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의 흔적>
오후에 야즈드의 숙소 로비에 홀로 앉아 있다가 공허한 생각이 들어 급히 짐을 꾸려 남쪽의 케르만으로 행로를 이어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본고장이다. 사막 지대에 형성되었으며 아라비아의 실크를 중국이나 인도로 나르던 실크로드의 경유지이며 상인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도시 형성의 연원이 4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온 도시로 여겨진다. 모든 건물의 색채가 누런 흙빛인 특징을 갖춘 고장으로 기억되리라. 이곳에서 마지막날 도시 외곽의 조로아스터인들의 조장터를 방문하였다.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운명하면 넋은 하찮은 육신을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죽은 허물은 이곳 두 산봉우리 정상에 각각 원형으로 만든 조장터에 방치하여 독수리들의 먹이감으로 제공하였다. 조장 풍습은 목재가 드문 티벳에서 이루어지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슬람교도가 세력을 잡은 이래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현재 야즈드를 중심으로 만오천 명 정도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보전하기 위해 그 명맥을 잇는다고 한다.
<인물사진 촬영>
몇 사람의 현지인을 프로필 촬영하듯이 인물사진을 필름에 기록하였다. 먼저 숙소 사장의 부인을 의자에 앉히고 검정 히잡 차림으로 자연스러운 미소의 상반신을 필름에 기록하였고 이어서 밝은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모셔서 또 한 컷을 촬영하였다. 또한 같은 숙소에서 또 한 명의 초로의 노인을 촬영하였다. 그 이전에는 테헤란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아프가니스탄 장사꾼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 있다. 그의 모습은 풍부한 구레나룻에 살지고 험상궂게 생긴 외양이 나의 사진 욕구를 자극하였다. 또 다른 파키스탄인도 그렇게 촬영하였다. 전형적인 이란인의 얼굴을 가진 한 젊은 이란인도 담았다. 조장터에서는 현지 관리인을 야외에서 진흙벽 앞에 세우고 상반신을 촬영하였다. 야즈드의 전경을 담기 위해 모스끄의 첨탑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 탐색하였으나 관리인이 손사레를 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아직 장엄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촬영하지 못해 아쉽다. 내일 들르게 되는 밤(Bam)에서 그런 장면을 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진다. 앞으로 거쳐가게 될 곳을 엄선하며 기대를 하고 있다.
<대지진>
본래는 케르만에 머물지 않고 가능하면 곧바로 버스로 9시간 걸리는 '밤'으로 가고자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케르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6시 차편으로 가게 되었다. 버스로 3시간 거리이니 아침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고 온통 흙으로 빚어진 도시를 걸어서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도시 이름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고장인데. 5년 전 이곳에 대지진이 일어나 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바 있다. 이란은 대지진의 주기가 5년인데 바로 올해 2008년도가 그 해에 해당한다. 5년 전에 그토록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이유는 수면 시간인 한밤중에 지진이 급습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형태는 지반침하형 지진이 아니라 좌우로 심한 진동을 보이는 형태라고 한다.
<이동 계획>
저녁 6시 경에 케르만에 도착하여 5500원짜리 허름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 근처를 산책하다가 피시방이 보여 들어와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모니터가 전부 삼성이다. 컴퓨터 대수는 5대이다. 실내 인테리어는 단촐하면서도 청결하다. 목이 말라 커피나 차이(차)를 부탁하였더니 친절하게도 커피와 함께 재터리를 가져다 준다. 아, 이곳 케르만 도시 모습은 삭막한 모습 그 자체이다. 역시 휘발유 리터당 100원이라서 그런지 자동차 엄청 많기도 많다. 내일 아침 일찍 떠야지......
