제국 내의 임금들, 특히 헤로데 왕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의회와 회당은 유대 법정을 뜻하는 말이고, '총독들과 임금들 앞'은 로마 법정을 뜻합니다.
사도들과 신자들은 유대교의 박해도 받았고, 로마 제국의 박해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박해는 서기 64년-68년의 일입니다.) '증언할 것이다.' 라는 말은, 박해는 믿음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복음을 증언할(선포할) 기회도 된다는 뜻입니다.
10절..<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이 구절은 종말이 오기 전에 먼저 온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선포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되어야 한다.' 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계획대로 실현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또 이 말은 박해조차도 종말의 표징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도들과 신자들은 박해를 받기 전에, 또 박해를 받는 중에도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11절..<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법정에 넘길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그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법정에 넘길 때'는 '종교박해로 재판을 받게 될 때'입니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은 재판을 받게 될 때 자기의 인간적인 지식이나 말재주로 답변하려고 애쓰지도 말고, 말재주가 없다고 걱정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그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라는 말은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니까 그 도우심에만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옆에 계셔서 재판 때에 할 말을 일일이 불러주실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라는 말은 박해를 받게 될 때에 틀림없이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대신 말씀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 종교박해는 사도들과 신자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박해를 받는 이들을 성령께서 내버려두실 리가 없습니다. 평상시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도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박해를 받을 때에도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믿음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12절..<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제자들과 신자들이 받을 박해 중에는 가정에서의 박해도 있습니다. 12절에서 말하는 상황은 종교 때문에 생기는 가정파탄의 상황입니다. (단순한 가정불화가 아니라.) 여기서는 형제와 부모와 자식만 언급했지만, 실제로는 가족, 친척, 친구 등 주변의 가까운 모든 이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고 죽음을 당하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이 박해는 권력자의 박해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13절..<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제자들과 신자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 이름 때문에' 라는 말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 때문에', 즉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며 우리에게 구원과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입니다. '미움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되는 미움, 증오, 모욕, 박해 등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끝'은 개인의 죽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끝까지' 견디어낸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참고 견디면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은 하느님으로부터 궁극적인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박해를 받지 않도록 도와주시겠다는 약속도 없고,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겠다는 약속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명시적으로 하신 약속은 재판 때에 답변할 말을 성령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약속뿐입니다.
끝까지 견디어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견디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으로도 해석되지만, 박해 자체를 없애주시겠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시련과 박해와 고난을 겪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험한 산을 넘어가야 할 때, 그 산을 넘어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산을 없애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14절-23절 : 가장 큰 재난>
예수님께서는 앞의 3절-13절에서 말한 재난과 박해는 종말이 아니고(7절), 진통의 시작일 따름(8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런 일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14절에서부터 말하는 재난들은 종말 직전에 벌어질 일들이고, 이런 일들이 닥치면 신속하게 달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4절..<"있어서는 안 될 곳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 있는 것을 보거든 ㅡ 읽는 이는 알아들으라. ㅡ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라.>--기원전 167년에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온 시리아왕 안티오쿠스가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 제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제우스신의 신상과 그를 섬기는 제단을 세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 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신성모독이었습니다. 또 당시의 전쟁으로 성전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일이 다시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미 앞에서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에, 성전에 우상이 다시 서는 일이 생긴다는 뜻은 아니고, '자칭 하느님이라고 선언하는 자(반그리스도,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이다.' 라고 해석됩니다. 그런 자가 나타나고 큰 재난이 닥치면, 그것은 곧 종말이 임박했다는 징조가 될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곳'은 '혐오스러운 것(우상)이 있어서는 안 될 곳', 즉 성전을 가리킵니다.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말은 우상이나 황제의 상, 또는 우상을 섬기는 제단을 뜻하는데, 그것들은 성전을 모독하는 물건들이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들입니다. '황폐'를 부른다는 말은 전쟁으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된다는 뜻입니다. '서 있는 것을 보거든'이라는 말은, 실제로 우상이 성전에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이라고 자칭하는 자가 쳐들어와서 온 나라가 폐허가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ㅡ 읽는 이는 알아들으라. ㅡ' 라는 말은 이 구절에서 말하는 예언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르코 자신이 직접 쓴 구절로 생각됩니다.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라.' 라는 말은, 예루살렘을 피난처로 삼지 말고 산으로 피신하라는 충고입니다. 그런데 유다 지역 자체가 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말은 유다 지역 밖에 있는 산으로 달아나라는 뜻입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신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벗어나 요르단 강 건너편의 산으로 달아났습니다.)
