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르잔(Sirjan)

2008. 1. 20. 오후 11:53:04

글자
< 후세인 추모행사 >

  시르잔(Sirjan)은 소설 모모에서 각박하고 경쟁적이고도 성공지향적인 현대문명의 맹점을 암시해 주는 배경인 회색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고유한 특징이 없이 성냥곽처럼 회색빛 건물만 길쭉한 방사형 도로가 십자형을 따라 주욱 늘어선 삭막한 인상을 주었다. 낮 시간에 이곳에 와서 거리를 둘러보니 비교적 고원지대에 형성된 촌락치곤 굉장히 넓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은 드물고 텅빈 분위기였다.

  다음날 짐을 챙겨 다음 목적지인 메이만드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도로변의 건물들이 모두 문을 열지 않은 모습에 의아스러웠다. 터미널 차편도 모두 오늘만은 쉰다기에 까닭을 물어보니 오늘이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수니파에 항거하다 전사한 마호메트의 손자 이맘 후세인을 기리기 위해 이슬람력으로 매년 1월 10일 열리는 후세인 추모의 날이란다. 얼마전 미군에 잡혀 처형당한 사담 후세인과는 다른 인물이니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주부터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들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계속 소개되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내의 중심과 주요한 거리에는 검정옷을 입은 이란인들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삼삼오오 몰려들었는데 텅빈 회색도시임을 무색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인파였다. 특히 이 날은 전국적으로 차량 소통을 통제하고 추모 행사에 전심하는 날이니만큼 비중이 큰 날임을 알 수 있었다. 이소룡의 쌍절곤 크기만한 나무막대 끝에 여러 갈래의 철로 된 고리를 달아 이것을 확성기에 나오는 후세인 추모 노래에 맞추어 어깨 넘어 대각선 방향으로 등에 치거나, 도구가 없는 사람들은 손으로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곳 촌락에도 수 만명의 거주민 대부분이 참여한 행사여서 장관 그 자체였다. 뜻하지 않은 촬영 소재가 생겨 흥분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왔기에 사건현장에서 리얼한 표정들을 포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저널리즘 사진가처럼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때로는 과감한 접근을 통해서, 종교관습상 촬영금지인 무슬림 여성에 대해서도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흑백필름에 기록하였다. 맨 앞줄 가운데에 위치한 종교지도자를 중심으로 그 뒤에는 많은 남성 무슬림 신자들이, 또 그 뒤에는 여성 검정 차도르를 입은 무슬림 여성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원형광장에서 드디어 종교의식이 거행되었고 종교지도자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머리를 드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기민한 동작으로 접근하여 촬영하고 다시 빠지는 찰라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무전기를 든 경찰은 여권과 비자를 꺼내어 보여주기를 요구했다. 내 여권은 숙소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의 주소와 지도가 실린 가이드북을 펼쳐 보여주었더니 그제서야 이해한다는 듯 다정한 미소를 보여주며 놓아준다. 아뭏든 다양한 장면들을 촬영하였는데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해진다. 당연히 필름이니 즉시 확인할 수 없고 한동안 기다리는 묘미가 있을 뿐이다.

댓글 2

  • 2008년 1월 22일 오전 10:26

    특종을 잡기위해 이란에 파견된 특파원같은 사명감이 느껴지는군. 아뭏든 새로운 상황에 흥분을 안고 열심히 촬영하는 모습이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것 같아.

  • 2008년 1월 25일 오전 1:00

    드디어 한건 했군요..ㅎㅎ 한달간의 갈증해소 ㅎㅎ..경찰이 이교도에게도 친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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