지금 계속 이란의 중부를 거쳐 남부로 이동중이다. 아무래도 이란 최남단의 호르무즈 해협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란 영역의 여러 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원형으로 생겼으며 과거 포르투갈의 지배에 놓여있던 호르무즈섬에 가기로 정했다. 그곳에서 다시 시계방향으로 틀어 테헤란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
오후에 야즈드의 숙소 로비에 홀로 앉아 있다가 공허한 생각이 들어 급히 짐을 꾸려 남쪽의 케르만으로 행로를 이어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야즈드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의 본고장이다. 사막 지대에 형성되었으며 아라비아의 실크를 중국이나 인도로 나르던 실크로드의 경유지이며 상인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도시 형성의 연원이 4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온 도시로 여겨진다. 모든 건물의 색채가 누런 흙빛인 특징을 갖춘 고장으로 기억되리라. 이곳에서 마지막날 도시 외곽의 조로아스터인들의 조장터를 방문하였다. 조로아스터교는 사람이 운명하면 넋은 하찮은 육신을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죽은 허물은 이곳 두 산봉우리 정상에 각각 원형으로 만든 조장터에 방치하여 독수리들의 먹이감으로 제공하였다. 조장 풍습은 목재가 드문 티벳에서 이루어지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슬람교도가 세력을 잡은 이래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세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현재 야즈드를 중심으로 만오천 명 정도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보전하기 위해 그 명맥을 잇는다고 한다.
<인물사진 촬영>
몇 사람의 현지인을 프로필 촬영하듯이 인물사진을 필름에 기록하였다. 먼저 숙소 사장의 부인을 의자에 앉히고 검정 히잡 차림으로 자연스러운 미소의 상반신을 필름에 기록하였고 이어서 밝은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모셔서 또 한 컷을 촬영하였다. 또한 같은 숙소에서 또 한 명의 초로의 노인을 촬영하였다. 그 이전에는 테헤란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아프가니스탄 장사꾼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적 있다. 그의 모습은 풍부한 구레나룻에 살지고 험상궂게 생긴 외양이 나의 사진 욕구를 자극하였다. 또 다른 파키스탄인도 그렇게 촬영하였다. 전형적인 이란인의 얼굴을 가진 한 젊은 이란인도 담았다. 조장터에서는 현지 관리인을 야외에서 진흙벽 앞에 세우고 상반신을 촬영하였다. 야즈드의 전경을 담기 위해 모스끄의 첨탑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 탐색하였으나 관리인이 손사레를 치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아직 장엄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촬영하지 못해 아쉽다. 내일 들르게 되는 밤(Bam)에서 그런 장면을 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진다. 앞으로 거쳐가게 될 곳을 엄선하며 기대를 하고 있다.
<대지진>
본래는 케르만에 머물지 않고 가능하면 곧바로 버스로 9시간 걸리는 '밤'으로 가고자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케르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일 아침 6시 차편으로 가게 되었다. 버스로 3시간 거리이니 아침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고 온통 흙으로 빚어진 도시를 걸어서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은 도시 이름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고장인데. 5년 전 이곳에 대지진이 일어나 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바 있다. 이란은 대지진의 주기가 5년인데 바로 올해 2008년도가 그 해에 해당한다. 5년 전에 그토록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이유는 수면 시간인 한밤중에 지진이 급습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형태는 지반침하형 지진이 아니라 좌우로 심한 진동을 보이는 형태라고 한다.
<이동 계획>
저녁 6시 경에 케르만에 도착하여 5500원짜리 허름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 근처를 산책하다가 피시방이 보여 들어와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모니터가 전부 삼성이다. 컴퓨터 대수는 5대이다. 실내 인테리어는 단촐하면서도 청결하다. 목이 말라 커피나 차이(차)를 부탁하였더니 친절하게도 커피와 함께 재터리를 가져다 준다. 아, 이곳 케르만 도시 모습은 삭막한 모습 그 자체이다. 역시 휘발유 리터당 100원이라서 그런지 자동차 엄청 많기도 많다. 내일 아침 일찍 떠야지......
지금 계속 이란의 중부를 거쳐 남부로 이동중이다. 아무래도 이란 최남단의 호르무즈 해협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란 영역의 여러 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원형으로 생겼으며 과거 포르투갈의 지배에 놓여있던 호르무즈섬에 가기로 정했다. 그곳에서 다시 시계방향으로 틀어 테헤란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