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신앙 공동체♥ (1베드로3,1-22)

2015. 1. 16. 오전 9:27:19

글자

 

 

베드로의 첫째 서간3장      송영진 모세 신부

<1절-7절 : 아내와 남편>

1절..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인 여러분의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십시오.

이 편지의 저자는 시련을 겪고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가장 먼저 노예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했습니다(2,18-25). 이제 두 번째로 아내들을 향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아내들의 처지는 거의 노예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내들에게 권하는 순종은 말만 잘 듣는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은 신자가 아닌 남편들입니다. 저자는 신자가 아닌 남편들이 신자인 아내의 행동을 보고서 '감화를 받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감화를 받는다는 것은 신자가 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말 없는 처신으로' 라는 말은, 말로 설득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2절..그들은 여러분이 경건하고 순결하게 처신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리될 것입니다.

'경건한 처신'은 신자로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순결한 처신'은 아내로서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신자로서나 아내로서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아내의 그런 행동을 보고 남편들도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3절-4절.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

3절은 당시 여성들이 유행을 따라 겉치장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머리를 땋고 금붙이 같은 장신구를 달고 좋은 옷을 차려입는 것은 겉모습만 꾸미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여성들은 유행에 민감했고, 유행을 잘 따랐습니다. 편지 저자는 아내들에게 겉모습만 꾸미려고 하지 말고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라고 충고합니다.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은 '영혼'과 '정신'을 뜻합니다.'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이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의 아름다움보다 영혼의 아름다움을 더 인정해 주신다.' 라는 뜻입니다. 신자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칭찬해 주는 아름다움보다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아름다움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서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을 언급한 것은 아마도 당시 아내들 중에는 온유하지 못한(드세고 거친) 성품과 정숙하지 못한 행동으로 악평을 듣는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그런 여자들의 나쁜 품행은 가정에나 교회에나 모두 해를 끼치는 일이 됩니다.

'썩지 않는 것'이라는 말은 3절에서 말한 금붙이나 좋은 옷은 모두 '썩는 것', 즉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은 것은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남아 있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5절..전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부인들도 남편에게 순종하며 이렇게 자신을 치장하였습니다.

'전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부인들'은 구약시대의 여인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거룩한 부인들'이라는 말에는 도덕적으로 정숙한 여인들이라는 뜻 외에도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의 여인들이라는 뜻도 들어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5절에서 말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찬양하고 있는 옛날의 부인들은 앞의 1절-4절에서 말한 내용처럼 남편에게 순종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었다는 것인데, 그 부인들을 본받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6절..<예컨대 사라도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선을 행하고 아무리 무서운 일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라의 딸이 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대표적인 예로 사라를 언급하는데,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른 내용은 창세기 18장 12절에 있습니다. (그런데 공동번역 성서의 창세기를 보면 '주인'이 아니라 '내 남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 또는 주님으로 바꿔야 합니다.)

지금 6절의 '주인'은 원문에는'주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그에게 순종했다는 내용은 성경보다는 유대교 전승에서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을 행하라는 말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경건하고 순결하게 처신(2절)하라는 말입니다.

'무서운 일'은 신앙에 대한 박해를 뜻하는 말일 수도 있고, 남편의 폭언이나 폭행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무서운 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신자들이란 하느님에게만 속한 자유인이기 때문이고(2,16), 그리고 두려워할 대상은 하느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종합하면 아내들은 겸손하게 순종하고, 경건하고 순결하게 처신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선행을 실천하고, 하느님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남편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1절의 '순종'이 겁에 질려서, 무서워서 노예처럼 복종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아내는 하느님의 자유인으로서 하느님을 위해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덕을 실천하면 '사라의 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라의 딸'이란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를 뜻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참된 자손은 그리스도교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7절..<마찬가지로 남편들도 자기보다 연약한 여성인 아내를 존중하면서, 이해심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아내도 생명의 은총을 함께 상속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가로막히지 않습니다.>--1절-6절의 남편들은 비신자이고, 7절의 남편들은 신자들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아끼고, 이해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여기서 '존중'이라는 말은 공동번역 성서처럼 '존경'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끼고 존경하고 이해심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아내가 자기보다 연약한 여성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생명의 은총을 함께 상속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같은 신앙을 가진 동반자, 동료,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은총을 상속받는다는 말은 나중에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함께' 라는 말은,  부부는 신앙의 동반자이고 동료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아내를 아끼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도는 '가로막히게' 될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 기도가 전달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아내를 아끼지 않고,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의 효력을 기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과 가정생활을 똑같이 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8절-12절 : 참다운 신앙 공동체>

