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천♥ (1요한3,1-24

2015. 1. 19. 오후 4:58:32

글자

 

 

<요한의 첫째 서간 3장>

1절..<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는가? 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을 만큼 큰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해 보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는 것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만 받게 되는 하느님의 선물이고 특권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진짜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세상'이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세상이 아니라 악마의 영향을 받고 악에 물들어 있는 세속을 뜻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고귀하고 존엄한 신분인지, 얼마나 큰 은총을 받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 또는 하느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은총을 받고 있는지를 모르는 이유는 하느님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요한 16,3)."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2절..<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이제'는 '우리가 아직 이 세상에 있는 동안'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은총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우리가 지금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은총 속에 있지만, 아직 참 행복의 완성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영광과 어떤 행복을 누리게 될지도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이 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시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여기서 '그분'은 하느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예수님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처럼 된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본질에 참여한다.' 라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고, '그리스도와 닮게 된다.' 라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뜻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 라는 말은 '믿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여기서도 '그분'은 하느님으로도, 예수님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뵙게 된다.' 라는 말은 하느님을 뵙는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뵙는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그분'을 '그리스도'로 번역했는데, 원문은 그냥 '그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2절과 비슷한 말을 바오로 사도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3절..<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여기서도 '그분'은 하느님일 수도 있고, 예수님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희망'은 종말에 얻게 될 참 행복, 구원, 영원한 생명, 또는 하느님을 직접 뵙는 행복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이 말은 종말에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예수님처럼 깨끗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죄가 없으신 순결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와 희생으로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깨끗해지고 싶다면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고,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순결하게 합니다.' 라는 말은 순결해야 한다, 깨끗해져야 한다, 라는 명령입니다.

4절..<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죄라는 것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법'이라는 말은 종말 전에 나타난다는 '악마의 악행'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8절)." 그래서 죄라는 것은 단순히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는 행동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5절..<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여러분도 알다시피' 라는 말은 '여러분은 잘 알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분'은 그리스도입니다. '나타나셨다.' 라는 말은 '이 세상에 오셨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죄를 없애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예수님은 죄를 없애기 위한 속죄 제물, 즉 어린양이신데, 어린양은 순결, 깨끗함의 상징입니다.

죄를 없애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죄를 없애기 위한 제물, 즉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6절..<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이 말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이 말은 신자들은 무조건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것에 비례하여(일치를 이루고 있는 그만큼)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죄를 짓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지도, 믿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분을 뵙다.' 라는 말은 '그분과 함께 산다, 그분과 일치를 이룬다.' 라는 뜻입니다. '알다.' 라는 말에는 '믿는다.' 라는 뜻과 사랑하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신앙인들도 자주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은 예수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더라도 다음 순간에는 그 일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방심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7절..<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여기서 '자녀 여러분'을 공동번역 성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에는 그냥 '자녀들아'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이 말은 앞의 2장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적', 또는 거짓 교사들, 이단자들, 또는 악마에게 속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자들은 '신자들은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주장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이 구절은 '예수님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라.' 라는 당부인데, 믿음과 행실이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의로운 일'이라는 말은 자비를 베푸는 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을 뜻합니다.

8절..<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죄라는 것은 악마의 유혹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자는 악마의 하수인이 되는 것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악마는 천지창조 때부터(처음부터) 하느님께 반항하면서 죄를 지었고,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악마가 한 일'은 '죄와 죽음'입니다. 악마가 한 일을 없앤다는 말은 죄와 죽음에서 인간들을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을 죄에서 구원하고 죽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9절..<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9절은 6절과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1절)'입니다.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라는 말은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라.'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라고 해서 무슨 짓을 해도 죄가 안 된다거나, 하느님의 자녀는 자동적으로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뜻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씨'로 번역되어 있는 말을 공동번역 성서는 '본성'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은 '씨'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말을 '성령'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해석은 뒤의 4장 13절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4,13)."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를 죄 짓지 않게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씨가 죄라는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씨는 '하느님의 의로운 일'이라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동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협력하고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즉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씨가 의로운 일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이 말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려면 죄를 짓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죄를 짓는다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0절..<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악마의 자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자녀라면 자비와 사랑을 행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악마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실천 여부에 따라서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를 뚜렷이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인가, 악마의 자녀인가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날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11절-24절 : 사랑의 실천>

