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깃발’이 펄럭이며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쪽은 선량한 사람들의 총지휘관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의 깃발’이고, 다른 한쪽은 진을 치고 시커먼 연기를 뿜고 있는 마귀 두목 ‘루치펠의 깃발’입니다. 우리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선택하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히 우리 주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로 간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에 모인다는 것은, 현실적인 가난은 물론, 사람들에게 받는 업신여김과 모욕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때로는 박해와 순교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루치펠 진영에서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주고, 매혹적이고 달콤한 쾌락까지 선사합니다. 이제 다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지요?
이것은 이냐시오 영신수련에 나오는 내용으로, 예수님과 루치펠이라는 ‘두 개의 깃발’을 묵상하는 부분입니다. 두 개의 깃발이라는, 두 진영의 상반된 이미지로 사람들의 내면에 일어나는 거짓 함정들을 인식하고 식별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개의 깃발을 식별하며 하루하루 선택의 삶을 살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부귀와 가난, 거짓과 진실, 오만과 겸손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주님 편에 서지 않으면 주님의 반대자가 되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곧 악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지금 자신의 현실에서 어느 깃발 아래 있습니까?
그런데 설명을 들으면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의 깃발에 모인다는 것은, 현실적인 가난은 물론, 사람들에게 받는 업신여김과 모욕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때로는 박해와 순교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루치펠 진영에서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주고, 매혹적이고 달콤한 쾌락까지 선사합니다. 이제 다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지요?
이것은 이냐시오 영신수련에 나오는 내용으로, 예수님과 루치펠이라는 ‘두 개의 깃발’을 묵상하는 부분입니다. 두 개의 깃발이라는, 두 진영의 상반된 이미지로 사람들의 내면에 일어나는 거짓 함정들을 인식하고 식별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개의 깃발을 식별하며 하루하루 선택의 삶을 살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부귀와 가난, 거짓과 진실, 오만과 겸손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주님 편에 서지 않으면 주님의 반대자가 되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곧 악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지금 자신의 현실에서 어느 깃발 아래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