8절..<끝으로, 여러분은 모두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끝으로' 라는 말은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저자는 이쯤에서 편지를 마칠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이 자꾸만 생각났는지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편지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참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로서 신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서로 보살펴주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생각을 같이하라는 말은 마음을 일치시켜 한마음이 되라는 뜻입니다.

동정, 사랑, 자비는 거의 같은 말인데, 공동체 안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던 초대교회에서는 거의 모든 신자들이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신자들의 모임이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려면 누구 하나 잘난 체하거나 교만한 사람 없이 서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

 

9절..<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9절은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반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태 5,44).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라는 말은 보복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라는 말은 보복하지 말고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는 하느님의 선을 나누어준다는 뜻이 들어 있는데, 단순히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축복이 아니라, 하느님께 그 사람을 맡기고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 사람에게 '사랑의 회초리'로 작용할 수도 있고, 모든 일이 다 잘되는 것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판단하고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복을 빌어주라고'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다.' 라는 말은 '여러분은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고 신자가 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것이 사제직입니다. 신자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복을 빌어주는 사제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를 저주하는 일은 신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신자란 축복을 하는 사람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갚고, 축복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복을 상속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상속받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를 보면 9절 끝에 '성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새 번역 성경에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원문을 보면 10절의 첫 부분에 '왜냐하면' 정도로 번역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그 단어를 '성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로 번역해서 9절 끝에 넣었고, 새번역 성경은 그냥 생략했습니다.)

 

10절-12절..(10)<"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는 이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라.> (11)<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 (12)<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서신다.">--

이 구절들은 시편 34편에서 인용한 것인데, 앞의 8절-9절을 구약성경의 말씀으로 뒷받침하려고 인용한 것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라는 말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한다는 뜻입니다.'좋은 날을 보려는 이는'이라는 말은, '종말의 구원, 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을 기다리는 이는'이라는 뜻입니다.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라.' 라는 말은, '혀와 입술로, 즉 말로 죄를 짓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라는 뜻입니다.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신자로서 당연한 일이고, '평화를 찾고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라는 말은, 우리가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다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그분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다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행한 선에 대해 언젠가는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서신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은 의인의 선행을 잊지 않고 갚아주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악인의 악행도 그대로 갚아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13절-17절 : 박해에 맞선 확신>

 

13절..<여러분이 열심히 선을 행하는데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사실 선을 행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일도 많고, 심지어는 죽음을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한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14절..<그러나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하여도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두렵게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십시오.>--'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하여도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라는 말은 마태오복음 5장 10절에 있는 말입니다.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겪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하늘나라가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두렵게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라는 말은,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는 뜻입니다.

 

15절..<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새번역 성경의 '모십시오.'는 '모시십시오.'로 바꿔야 합니다. 맞춤법이 틀렸습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신다.' 라는 말은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면, 즉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지켜주시는 주님이시고, 우리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히 모신다.' 라는 말은 우러러 받든다, 섬긴다, 흠숭을 드린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라는 말은, 신자들이 박해 상황에서 재판과 심문을 받을 때 잘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냥 단순히 비신자에게서 질문을 받을 때 대답을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은 영생에 대한 희망, 부활에 대한 희망인데, 그 '희망에 관한 질문'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와 신앙에 관한 질문을 뜻합니다. '언제나 준비해 두라.' 라는 말은 교리 공부와 성경 공부를 통해서 답변을 미리 준비해 두라는 뜻이 아니라, 항상 하느님께 의지하고 두려움 없이 대처하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11-12)."

