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첫째 서간 1장>
1.저자..이 편지의 저자는 공식적으로는 사도 요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의 제자들 중 하나가 이 편지를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편지의 저자가 요한 2서와 요한 3서도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2.수신인..이 편지의 수신인은 '여러 교회'입니다. 즉 이 편지는 여러 교회의 신자들이 돌려 읽을 수 있도록 쓴 편지입니다.
3.저술 시기..요한 2서, 3서와 같은 시기, 즉 서기 100년경으로 추정합니다.
4.편지의 목적..이 편지의 목적은 사목적인 것으로서, 이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신자들을 여러 가지 오류에서 지켜주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돕기 위해서 썼습니다.
<1절-4절 : 머리말 : 생명의 말씀>
이 편지의 머리말에는 발신인도, 수신인도, 인사도 없습니다. 이것은 이 문서가 그냥 편지가 아니라 신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작성한 공적인 교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1절..<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이 말은 '생명의 말씀'이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이것은 '말씀'이 모든 창조의 시작이요, 원천이신 성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우리가 들은 것>--'우리'는 '사도들'을 뜻합니다. '우리가 들은 것'이라는 말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음을 뜻합니다.
<우리 눈으로 본 것>--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모든 삶과 행적을 직접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이 말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도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즉 현실 속에서 접촉하고 체험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생명의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생명의 말씀'이라는 말은 '생명이신 말씀'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말씀, 하느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겠다는 것은 예수님에 관하여, 또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관하여 증언하겠다는 뜻입니다.
2절..<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이 말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육화강생 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인데,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사도들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사셨던 예수님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즉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증언'할 수 있습니다. '증언'이란 책임이 따르는 법적인 용어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증언'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저자가 자기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증언'할 뿐만 아니라, '선포'까지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라고 초대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영원한 생명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는 말은 곧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다.', 또는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3절..<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1절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선포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여기서 '친교'란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인데, 친교, 사귐, 일치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편지의 저자가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선포를 하는 목적은 '여러분'(편지를 읽는 독자들)이 '우리'(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 또는 사도들, 또는 교회)와 친교를 나누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신자들이 교회와 친교를 나누고, 일치를 이루는 것은 곧 하느님과 예수님과 친교를 나누고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3절을 다시 정리하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이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예수님)과 친교를 나누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기 위해서입니다. 편지의 저자는 1절에서 말한 '생명의 말씀', 또 2절에서 말한 '영원한 생명'이 누구인지 3절에서 구체적으로 그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그분은 '아버지'(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4절..<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3절은 선포의 목적이고, 4절은 이 편지를 쓰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예수님)과 친교를 나누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사도들에게는 큰 기쁨을 주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모든 신자들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기쁨'이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기쁨입니다. 세속적인 즐거움과 재미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5절-10절 : 빛 속에서 살아감>
5절..<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서' 라는 말의 '그분'은 예수님입니다. 이 구절에서 '말씀'이라는 말은 '하느님은 빛이시며 하느님에게는 어둠이 전혀 없다.' 라는 다음 구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하느님은 빛이시고 어둠이 전혀 없는 분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그대로 이제 여러분에게 전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빛이시다.' 라는 말은, 하느님은 온전히 선하시고 거룩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빛을 비추시는 분, 사랑을 계시하시는 분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빛'은 선, 사랑, 깨끗함, 거룩함 등을 상징하고, 어둠은 악, 죄, 더러움 등을 상징합니다.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 라는 말은 하느님에게는 어떠한 악도 없다는 뜻입니다.
6절..<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이 말은 '신자들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또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라고 스스로 내세우면서도' 라는 뜻입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죄 속에서 살고 있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신자들이 죄 속에서 살고 있다면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 일치를 이룬다, 하느님을 믿는다.' 라는 말은 거짓말이이라는 뜻입니다.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신자가 죄 속에서 사는 것은 신자로서 당연히 실천해야 할 하느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하느님의 계명, 예수님의 가르침,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이 당연히 실행해야 할 것 등을 가리킵니다.
