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뿌리인 믿음♥ (1요한5,1-21)

2015. 1. 19. 오후 5:02:25

글자

 

 

<요한의 첫째 서간 5장>

<1절-12절 : 사랑의 뿌리인 믿음>

1절..<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저자는 참된 신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기준은 두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과 사랑이 참된 신자의 조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믿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계명과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합니다. 그렇게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자', 즉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신자라면 그렇게 믿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이 말은 4장 21절에서 했던 말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입니다.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형제도 사랑합니다. 형제끼리 사이가 나쁘고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이웃도 사랑한다는 말은 신자라면 당연히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2절..<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4장 20절에서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기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해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계명의 실천이 형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진실한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단순한 동정심이거나 위선적인 행동입니다. (자기가 배부르게 먹고 나서 남은 것을 굶주리는 이웃에게 주는 것은 동정심에서 나온 불우이웃 돕기일 뿐이고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이웃 사랑은 아닙니다. 물론 동정심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가 먹을 것을 이웃에게 주고 이웃의 굶주림을 자기 것으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입니다.)

3절..<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느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순종과 계명 실천으로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은 구별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모든 것, 의지, 자유, 생각, 마음을 하느님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계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게 되는 일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일이라면 어려운 일도 어렵지 않게 느끼고, 고통도 고통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법입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 그러나 사랑이 아닌 의무감으로 한다면 쉬운 일도 어렵게 느껴지고, 하기 싫어집니다. 계명이 힘겹지 않은 이유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4절). 승리에 대한 확신(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계명을 지키는 일 등이 힘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4절..<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신자로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신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도 힘들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 즉 하느님의 자녀들도 당연히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여기서 '세상'은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을 뜻합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승리는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실천이 옳은 일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믿음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5절 이하에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5절..<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이기고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승리자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예수님에 관한 교리들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6절..<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여기서 '물'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를 뜻하고, '피'는 예수님의 죽음을 뜻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원문 그대로 직역했고, 공동번역 성서는 뜻으로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에 사람이신 예수님과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가 서로 다른 두 인물이라고 주장했던 이단자들의 이론을 반박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세례를 받고 수난과 죽음을 당한 것은 인간 예수이고,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수난 전에 활동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이라는 말은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 세례를 받았고, 수난과 죽음을 당했다는 것, 즉 사람이신 예수님과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는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1절의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말과 5절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라는 말을 예수님 생애의 가장 중요한 두 사건(세례와 죽음)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물'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피'는 속죄와 구원의 은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이단자들의 주장에 맞서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는 수난과 죽음을 당한 바로 그분, 예수님이라는 것을 더욱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이 말의 뜻은, 성령은 예수님의 세례와 죽음이 가져온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곧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증언'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것이 확실한, 믿을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7절-8절..(7)<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유대교 법정에서는 판결을 내리려면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증인이 셋이나 되니까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증인 셋은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말을 '성령과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 교회는 성령의 힘으로, 또 성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증명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로 모아진다는 말은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즉 같은 진리를 증언한다는 뜻입니다.

9절..<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9절은,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해 직접 증언해 주시는데, 하느님의 증언은 사람들의 증언보다 더 위대하다. 그러니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증언'은 8절의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을 하나로 합한 표현으로 생각 됩니다. '사람들의 증언'은 이단자들의 주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10절..<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0절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증언을 믿을 것이고, 하느님의 증언을 믿는다면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한다는 말은 증언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지 않는 자는, 즉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이단자들은 하느님의 증언을 믿지 않는 것이고, 하느님의 증언을 믿지 않는 것은 곧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11절-12절..(11)<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11절과 12절의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시고 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다는 뜻인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생명을 지니고 있다.' 라는 말은, 생명이 아직은 약속의 형태로, 또는 씨앗과 같은 형태로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계속 반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3절-21절 : 맺음말 : 영원한 생명>

13절..<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이 구절은 이 편지의 목적을 쓴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의 목적을 말한 요한복음 20장 31절과 많이 비슷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이 편지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 인데, 이 말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14절-15절..(14)<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3장 22절에서도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이라는 말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3장 22절에서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즉 '사랑의 실천을 잘하면'이라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이라는 말은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의 기도는'이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14절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의 기도는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라는 뜻입니다.