 

16절..<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바른 양심을 가지고' 라는 말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즉 말과 행실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됩니다.'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라는 것은 박해와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다운 올바른 처신(2,12)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한다.' 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해, 비방, 중상(2,12)을 모두 가리키는 말입니다.'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한다.' 라는 말은 그리스도교를 중상한 일에 대해서 종말에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17절..<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공동번역 성서는 17절을 의문문으로 번역했는데, 원문은 의문문이 아닙니다.)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두려워할 일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뜻이라면'이라고 가정법으로 되어 있지만, 문맥상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십자가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때가 많지만,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고통은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하느님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18절-22절 : 그리스도의 승리>

 18절-22절의 내용에 대해 학자들은 당시에 존재하던 어떤 신앙 고백문을 이 편지의 저자가 수난부터 승천까지의 부분을 발췌, 인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신앙고백문의 전체 모습은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이 오늘날의 신앙고백문과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18절..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선을 행하다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분입니다. '죄 때문에' 라는 말은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단 한 번'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최종적이고 유일한 일이었음을, 즉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다른 방법은 필요 없었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고난을 겪으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모두 뜻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난을 통해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의로우신 분께서' 라는 말은 예수님만이 의인이시고, 다른 모든 사람은 불의한 사람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불의한 자들'은 모든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셨다.' 라는 말은,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뜻입니다.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이라는 말은 '사람으로서는 살해되셨지만'이라는 뜻입니다.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는 죽으셨지만, 하느님으로서는 다시 살아나셨다는 뜻입니다. 또는 영이신 하느님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19절.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19절과 20절은 논란의 여지가 많고 해석하기가 어려운 구절입니다. 여기서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사도신경에 나오는 저승(고성소)입니다.'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다.' 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정반대 뜻의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저승에 있는 영들이 20절의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은 그곳에 심판을 하러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들이 20절과 상관없이 예수님 이전의 구약시대의 의인들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러 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선포하셨다.' 라는 말은 그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한 말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에는 '기쁜 소식'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하여간에 이 구절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부활하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저승에 가신 것은 믿고 있습니다.

20절..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노아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을홍수로 죽게 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19절을 예수님께서 저승에 가시어 '구원' 활동을 하신 것으로 해석한다면 순종하지 않던 인간들이 홍수로 죽기 직전에 회개를 했다는 뜻이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참고 기다리셨지만 끝내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 홍수로 죽기 직전에 회개를 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입니다.예수님께서 '심판'을 하기 위해서 저승에 가신 것이라면 저승에 있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구원은 완성해서 천당으로 보내고, 다른 인간들은 심판하신 것이 되는데, 이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입니다.

어떻든 19절-20절은 명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구절입니다.여기서 '물로 구원을 받았다.' 라는 말은 홍수의 물이 구원의 수단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홍수의 전 과정이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구원을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21절..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저자는 노아의 홍수가 세례성사를 미리 보여 준 사건이라고 해석합니다.'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 라는 말은 노아의 홍수는 세례성사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고, 세례성사는 노아의 홍수의 본래 모습, 원형이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홍수에서 죄인들에게는 물이 멸망의 수단이었고, 노아에게는 구원의 수단이었습니다. 세례성사에서 물은 죄 속에 살던 옛 인간을 씻어내는(죽이는) 물이면서 동시에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살리는) 구원의 물이 됩니다.

'세례'란 씻는 예식인데, 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씻어내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예식, 즉 죄를 씻어내고 새 인간이 되게 하는 예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라는 말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세례를 받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라는 말을 '하느님께 바른 양심으로 살겠다고 서약을 한다.' 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고, '죄 사함의 은총을 청한다.' 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그만큼 하느님에 대한 의무도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으면서 신자로서의 의무를 잘 지키겠다고(바른 양심으로 살겠다고) 서약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22절..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하느님 오른쪽에 계심'은 우리 교회가 처음부터 믿음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라는 말은 '승천'을 뜻하고, '하느님의 오른쪽에 계신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느님과 동등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허공을 지나 하늘로 올라가셨고, 허공을 지나가시면서 그 공간을 지배하는 세력들을 복종시키셨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여기서 '천사들, 권력들, 권능들'은 모두 하느님께 적대적인 세력들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들, 즉 사탄을 뜻하고, 권력들과 권능들은 악의 세력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는 '세례성사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악의 세력에서 해방시키는 성사'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참다운 신앙 공동체♥ (1베드로3,1-22) /박민화님의 성경묵상

