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2010. 2. 9. 오후 7:07:50

글자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유시찬 보나벤뚜라 신부님 (예수회)

 
   '어느 마을에서 뛰어난 영성가라고 소문이 난 사람을 초빙해 강연을 듣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그 영성가는 드디어 입을 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랑에 대해서였다.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사랑이 없으면 왜 아무 것도 아닌지, 오늘날의 사람들과 사회 안에 얼마나 사랑이 없는지, 그래서 이 사회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표정은 대단히 진지하다 못해 비장미까지 들었다. 사람들 가슴 속에, 사회 속에, 사랑이 없음을 너무나 안타까워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찾고 있다고 분노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그 마을의 지도자격인 사람들은 숙연하게 듣고 나서 영성가처럼 침통한 표정이 되어 무거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강연이 끝나자마자 마당에 둘러앉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놀기 시작했다. 먹을 것과 술들을 내놓고 농을 주고 받으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마침 그 영성가가 그 옆을 지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놀고 있던 이들은 그를 불렀다.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좀 놀다가 가라고. 그러나 그 영성가는 씁쓰레한 표정으로 거절하며 돌아갔다. 그토록 열변을 토하며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전해 주었거늘 그런 것엔 아랑곳없이 천박하리만치 가볍게 떠들며 놀고 있는 그들을 향해 긴 한숨을 내쉬며.'

   레지오 단원들이 새해를 맞아 색다른 마음가짐으로 1년 동안 피정을 한단다. 그러면서 그 피정을 여는 글을 실어 달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기도 중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처음에 떠오른 생각들은 이랬다.

   '영적으로 어린애들과 같은 이들에게 어떻게 깊은 진리의 못에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가르침을 베풀면 말귀를 알아듣고 생각과 태도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차원 높은 영성을 어떻게 알아듣게 쉽게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과 더불어 올라오는 느낌이나 분위기는 이랬다.근엄하고, 진지하고, 엄숙하고, 비장한 기운이 잔뜩 흐르고 있구나. 이렇게 고민을 하며 머리를 짜내고 있을 때 그냥 몸 전체에 따뜻하고 활기 찬 기운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엉뚱한 생각이 올라왔다.

   '재밌어야지. 제 아무리 훌륭한 진리를 설파하고 배운다고 한들 기꺼운 마음으로 적극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즐겁고 재미가 있어야지. 그리고 부담이 없어야지. 굳이 비장한 각오로 덤비지 않아도 돼야지.'

   머리가 가벼워지고 삽상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밝고 따뜻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고, 희망의 기운이 올라왔다.

   예수님 생각이 났다. 그분이야말로 이야기꾼이었고, 재미가 있었고, 부담이 없었다. 사순과 수난의 침통한 분위기 속에만 잠겨 계시지 않았다.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노는데 일가견이 있으셨다. 온 몸의 세포들을 초긴장으로 몰아넣는 가운데 일을 이뤄내려고 하지 않으셨다. 반대로 모든 세포들을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게 녹여낸 가운데 저절로 일이 이뤄져 나가게끔 하셨다. 그래서 그분 주위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죄를 잘 짓고,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별로 배운 것 없고, 이기적이고, 잡초처럼 생명력 하나는 질긴 사람들이 곧잘 모여들었고, 그분을 좋아했고 따랐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에는 대단히 민감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려 하고, 깊은 바다를 항해하기보다는 얕은 개울에서 물장난이나 하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그분은 잘 알고 계셨다.

   놀라운 것은, 그분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나 태도를 싫어하지도 않으시고 배척하지도 않으셨다. 기꺼이 받아들이셨고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다. 더 큰 아름다움과 생명을 향해 조금씩 커 나가길 원하셨다.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말이다.

   과연 그랬다. 그분 곁에 머물고 그분을 따라다니며 그분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 사람들은 변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자기 이해관계의 그물에 잡혀 버둥거리다 죽지 않게 되었다. 비록 어렵고 힘든 일이긴 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생명과 아름다움을 읽어내며 기꺼이 그 수고와 고통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린애 때나 하는 개울가의 물장난은 그만 두고 더 크고 깊고 넓은 바다로 나가길 원하며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며, 이 모든 일들이 강압과 거룩한 의무감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가볍게, 기쁘게, 이뤄지게끔 하셨다.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이들에겐 그저 주의 기도만 일러 주셨고, 많이도 말고 단 두 명만 마음을 모아 청하면 다 들어주겠다고 하셨고, 거창하고 대단한 믿음이 아니라 그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엄청난 일을 해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이 제시한 이런 길들이야말로 정말 하고자 하는 마음 한 조각만 올라오면 언제 어디서든 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여기에 무슨 부담이 느껴지고 긴장이 틈타 들어오겠는가. 그저 놀이하는 기분으로, 가볍고 경쾌한 몸짓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기쁘게 놀다 보면, 놀이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들이 당신을 닮아 있을 것임을 그분은 내다보셨고, 원하고 계셨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런 모든 사실을, 많이 배우고 능력이 뛰어나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너무나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많은 일을 해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다 하더라도 네 스스로가 기쁘고 즐겁지 않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비통하고 엄숙한 심정으로 이 세상을 개조해 보려고 애쓴 공이 갸륵하긴 하지만, 네겐 부족한 것이 하나 있지 않느냐. 일을 좀 덜 하고 좀 엉망으로 두더라도, 네 삶 자체가, 네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겁고 좋아야 하지 않겠느냐. 비통한 심정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을 땐 너 혼자만 있었다만, 좀 엉성하게 일을 해내면서도 웃고 즐기고 있었을 때는 여럿이 함께 있었다. 그것이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답고 중하다.

   몸과 마음에 긴장을 풀면,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 놓기 시작하면, 빈 곳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저절로 들어올 것이고, 그만큼 우리 삶은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살아있다는 기쁨이 휘몰아칠 것이다. 바쁘고 꽉 차 있는 일상 중에서도 약간의 여백을 만들어 아무 생각 없이 조금씩 그 안에 머물자. 그러면 주위의 사물들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찾아와 아주 아름답고 멋진 세상을 보여주고 들려줄 것이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그들을 해석하며 정리해 버리는 대신에 말이다.
 
 
레지오 마리애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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