11절..<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처음부터' 라는 말에는 천지창조 때부터라는 뜻과 그리스도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라는 뜻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들은 말씀'은 '계명'을 뜻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라는 계명은 '처음부터' 있었던 계명이고, 이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곧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특징이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12절..<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그가 '악마에게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카인이 자기 동생을 죽이는 죄를 저지른 것을 보면 그가 악마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의 2장 9절에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는 자'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카인이 동생을 미워하고 죽인 것은 그가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있다는 말은 곧 악마에게 속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악마는 원래 하느님을 미워하고, 하느님에게 속한 사람을 미워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악마에게 속해 있는 카인이 하느님에게 속해 있는 아벨을 미워하고 죽였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입니다. 그러면서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보통 시기심, 질투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편지의 저자는 '미움' 때문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워하게 된 이유는 하느님께서 카인의 제사는 악하다고 하시면서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는 의롭다고 하시면서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이유를 창세기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데, 이 편지의 저자는 그것도 카인의 악행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한 일'은 '카인의 제사'를 가리키고, '동생이 한 일'은 '아벨의 제사'를 가리킵니다.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라는 말은 카인의 제사는 악한 것이었다는 뜻이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다.' 라는 말은 아벨의 제사는 의로우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의로운 제사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악한 제사와 의로운 제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아벨은 하느님께 가장 좋은 맏물을 바쳤는데, 카인은 가장 좋은 것은 자기가 차지하고 하느님께는 형식적인 제사만 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간에 아벨은 의인의 전형이 되었고, 카인은 악인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그렇게 기울어진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나 다 카인이 될 수도 있고, 아벨이 될 수도 있습니다.

13절..<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이 구절은, 카인이 아벨을 미워하고 죽인 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그리스도교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악마와 어둠에 속해 있고, 우리 교회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빛에 속해 있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14절..<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은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즉 영원한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요한 묵시록 20장 14절에서 말하는 '두 번째 죽음', 영원한 소멸로 해석됩니다. 14절은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받더라도 형제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는 격려와 위로의 말입니다.

15절..<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자는 모두 살인자' 라는 말은, 미움과 살인은 나중에 하느님의 심판 때에 같은 죄로 간주 되고, 같은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이미 가르치신 것입니다(마태 5,21-26).

여기서 말하는 '미움'에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살인'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것'과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는 모두 같은 죄로 간주되고, 살인자와 형제를 미워하는 자와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나중에 같은 심판을 받게 되고 같은 벌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받게 될 벌은 '영원한 생명에서 제외되는' 벌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라는 말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16절..<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신 본보기이고, 우리는 그것을 보고 사랑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2-13)." 이것은 예수님의 계명이고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17절..<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우리는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데 궁핍한 형제를 위해서 세상 재물을 내놓는 정도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이 형제를 위해서 죽을 수가 없다면 하다못해 당신의 재물이라도 그에게 주도록 하십시오(성 아우구스티노)."