7절..<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이 말은, '하느님의 빛을 자신의 삶과 언행의 기준으로 삼고, 하느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실천하면서 살아가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여기서 저자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말하지 않고 신자들의 친교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빛 속에서 살아가면 신자들끼리 일치를 이루고 형제애를 나누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그런 사랑의 공동체를 통해서(또는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공동체를 거부하고, 형제애를 거부하면서 하느님의 사랑만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일이 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이웃 사랑'이 없는 '하느님 사랑'이란 없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이 구절은 우리가 '빛 속에서 살고', '서로 친교를 나누면',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 드러난 그분의 '사랑'을 뜻합니다.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준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빛 속에서 사는 것'과 '다른 신자들과 친교를 나누는 것(일치를 이루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믿음과 선행과 사랑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고 선행과 사랑이 없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8절..<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자기의 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죄의식과 양심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자기는 죄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확신에 자기가 속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의 6절에서 말한 '거짓말'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스스로 죄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인간은 성모 마리아 외에는 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살 수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거나 천사입니다. (천사가 아니라면 악마입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여기서 '진리'는 '하느님', 또는 '하느님과의 친교'를 뜻합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과의 친교(일치)를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하느님과의 친교를 나눌 수 없는 사람입니다.
9절..<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여기서 '고백'이라는 말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죄의 고백과 통회와 보속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비밀 고백이 아니라 신자들 앞에서 하는 공개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개적으로 고백을 해서 공동체와의 친교를 회복하는 것까지도 암시하는 말입니다. (원래 고해성사는 교회 공동체 앞에서 공개 고백하고, 보속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치스러운 죄를 지은 사람들이 고백을 꺼리고 미루다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고백을 하는 폐단이 생겼습니다. 천 년 전쯤 아일랜드에서 개인적으로 비밀 고백하는 형태의 고해성사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발전해서 결국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고해성사는 비밀 고백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그래도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고해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행동으로 간주됩니다.)
<그분은 성실하시고>--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면 용서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신명 30,1-5). 하느님은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진실'로 번역했는데 같은 뜻입니다.)
<의로우신 분이시므로>--여기서 '하느님의 의로우심'은 '하느님의 자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하느님의 용서는 모든 죄(불의)를 깨끗하게 없애 주는 일입니다. 즉 원래의 깨끗한 상태로 회복시켜 주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용서가 어떤 것인지는 마태오복음 18장 23절-35절의 '매정한 종의 비유'나 루카복음 15장 11절-32절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은 모든 빚을 다 탕감해 주는 것과도 같고, 집을 나간 탕아를 아버지가 다시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것은 병든 영혼을 치유해서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10절..<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이 말은 8절에서 했던 말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신자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신자들은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주장하는 이단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거나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1요한 4,10)'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일이 됩니다. 즉 십자가와 속죄와 구원에 관한 교리가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이 말은 8절의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여기서 '그분의 말씀'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 그리스도'를 뜻하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안 계신다는 뜻이고, 하느님과의 친교와 일치가 깨졌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믿는 신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그분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 라고 번역했는데 원문은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게 만든다.'입니다.)
<묵상> "기쁨"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곧 기쁨입니다.