 

베드로의 첫째 서간 3장

 

1장에서는 성도들이 받은 구원에 대해서 감사 찬양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 하시고 2장에서는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관계를 맺은

성도들이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3장에서는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봉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예수아기를  중심으로 하여

성요셉과 성모마리아를 공동체로 성가정을 이룬것 같이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이 한가정을 이뤄 성가정이며 가정공동체를 이뤄가야 하며

예수님의 성가정처럼 참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룩하기 위해서

산돌이신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 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성체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각가정에는 성가정을 이뤄야 하고

교회에서는 교회 공동체를 이뤄야 하고

직장에서는 직장의 공동체를 이뤄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에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야 하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하여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때문에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도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그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

 

세상의 부부관계에 있었서도  사랑으로 충실해야 함을 예화로 들어

신랑인 예수님을 남,녀성도들은 예수님만 믿고 말씀에 충실하게 순종하여

살아가야 하며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성가정을 이룬것처럼

그리스도인들 가정에서도 남편은 부인을 사랑하고 부인도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부모는 자녀들을 사랑해야 성가정이 되지 부부간만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때는 성가정이 될수 없으며

부모와 자녀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미사참여 하며 신앙생활할 때 성가정이 되며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이룩하며

이혼을 하거나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때는 가정 공동체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도하며 사랑으로 살아갈 때

 예수님을 닮은 성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1

마찬가지로 아내들도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들도 아내인 여러분의 말 없는 처신으로 감화를 받게 하십시오.

 

설명:

2000년 전이나 오늘날에도 남편들이 존경받을 일을 하지 못하고

부인에게 고통과 실망을 주는 일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살아 가는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사랑과 신의로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남편인 그리스도와 여자인 성도들이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고

비진리인 이교도인으로 살아가지 말아야 하며

예수님과 복음 말씀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들은 여러분이 경건하고 순결하게 처신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리될 것입니다.

 

설명:

학교 선생들은 말로 가르치지만 예수님께서는 선한 삶으로 살아 가면서

예수님의 삶을 보고 모든 사람이 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인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삶으로 살아 가면서

이교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을수 있도록

좋은 표양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4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

 

설명:

외적으로 머리에 금붙이를 하고 좋은 옷을 입고 사치를 하지 말고

내적인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선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은 삶이며 외적인 사치는 사라지지만

내적인 사랑의 열매로 살아가는 삶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5

전에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살던 거룩한 부인들도 남편에게 순종하며 이렇게 자신을 치장하였습니다.

6

예컨대 사라도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부르며 그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선을 행하고 아무리 무서운 일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라의 딸이 되는 것입니다.

 

설명: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인이라고 불렀는데

 이 주인이라는 말은'퀴리오스' 인데

주인 ,주님,하느님(마태복음21,30  루카복음2,38)이란 뜻인데

즉 주님은 사랑을 주는 사람을 주님이라고 말하며

가정에서 부인이 남편을 주인이라 하는 것도 남편이 부인이나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들 안에 주님이 계신 모든 성도들은  사랑을 줌으로써

주인역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주님을 믿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사라도 하느님과 아브라함을 믿어 약속의 자녀들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7

마찬가지로 남편들도 자기보다 연약한 여성인 아내를 존중하면서, 이해심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아내도 생명의 은총을 함께 상속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의 기도가 가로막히지 않습니다.

