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기도를 하다 성경소구에 갈라 5장 22절 성령의 열매 9가지가 나왔다.
문득 9가지 열매 중에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또, 내게 가장 부족한 열매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 중. 가장 부족한 것, 얼굴표정에서 부터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온유(溫柔)라는 생각이 들었다.
溫柔(온유), 한자를 생각해 보니 정말 내게는 생각지도 않았던 덕행이었다. 그러기에 한번 용기내어 해보고 싶은 글자이기도 하였다.
溫(온) 삼 수(氵(수))변에 가둘 수(囚(수)), 피 혈(血(혈)),
柔(유) 나무목(木(목))변에 창 모(矛(모)),
감옥에 갇혀 피를 물처럼 쏟고, 나무에 긴 창이 박혀도 나무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더욱이 矛(모)자는 줄 여(予(여))에 비수가 꽂혔다.
기껏 주고도 비수에 꽂히고, 나무에 창이 박혀도 감옥에 갇혀 피를 물처럼 철철 흘려도 나무 둥지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溫柔(온유)인가 보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반응하며 소리지르는 나!
기껏 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배신에 반응하는 나!
바오로사도가 말씀하신 성령의 열매, 온유...그 온유야 말로 나무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맺으신 열매란 생각이 들었다.
온유란 외적인 행동보다는 내적인 나의 자세가 더 크게 요구되는 덕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