기쁨이 없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기쁨은 없고 바라는 것만 많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에게 기쁨을 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참된 사랑에는 역시 순수하고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순수하고 참된 기쁨이란
나만의 욕망을 채웠을 때의 만족감이나 쾌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가 기뻐함으로써 나도 기뻐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빛 속에서 살아감 ♥ (1요한1,1-10) 박민화님의 성경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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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1장
요한복음 1장에서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하느님이시다. 라고 말씀 하시고 말씀이 영원한 생명으로 계시되고, 영원한 생명이 빛으로 나타나고,빛이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특권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들이 된다고 계시해 주시고
요한 1서에서는 생명의 말씀이 빛으로 이 빛은 사랑으로 계시가 되며 사랑하는 사람은 빛에 있는 사람이며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에 있다고 말씀 하시며(1요한2,8~11) 요한복음8,12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 하시며 요한사도는 생명의 말씀이며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눈으로 보고,만지고,느꼈다고 말씀 하셨으며
이 본다는 말은 '데아오마이' 인데 신기한 것을 보다,진리를 보다. 라는 뜻으로 예수님 안에 그리스도 하느님이 계시는 메시아임을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고 보았다는 뜻이며 요한서신에서는 생명의 말씀이 말씀의 열매인 사랑으로 계신다는 것을 말씀 하시며 육으로 오신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성령으로 내려 오셔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4,16)라고 말씀 하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계신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로고스 말씀이 하느님이시고, 요한서신에서는 말씀의 열매인 아가페사랑이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은 성부,성자,성령의 열매이며 말씀의 열매인 사랑의 하느님 기쁨의 하느님 평화의 하느님으로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 안에 진리 성령으로 오신 하느님은 사랑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하느님을 느끼고,만지고,보고,듣고 삶으로 살아 갑시다. 아멘
머리말: 생명의 말씀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실 때는 호 로고스 말씀으로 계셨지만 육화하여 세상에 오셔서 말씀육신이신 성자가 생명의 말씀이시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율법에서 우리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구원받게 되었으며 율법에 있을 때는 죽은자이지만 율법을 완성한 사랑의 법에 있을 때는 산자가되며 사랑으로 율법이 완성되는데
사랑하면 살인하지 아니하며 사랑하면 간음하지않고, 사랑하면 하느님을 흠승하며 사랑하면 주일을 지키며 사랑이 충만하면 10계명을 지킬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들 안에 오셔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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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설명: 요한사도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직접 보고,만지고, 말씀을 들었던 사도로서 증언하며 예수님 안에 그리스도 하느님이 계시며 예수님은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말씀의 하느님이시며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라고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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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설명: 생명은 '조애' 인데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며 이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은 참 하느님이며 참사람이라는 것을 선포하며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인데
영지주의자들이 예수님의 몸안에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기 때문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생명의 말씀 관계를 맺어 살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며 우리들의 구세주라는 것을 보고,듣고,느끼고 ,깨닫게 된다고 증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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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설명: 친교는 '코이노니아' 인데 삼위일체 하느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사랑으로 일치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님과 일치한 사도들과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의 하느님을 통하여 사랑으로 일치하여 친교를 이루며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친교를 나누는 유일한 교회가 카톨릭 교회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친교를 이루어야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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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설명: 생명의 말씀과 관계를 맺어 아가페사랑이 충만하게 오면 사랑의 결과로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선행과 용서의 열매가 나오는데 빛은 좋은 역활로 어둠을 비추는데 아가페 사랑으로 미움의 사람을 변화시켜 사랑과 기쁨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선교이며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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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에서 살아감
생명의 말씀이 빛으로 빛이 사랑으로 계시 되며 예수님께서 하신 레마말씀이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죄사함 받고 구원 받을수 있는 말씀과 관계를 맺어 살아갈 때 구원 받게 되며 빛의 자녀들은 사랑을 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선포하여 빛의 자녀들이 되어 사랑의 사람들이 될수 있도록 전교해야 하며 성경에서 나온 빛은 말씀,영,그리스도,성령,하느님을 상징하며 말씀하고 관계를 맺을 때 빛의 자녀들이 되기 때문에 매일매일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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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사랑)이시며 그분께는 어둠(미움)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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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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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설명: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들 죄(원죄)를 사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님을 주님으로 믿고 받아 들여 세례 받고 신앙생활하므로써 말씀으로 깨끗해져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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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만일 우리가 죄(원죄,하마르티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설명: 죄는 '하마르티아 '원죄를 말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원죄 중에 태어나지만 죄사함 받는 유일한 세례를 통하여 원죄를 사함 받지만 원죄의 여독인 선과 악은 남아있기 때문에 선악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에 말씀하고 관계를 맺어 아가페 사랑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고 나의 결점도 볼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결점을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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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우리가 우리 죄(원죄,하마르티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설명: 의로우신 분은 '디카이오스' 인데 '디카이오쉐이네' 와 같은 어원이며 의로우신분 하느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불의하다는 말은 '아디키아' 인데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을 불의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 들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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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설명: 모든 인류는 아담 하와가 지은 원죄가 유전 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죄인들이며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이 우리들 안에 오셔서 사랑의 빛으로 비춰 주었을 때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이고 기쁘게 살아가지 않는 것이 죄이고 열매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