 

설명:

세상의 남편들도 부인들을 사랑하며 무례하지 않고 존경하며

살아가야하며 하느님께서도 성도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님을

보내 주셔서 목숨을 바쳐 죄에서 구원하신 것처럼

세상의 남편들도 부인과 가족을 위하여 매일  매일에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 하며

남편은 부인을 예수님처럼 부인도 남편을 예수님처럼

존경하며 사랑해야 하며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 공동체

 

참다운 신앙 공동체는 진리 말씀으로 이뤄진 공동체를 말하며

진리 공동체는 복음 말씀 나눔으로 모든 기도가 시작하여 말씀으로 끝이 나며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과 함께 신앙의 공동체를 이룩하신 것처럼

진리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나누며 삶으로 살아갈 때

성가정의 공동체처럼 사회공동체를 이루게 되며

 

수산시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이뤄 복음 말씀을 나누면서 

실천사항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선을 팔때 생선에 물을 들이지 말자고 하고 처음에는 생선이 팔리지 아니하면 어떻하나 하고 걱정을 했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생선에 물들이지 않는 다고 소문이나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들도 천주교 신자들처럼 생선에 물들이지 말자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되었던 예화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세상에 빛과 소금역활을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8

끝으로, 여러분은 모두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설명: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말씀을 지킬 때

사랑이 오는데(요한복음14,23) 하느님의 사랑이 왔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겸손하며

상대방의 입장으로 가서 말과 행위로 봉사할 때

사랑의 공동체을 이루는 것입니다.

 

9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는 이는 악을 저지르지 않도록 혀를 조심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도록 입술을 조심하여라.

 

설명:

지혜라는 말은 '프로니모스 '인데

이 '프로니모스 '란 말에서' 프레네스' 란 말이 나오는데

이' 프레네스' 란'말은 말씀으로 자갈을 물리다. 라는 뜻이며

입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혀와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이 자제가 되며

말과 행위도 절제가 되어 우리가 만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영의 속성은 싸움을 싫어 하는 것입니다.

 

11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며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

12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서신다.” (시편34,13~17)


박해에 맞선 확신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 안에 있는 사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님을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복음 말씀을 영적으로 전할 때

박해를 받게되면 기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5,12 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박해 받은 사람들은 기뻐하여라 하였으며

하늘에 큰 상이 있다고 말하시고

마태복음5,44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으며

박해하는 사람들이 아직 하느님을 모르고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불쌍하고 안타까우므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매일 매일 기도 합시다.

 

13

여러분이 열심히 선을 행하는데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

그러나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겪는다 하여도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두렵게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고(이사야서8,12)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설명:

고난은 '파스코 '라고 하는데 세상에서 잘못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원죄로 인하여

멸망할수 밖에 없는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고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여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어둠이나 육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과 교회로 인도하여 봉사할 때 박해와 고난을 벋게 되는데

이 고난을 기쁘게 참고 봉사할 때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15

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17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

 

노아의 홍수 때 노아의 부부와 노아의 세아들과 그부부들만 구원 받고

그 당시 사람들은 홍수로 멸망 당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준비하여 보내 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충실하게 믿고

신앙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구원 받는다는 희망의 말씀이며

현세에서 신앙생활할 때 많은 박해가 오지만

참고 끝까지 견뎌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부활영광에 참여 할수 있다는

소망의 말씀이며 바오로 사도처럼 우리는 살아서도 주님의 것이며

죽어서도 주님의 것이라고 말씀 하시며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님과 기도를 통하여 미사를 통하여 관계를 맺어

성가정을 이뤄가면서 매일 매일 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말씀 봉사하고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복음 선포 합시다 .  아멘.

 

18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원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설명:

감옥은' 필라케' 이며 이' 필라케'라는 말은

' 필라소' 지키다 삼가하다 보호하다란 뜻이며

' 테레오 '감시하다 란 뜻에서 왔는데

육적으로 볼 때는 세상에서 죄를 짓고 감옥간 사람들을 말하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묵상하면

죄를 지은 사람은 죄의 감옥에 있으며 죄를 지을 때는 육신이 죄의 감옥이며

이 세상에서 대죄는 없지만 소죄로 인하여 연옥에 가있는 사람들도 말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원죄가 있는 사람이나 원죄의 사함은 받았지만

소죄나 보속할 잔벌이 남아 있을 때는

연옥에 갈 영혼들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설명:

노아 홍수는 세례의 예표이며 신약에 와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육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부활하는 세례는 본형이며

노아는 하느님 말씀을 믿고 준비하였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믿지 않고 멸망하는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충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노아의 가족인 여덞사람만 구원 받는 것처럼 믿음의 공동체를 이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받을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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