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진이 발생하기 전의 BAM city )
'밤'이라는 고장은 전체가 다 흙으로 건설된 곳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북쪽 변두리에 '알게 밤'이라는 곳이 있는데 넓이가 약 20헥타르이며 이 면적 전체를 오랜 세월 동안 정착민들이 진흙과 짚으로 빚은 거대한 마을을 일구어 놓은 것이다. 2003년 12월에 진도 6.5의 지진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함께 하룻밤에 폐허로 변한 것이다. 밤 재건위원회 사무실에서 관계자와 차를 마시며 들은 이야기인데 복구 작업에 12년을 예상하고 있다고 한다. 복구 작업에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하는 인부들도 만났는데, 오후 2시쯤 되자 작업장에서 철수하였다. 출근과 퇴근을 확인하는 인명카드를 관리자가 일일이 확인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 수작업으로 해 가는 작업모습이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아뭏든 이곳 '알게 밤'은 이란이 자랑하는 문화유산 중의 꽃이며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건축 구조를 눈여겨 보았는데 진흙에 짚을 섞은 것을 알 수 있으며 문틀이나 진흙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곡선 처리에는 얇은 나무를 덧댄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옥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은 보도블럭처럼 돌을 편평하게 놓았다. 1헥타르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각각 100m인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 밤은 전체가 20헥타르라고 하니 수십 명의 인부들이 작업을 마치려면 오랜 땀과 시간이 걸림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잔잔한 호르무즈 해협이 유리처럼 평탄하게 펼쳐진 이란 남부 해안도시 반데르압바스에 발을 디뎠다. 우리 고장처럼 해변 도시라 다소 온화하다. 흰 눈도 거의 볼 수 없고 낮에 접어드니 가랑비가 내린다. 도로변 이곳저곳에 빗물이 고여 서 있는 사물들을 선대칭으로 보여준다. 지난 밤 11시에 케르만에서 떠난 버스가 밤새 달려 아침 7시 경에 엔진 소리를 멈췄다. 값싼 숙소 대여섯 군데를 일일이 찾아 빈 방 있냐고 하니, 전부 가득 찼단다. 한군데 포 베드룸이 있어 할 수 없이 넓은 방을 만 원에 주고 짐을 풀었다. 18일이 경과했는데 지출한 금액을 대충 정산하니 45만원 가량을 사용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해변에 나가 호르무즈해를 바라본다. 저 멀리 납작하고 검정빛 호르무즈섬이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그곳으로 가는 소형 고속보트를 타는 선착장을 알아두었다. 파도가 일지 않아 호수에서나 할 것 같은 카약 보트를 타고 연습하는 젊은이들이 눈길을 끈다. 이란 멜리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환전된 이란 돈을 받기까지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이나 걸린다. 내 일을 처리하는 은행원이 서류를 여러 장 작성하는데 마지막으로 나에게 서명 두 번 할 것과, 영문 이름, 그리고 여권번호를 적으라고 요구한다. 테헤란에서는 예쁜 미소의 여성 직원이 내 일을 처리하였는데 한국 여행자임을 알고 대장금 얘기를 꺼내더니 베시시 웃는다. 얼마 전 대장금이 이란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는데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평균 80%, 최고 시청률 90%까지 기록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금이 현재는 아랍에미리트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방영되고 있단다.
이란에서 아직 학교를 방문하지 못하였다. 이곳 반데르압바스 시내에서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한번 불쑥 찾아가서 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촬영하고 싶다고 부탁을 해 봐야겠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할 때 옷차림이 무척 귀엽다. 파란 히잡에 하얀 스카풀러로 머리를 감싼 모습이다. 여태까지 거쳐간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달리 이란은 비교적 실내에서 금연이 잘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부탁하니 허용을 한다. 게다가 차나 커피까지 가져달라고 부탁하니 순순히 따라준다.
여태까지 지나가는 아무 차나 손을 흔들어 멈추는 차에 공짜로 승차한 적이 거의 없는데, 이곳 이란에서 히치를 여러 번 경험한다. 다들 저 나름대로 목적지가 있고 바쁘기도 할 터인데 초라한 외국여행자를 그냥 못본 채 지나가기에 그런지 고맙게도 차에 태워 바라는 목적지까지 안내해 준다. 먀몰차고도 차가울 수 있는 여행길에 인정미 넘치는 따뜻한 배려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묘약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은 운전자가 배워야 할 미덕으로 생각한다.
시내를 거닐다 보니 여성의 옷차림이 약간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같은 히잡 차림인데 고유한 이란 여성들의 검정히잡과 인도나 스리랑카 혹은 미얀마 계통의 여성들의 검정색을 벗어난 히잡이 섞여 보인다. 그녀들의 히잡 색깔도 검정색에서 벗어나 있다. 한편으로 얼굴을 가린 가면을 착용한 색다른 모습도 보여 흥미를 자극한다.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좀 더 분위기를 익히고 탐색을 해 봐야겠다. 아직 여독이 가시지 않아서 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