(달아나라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자들과 같이 있다가 그들과 함께 휩쓸려서 멸망을 당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가족이 달아난 것은 단순히 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죄인들과 한통속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예언을 당시의 독립전쟁에만 한정된 예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산으로 달아나라.' 라는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 만든 도시에 의지하지 말라, 즉, 인간의 힘에 의지 하지 말라, 정도의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15절..<옥상에 있는 이는 내려가지도 말고 무엇을 꺼내러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마라.>--이스라엘에는 당시나 지금이나 슬라브식 가옥이 많다고 합니다. 건물 외벽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사람들은 옥상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내려가지도 말고 무엇을 꺼내러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마라.' 라는 말씀은 옥상에서 집 안으로 들어갈 만큼의 여유도 없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16절..<들에 있는 이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마라.>--여기서 '들에 있는 이' 라는 말은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마라.' 라는 말은, 일하기 위해서 밭둑에 벗어둔 겉옷을 집으려고 돌아설 여유도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집으로 들어가지 말아라.' 라고 번역했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17절..<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여기서 '불행하여라.' 라는 말은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사람들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현한 말입니다.
어떤 급박한 상황이나 재난 때에 제일 불행한 사람들은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입니다. (임신한 일과 젖먹이가 딸린 것이 불행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몸이기 때문에 쉽게 피난을 갈 수 없는 것이 불행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전쟁이나 재난 때에 제일 큰 고통을 겪고, 제일 피해가 많은 사람들은 여자들과 어린이들입니다.) (이 말씀을 임신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재난의 비참함과 고통스러운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18절..<그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그 지역의 겨울은 우기이기 때문에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가 많아서 추운 계절이고, 길들은 진흙탕이 되어 피난 가기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종말 직전의 재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기도하여라.' 라는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는 그런 재난을 피하기 어렵고 하느님께만 의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추방한 것은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었습니다.)
19절..<그 무렵에 환난이 닥칠 터인데, 그러한 환난은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창조 이래 지금 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앞의 14절-18절에서 말한 재난은 주로 전쟁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난은 전쟁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재앙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환난은 종말이 임박했다는 징조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창조 이래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은 한마디로 말해서 '전무후무한'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탈출기 11장 6절과 다니엘서 12장 1절 등에서 온 표현인데,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무섭고 참혹한 재앙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참혹한 전쟁이나 대학살, 또는 대규모의 재앙은 많이 있었고, 그것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그것이 전무후무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그런 일은 자주 있었고, 앞으로도 생길 수 있는 일들입니다. 지금 이 구절에서 말하는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재난은 우리가 겪은 그 어떤 전쟁이나 재앙보다도 더 끔찍하고 무서운 대재앙입니다. 즉 종말이 오기 직전의 재난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대재앙입니다.)
20절..<주님께서 그 날수를 줄여 주지 않으셨으면, 어떠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몸소 선택하신 이들을 위하여 그 날수를 줄여 주셨다.>--'주님께서 그 날수를 줄여 주지 않으셨으면'이라는 말은, 그런 재난들이 하느님께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일으킨 재난은 아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하느님은 인류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을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구원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그 날수를 줄여 주지 않으셨으면'이라는 말과 '그 날수를 줄여 주셨다.' 라는 말은 그런 재난이 모두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여기서 '줄여 주지 않으셨으면'이라는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줄여 주시지 않는다면'으로 번역했습니다.
문장만 놓고 보면 '않으셨으면'이라는 과거형은 어색하게 보이고, '않는다면'이라는 번역이 자연스럽게 보이는데, 원문도 과거형으로 되어 있고, 뜻을 생각하면 '않으셨으면'이 맞습니다.