15절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미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마르 11,24)."

16절-17절..(16)<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에 이어서, 이제 기도의 예를 들고 있는데, 죄를 짓는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는 형제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회개의 은총을 주실 것이고, 그래서 그가 회개한다면 그는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이 기도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죽을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단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되고,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회개를 거부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구원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멸망하는 길을 선택하는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죽을죄를 지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 할 수는 없고, 그런 이들을 위한 기도는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보증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 쪽의 자발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회개도 하느님의 은총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스스로 회개를 포기하고 용서받기를 거부한다면 누가 기도를 해도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불의는 죄' 라는 말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는 일은 모두 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라는 말은, 죄를 짓는다고 다 멸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8절..<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라는 말은 3장 9절에서도 했던 말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 즉 '신자'입니다.

이 구절은 신자들은 자동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맞게 성실하게 살면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신자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은 하느님의 아드님, 즉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신자답게 살려고 노력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고, 그래서 악마가 우리에게 손대지 못할 것 이며 (우리를 유혹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바로 이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19절..<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인류는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빛 속에 있고, 장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고 악마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둠 속에 있고, 장차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과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세상'의 싸움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싸움을 겪어야 합니다.

이 구절에는 악마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하느님 쪽으로 와야 한다는 것과, 하느님과의 친교와 일치를 잃으면 악마의 지배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압니다.' 라는 말은 '알고 있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알아야 한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이 말이 없는데, 잘못된 번역입니다.

 

20절..<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온 세상이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지만, 우리는 구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예수님의 강생 교리를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참되신 분'은 '참 하느님' 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상과는 다른 참 하느님, 또 이단자들이 주장하는 신과는 다른 참 하느님이라는 표현입니다. '알도록'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친교와 일치를 이루도록'이라는 뜻입니다. '이해력'은 신앙인의 참된 지혜를 뜻합니다. '압니다.' 라는 말은 '믿습니다.'로 해석됩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올바른 믿음은 '참되신 분', 즉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하고,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안에 있다.' 라는 말은 '깊은 일치'를 뜻합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마침내 이 편지의 최종 결론으로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믿음입니다. 저자는 이 한마디의 신앙고백을 위해서 지금까지 이 긴 편지를 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요한 1,18)."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21절..<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이 편지는 우상을 조심하라는 마지막 당부로 끝납니다. 여기서 '우상'은 좁은 뜻으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지 않는 당시의 이단 사상을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참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섬기는 것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따라서 돈, 권력, 명예, 지식... 그런 것들을 하느님처럼, 또는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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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사랑과 고통"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사랑 때문이 아니라면,

십자가는 예수님에게도, 우리에게도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위대한 상징이 되는 것은 그것이 나타내는 위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고통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고통 자체는 우리가 피해야 할 '악'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 그 하나의 이유만이 고통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고통을 거부하는 사랑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쾌락일 뿐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과 함께 붙어 있는 고통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사랑을 위해 고통도 사랑해야 합니다.

왜 사랑과 고통이 함께 붙어 다니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신비입니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고통도 커진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그것이 바로 '빠스카의 신비'입니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압니다.

사랑을 원한다면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삶의 십자가도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들끼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 신념에 대한 사랑...

모든 사랑은 그 사랑에 따르는 고통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고통을 거부하면 사랑은 없습니다.