사실 형제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일은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재물로 형제를 돕는 것은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하느님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닫아 버린다.' 라는 말은 형제가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는 말이고, 이 말은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지 않고 궁핍한 형제를 외면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은 형제가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도 문이 닫혀버린 그 마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표현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18절..<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공동번역 성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에는 그냥 '자녀들아'로 되어 있습니다.) '말과 혀로' 라는 말은 '혀에서 나오는 말로'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라는 말은 '진리에서 비롯된 행동으로(진실한 행동으로)' 라는 뜻입니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18절은 사랑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19절..<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이 말은 '앞의 16절-18절에서 말한 대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에게 속해 있음을, 또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여기서 진리에 속해 있다는 말은 하느님의 계시 진리에 속해 있다는 말이고, 이 말은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알게 된다는 말은 여기서는 입증한다는 뜻입니다.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곧 우리가 받게 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때에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0절..<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이 말은 '만일에 혹시라도 형제애를 실천하지 못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이 말은 하느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보다 넓고 위대하고 자비로우시다는 뜻입니다. (옹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사랑의 실천을 하지 못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 있더라도(또는 죄를 지었더라도) 구원을 받지 못할까 불안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장 9절에서 말한 대로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이 말은 하느님께서는 때로는 사랑을 실천하기도 하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처지를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21절..<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저자는 신자들을 '사랑하는 여러분'이라고 부르면서 확신을 가지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없으면'이라는 뜻입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21절은 2장 28절과 같은 내용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을 하지 말고, 사랑의 실천을 잘하라고 권고하고 격려하는 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말은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때에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22절..<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된다.' 라는 말은, 우리가 사랑의 실천을 잘한다면 기도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는' 것은 16절-18절에서 말한 형제애 실천을 뜻합니다. 22절은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먼저 사랑의 실천을 잘하라는 뜻도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4)."

23절..<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그분의 계명'은 하느님의 계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예수님의 계명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라는 말은, 그분(하느님 또는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타내는 예수님의 존엄성을 믿는다는 뜻인데,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 라는 것이 '그분의 계명'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하나의 계명입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즉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당연히 그 사랑을 본받아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24절..<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믿음과 사랑'이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함께 살고 싶다면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는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 라는 말은, 하느님과 사람의 완전한 일치와 친교를 뜻합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이 말은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깨달을 수 있다.', 또는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곧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계명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이제 성령에 대한 언급은 4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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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자신의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목숨을 내놓으셨고,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이름과 명예와 자존심을 내놓으셨고,

사생활도 포기하셨고,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았고,

심지어는 속옷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생활을 존중받고 싶어 하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고, 고집을 꺾지 않으려고 하고,

명예를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 내놓는 것보다

자신의 것으로 남겨놓는 것이 더 많습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고

자신의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사랑의 실천♥ (1요한3,1-24)   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요한의 첫째 서간 3장

 

2장에서 의로운 실천으로 끝나면서 3장에서 의로운 실천을 설명하시고

 

의로운 실천은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산상설교를 말씀 하시고 율법의 의를 설명하시고

 

율법에서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율법이 완성 되어야 하며

 

 

 

율법의 의(마태복음 5장)와 사람의 의(마태복음6장)와 하느님의 의(마태복음7장)를

 

설명 하시면서 율법의 의와 사람의 의에 있을때는 불완전하지만

 

하느님 의에 있을때는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의 능력으로 일하신다고 설명 하시며

 

의로움은 '디카이오스' 또는 '디카이오쉬네' 예수님 자신을 말하며

 

의로우신 분은 하느님과 예수님 이시며 하느님 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마태복음25,31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사랑으로 해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님께 해 드리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 안에 아가페 사랑이 없는데

 

사랑 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며 먼저 의로우신 분인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

 

예수 그리스도님이 그리스도인들 안에 오셔서 사랑의 하느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 할때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며 거룩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아가페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설명:

세상이 그 분을 알지 못한다고 할때 세상은 '코스모스' 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며

육에 있는 사람은 어둠에 있기 때문에

빛이신 그리스도를 볼수가 없으며 깨달을수가 없는 것이며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속성이며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우리들 안에 계심을 볼수 있으며

우리들 안에 있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고 체험하는 분은

다른 형제자매들 안에 계신 사랑의 하느님이 일하고

계심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명:

성경에서 요한복음 14,8

필립보가 예수님께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간청 했을때

예수님께서 너는 나와 3년간을 같이 있었는데 나를 못 봤단 말이냐! 나를 보았으며 아버지를 본것이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예수님 안에 계신 사랑의 하느님을 보게 되면

우리 안에 사랑으로 계신 사랑의 하느님도 볼수가 있으며

사랑의 안경을 끼고 사랑의 눈으로 만물을 보았을때

하느님의 존재를 볼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원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설명:

죄는 '하마르티아 '원죄를 말하며

불법은 '아노미아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를 말하는데

아담 하와가 지은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유전이 되며

'아노미아'인 불법은 율법을 다지키지 못하는 죄를 말하며

613개의 율법을 다 지켜야 의로운 사람이 되며

세례를 통하여 원죄사함 받고 율법을 사랑의 계명으로

완성 받지 못하면 의로움에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아 거룩하고

의로운 성도들이 될수 있는 구원의 길을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설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죄인 원죄가 없으시다는 말이고

성경에서 죄라는 말은 원죄를 말하며

그리스도인들도 말씀으로 진리성령으로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처하게 되면 죄사함을 받게 되며

진리로 거룩하게 하소서.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7,17)라고 말했으며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님이 우리들 안에 말씀으로

성체로 들어 오시면 죄사함 받고 깨끗하게 되는 것이며

우리가 거룩해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7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8

죄(원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말씀)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설명:

하느님의 씨는 말씀과 성령을 말하며

원인적으로 생명의 말씀이 안에 계시면 결과적으로

아가페 사랑의 열매가 나와 사랑으로

빛과 소금 역활을 하게 되며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10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사랑의 실천 (의로움의 실천)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 말씀이다.

(요한복음14,23~24)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이웃사랑은 그리스도와 복음 말씀을 주는 것이 이웃사랑인데

먼저 말씀과 관계를 맺어 말씀의 열매인 아가페사랑이 와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데

 

우리들 안에 아가페 사랑이 없는데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지 능력이 나오지 아니하며

마태복음25,31 최후의 심판에서 목 마른 사람,배 고픈사람,

병든 사람,헐벗은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라고 말하며

요한서간은 사랑의 열매장인데 많이 사랑하면 많이 용서 받고

많이 용서하는 사람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예수님게서 원죄중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들을 용서 하시고 예수님 목숨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사랑으로 빛과 소금 역활을 하여 지상에서부터

사랑으로 하늘나라를 예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설명:

세상은 카인의 후손들을 말하며

어둠이 빛의 자녀들인 영의 자녀들을 미워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안에 있는 사탄이 빛의 자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봉사할 때 박해하고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뻐하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4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영생)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설명:

목숨은 '푸쉬케' 인데 영은 '프뉴마' 육은 싸르크

이 푸쉬케는 목숨,혼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형제자매를 위하여 영혼과 육신을 내 놓는 것이 이웃사랑 이라고

말씀 하시며 자녀나 부모를 사랑할 때 마음과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희생을 바쳐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설명:

재물은 '비오스' 인데 영적,육적으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도와야 하며

마태복음25,31 목마른 사람,배고픈 사람,헐벗은 사람,병든 환자,

감옥에 가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이웃사랑이며

예수 그리스도님께 해드리는 것이라고 말씀 하시며

이 세상에 빈부격차가 있는 것은 봉사와 나눔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예수님께서도 나는 섬김과 나눔과 봉사하러 왔다고

성경에서 말씀 하시며 우리들도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형제자매들처럼 섬기고 봉사해야

주님의 제자들이라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스플랑크나' 인데 마음 심정 내장 창자란 뜻이며

이 마음이란 말은 spleen 비장이란 뜻이며

마음 깊숙히 우러 나오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카르디아,심장)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설명:

최후의 심판 (마태25,31)서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해 주는것이

예수님께 해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 하시며

리스도인들이 이웃사랑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심판의 기준이 되며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고 주님께서 말씀 하시며

이웃사랑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많은 자비와 용서를

받게 되기 때문에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물질이 있는 사람은 물질로 돕고 건강한 사람은 노동으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로 평화의 인사말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격려와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인 복음말씀을 전하며

말씀 사탕을 줄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설명:

말씀 안에 있을때 계명이 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은 말씀을 말하는데

계명과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말씀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이

오는 것이며 이 사랑으로 살아 가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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