여기서 과거형의 표현은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몸소 선택하신 이들'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뜻합니다. 그러나 신자 개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됩니다. (각 개인의 심판과 시련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재난의 시간을 줄여주셨습니다. 즉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13절에서 끝까지 견디어내라는 격려만 있었고, 살려주시겠다는 약속은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도 날수를 줄여주신 것은 단순히 재난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잃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인간이 끝까지 견디어내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21절-23절..(21)<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아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또는 '보아라, 저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23)<그러니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종말 직전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속일 것입니다. 또 거짓 그리스도에게 속은 사람들이 '보아라, 여기 계시다, 저기 계시다.' 하면서 몰려다닐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은 앞의 6절에서 말한 가짜 그리스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6절에서는 이미 나타났거나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가짜 그리스도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는데, 여기서는 종말 직전에, 또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나타날 가짜 그리스도와 가짜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14절에서 말했던, '성전을 모독하며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자칭하는 자'의 졸개들일 것입니다. 또 그들은 속임수든, 초능력이든, 어떻든 기적(표징)처럼 보이는 일과 놀라운 일들(이적들)을 행할 것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신자들까지도)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일들에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해둔다.' 라는 말은 단순히 미리 경고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참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의 말씀만이 참된 말씀이니 잘 새겨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4절-27절 :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이제 본격적으로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말과 예수님 재림 때에 일어날 일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요한 묵시록이나 테살로니카 전서와 후서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24절-25절..(24)<"그 무렵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25)<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땅의 재난이 일단 끝나면 하늘에 이변이 생길 것입니다.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우주 전체가 요동을 치게 된다는 말인데, 이것은 종말 때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하늘의 세력들'이라는 말은 해, 달, 별들을 모두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린다는 말은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진다는 말을 종합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적인 표현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종말이라는 사건이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전우주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입니다.
26절..<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이 구절은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온 표현인데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큰 권능, 영광, 구름'은 예수님이 천상적이고 신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는 표현들입니다. '큰 권능'은 심판자이며 통치자로서의 권능입니다. '영광'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구름을 타고' 온다는 말은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 구름을 이용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서 온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볼 것이다.' 라는 말은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은 하늘에서 땅으로 오시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곧 심판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볼 것이다.' 라는 말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죄인들은 심판자를 '보기만 해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27절..<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사람의 아들, 즉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일이 아니라, 사실은 구원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천사들은 예수님의 심부름꾼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이들'은 앞의 20절에서처럼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라는 말은, 사람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남김없이 모두 다 불러 모은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억울하게 탈락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모을 것이다.' 라는 말은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모아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즉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자기가 선택한 이들'이라고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각 개인의 자유의지와 노력들이 완전히 무시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구원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건 자기 탓입니다. 또 아무도 그 심판 자체를 면제받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심판을 받겠지만 구원을 받을 사람에게는 구원의 심판이 되는 것이고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멸망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28절-31절 : 무화과나무의 교훈>
14절-23절은 종말 직전의 큰 재난을 말한 것이고, 24절-27절은 종말과 재림을 말한 것입니다. 28절-31절은 그런 일들이 틀림없이 곧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28절..<"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그 지역에 흔히 있는 다른 나무들은 대개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수인데, 무화과나무는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고 마른 것처럼 보이다가 봄이 되면 잎이 돋아나고 가지가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그곳은 봄과 여름 사이가 매우 짧아서, 무화과나무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표시가 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실제로 무화과나무를 계절의 변화의 표시로 삼았습니다. (여름이 온다는 것은 당시 그 지역에서는 추수철이 되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추수는 심판을 상징합니다.)
29절..<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무화과나무를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되는 것처럼 종말 전의 재난을 보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앞의 14절-23절의 재난들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자이면서 구원자이시고 심판의 날은 곧 구원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문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곧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또 이 말은 그런 재난이 닥치더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음과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격려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 재난 자체가 곧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와 있다는 표시가 되기 때문에 어떤 재난, 시련, 고통을 겪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30절..<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라는 말은 엄숙하게 강조하기 위한 관용어입니다. 여기서 '이 세대' 라는 말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 세대'를 자기들 세대로 생각했습니다.