힘든 것은 거부하고, 편하고 좋은 것만 찾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너를 위한 희생'은 거부하고, '나의 행복'만 찾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고통은 내 것으로 만들고,

나의 행복은 너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죽음은 내 것으로 만들고,

나의 생명은 너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사랑이 없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사랑의 뿌리인 믿음♥ (1요한5,1-21)

요한의 첫째 서간5장

 

 

결론으로 사랑의 뿌리는 믿음이라고 말하며

믿음,소망,사랑은 하나이며 믿음은 그리스도의 진리 말씀을 통하여

은사로 받게 되며 믿음으로 살아 가면서 사랑이 이루어질것을 소망하며

살아갈 때 믿음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이 오며

아가페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데

이 순종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 이며

헬라말로는 '히파코오 '인데 이 '히파코오 '란 말은 듣다. 라는

'아쿠오' 란 말에서 왔는데

 

순종이란 말은 하느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이

오기 때문에 근원은 복음 말씀하고 관계를 맺어 살아갈 때

믿음이 굳건해지고 믿음이 삶으로 행동으로 옮겨지며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하였고

야고보에서는 믿음과 행위로 구원 받는다. 고 하였는데

근원이 복음 말씀으로 살아갈 때 영원한 생명과 구원이 오기 때문에

같은 뜻이며 믿음은 성령의 은사로써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시지만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에

믿음이 자랄수 있도록 겸손하게 기도 합시다.


사랑의 뿌리인 믿음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설명: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말은 말씀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뜻이며

즉 사랑의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며 복음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말씀의 열매인 사랑이 오기 때문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들로 태어나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어

요한사도처럼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설명:

계명을 지키는데 힘겹지 않는 것은 아가페 사랑이 오면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들 안에 오셔서 살인하지 아니하며

간음하지 아니하고 두 신을 믿지 않고 주일을 지키며

사랑의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심을 느끼고

체험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설명:

물은 세례성사를 상징하며

요한복음3,5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 하시고

피는 성체성사를 의미하며 예수님께서 내 살과 피를 먹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 하셨으며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인 성체를 받아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설명:

마태복음18,20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면 나도 그가운데에

있겠다. 고 말씀하시는데

둘이나 세사람은 육적으로 보면 두사람과 세사람을 말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와 내가 기도하는 것이 둘이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내가 하나되어 기도하는 것이 셋이며

이 셋이란 말은 성부,성자,성령을 의미하며

말씀화가 되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며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하고 부활을 선포하는 것이 순교의 삶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설명:

셋은 호 파테르 (성부)와 호 로고스(말씀=예수 그리스도)와

토 하기온 프뉴마(성령) 즉 성부,성자,성령을 상징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명:

영지주의자나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이 예수님께 내려와 계셨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는 예수님에게서 성령이 떠났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육체 안에는 그리스도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거짓증언을 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잘못 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 아버지께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나의 몸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회를 버리십니까? 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믿는 성도들도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주님을 믿고

또한 주님께서는 주님께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 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요. 라고 지금도 성부 우편에 앉아 죄짓는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계심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맺음말: 영원한 생명

 

13

내가 여러분에게, 곧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설명:

요한복음14,14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 주시겠다. 라고 말씀 하시며

예수님의 이름은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 안에 그리스도안에서

기도하면 다 이뤄주시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설명:

죽을죄는 하마르타노 원죄를 말하는데

둘째 죽음(묵시록 20,6)을 말하는데

성령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원죄사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둘째 죽음에 들어가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 들여 물과 성령으로 원죄사함 받고

새로 태어나 복음 말씀과 성령을 거부하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둘째 죽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

신앙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17

모든 불의(원죄)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설명: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복음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 안에 들어와

사랑으로 계시기 때문에 거룩해지며 죄가 없다는 것이며

진리성령께서 죄를 지을 때는 즉시 회개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설명:

세상은 교회와 반대이며 그리스도 성령과 말씀이 아니 계시는 사람들의

심령을 세상이라고 말하며

세상은 마귀에 속하고 교회는 하느님에 속하며

교회는 진리성령과 말씀이 계시는 백성들을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하며 교회이며 눈에 보이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설명:

우상은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며 말씀을 읽고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우상숭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복음 말씀을 믿고 살아가면서

말씀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으로 살아 가면서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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