사도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바오로 사도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사도들과 신자들은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을 자기들이 죽기 전에 종말과 재림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앞에서 언급한 재난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대'를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당시의 세대라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오늘날까지도) 예수님의 재림은 없었고, 그리고 '그때가 언제인가?' 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서 32절에서 '모른다.'고 대답하셨기 때문에, '이 세대'가 당시의 유대 민족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종말이 왔을 때의 온 인류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예수님 당시의 세대인지, 조금 후의 세대인지, 아니면 그냥 막연한 비유법인지?) 따라서 '이 세대' 라는 말이 당시의 세대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떻든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고 뚜렷한 결론도 없습니다. 하여간에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그 일이 분명히 일어난다는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항상 그날을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1절..<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 구절은 예수님의 말씀은 확실히 실현된다는 것을 대단히 강한 어조로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에 맞서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고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라는 말은 영원한 것처럼 보이는 하늘과 땅도 언젠가는 사라질 유한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 말'이라는 말은 종말에 관한 예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뜻합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고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32절-37절 : 깨어 있어라>
32절..<"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그날과 그 시간'은 ‘종말과 재림’의 날과 시간입니다. 그날과 그 시간을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예수님)도 모르고 아버지 하느님만 아신다는 말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지만 분명한 결론은 없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대로 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고, 아버지가 알고 계신 것은 아들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인간으로 사신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를 따로 구분해서 생각한다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어 지상에 오신 인간 예수는 인류 구원의 사명은 받았지만 종말의 시간을 전할 사명은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삼위일체 안에서의 아들은 그것을 알고 계시지만, 지상의 인간 예수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할 사명이 없었고,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 하느님에게만 남겨진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알고 계시지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뜻에서 모른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그걸 전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혼란만 주기 때문입니다.)
33절..<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그때 가 언제 올지', 즉 종말과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 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르지만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라는 말은 34절의 문지기의 비유에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신앙인은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종말을 준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4절..<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종들에게 각자 해야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 잠자지 말고 깨어서 기다리라고 명령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문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얼마 뒤에는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느님께로 가시지만, 또 언젠가는 틀림없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공동체의 책임자들과 구성원들은 각자 맡은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문지기'를 베드로 사도나 어떤 특정 인물로, 또는 어떤 특정 직책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신앙인이 다 문지기처럼 깨어서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35절-36절..(35)<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유대인들은 원래 밤을 삼등분했고(루카 12,38), 로마인들은 35절처럼 밤을 사등분했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인들의 방식도 통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녁, 한 밤중, 닭이 울 때, 이른 아침을 모두 나열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 시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오신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밤에 잠도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을 강하게 강조하는 비유 말씀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늘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뜻하고, 잠자는 것은 자만하고 방심하면서 불성실하게 생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이 잠자는 것을 본다는 것은 불성실한 신앙인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신앙인은 종말의 심판 때가 되면 처음부터 믿음 없이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될 것입니다.)
37절..<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앞의 5절부터 지금까지 하신 말씀들은 모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에게(3절)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들이 네 제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사도들과 신자들도 새겨듣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3장의 예언을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만 생각한다면, 이 예언은 지금의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예언이 됩니다. 물론 사도들은 이스라엘 멸망 예언으로 알아들었고, 지금의 학자들 중에도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도성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온 세계로 흩어진 것이 서기 70년의 일이고, 그 뒤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세월이 흐를지 알 수 없습니다. 1999년에 종말이 온다고 떠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 1994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옛날 999년에도 종말이 온다고 호들갑을 떤 사람들이 있었고, 앞으로 2999년이 되면 또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죽게 된다면, 나에게는 지금이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인류 전체의 종말이 언젠가 오기는 오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각 개인의 종말은 또 그것 대로 개인에게 찾아갈 것입니다. 종말의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처지입니다. 그렇다면 30절의 '이 세대'는 바로 지금, 우리의 세대일 수 있습니다.
종말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나 오늘, 지금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도 아니고, 내년도 아니고, 지금 깨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깨어서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마지막 순간이 언제가 되든지, 어떻게 되든지 당황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1테살 5,3)."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1테살 5,4)."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잠자는 이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이들은 밤에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니,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1테살 5,6-9).
" 우리가 깨어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즉 심판받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서입니다. 혼나지 않으려고 억지로 깨어서 기다리는 것과 사랑하는 이가 보고 싶어서 깨어서 기다리는 것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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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술, 마약, 도박...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 가는 것도 잊게 하고,
인생이 낭비되는 것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그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로
우리를 취하게 하고, 깊이 빠지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흔히 '중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알콜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인터넷 중독, 일 중독...
그렇게 중독된 상태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종말을 대비한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온 정신과 온 몸이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데,
그 상태로 예수님 말씀이 들리겠습니까?
'마니아'라는 말도 사실 위험한 말입니다.
뭔가에 '미친 것처럼 빠져 있다'는 것도 정도껏 할 일입니다.
그게 정말 건전하고 생산적인 일이라고 해도...
신앙인들에게는,
예수님 말씀 외에는
'미친 것처럼 빠져들'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