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ur Lady of the Seven Sorrows-ISENBRANT, Adriaen.
1518-35.Panel.O.L.Vrouwekerk,Bruges
“Stabat Mater : 이런 고통에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오”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는 ‘작은 음악’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작곡가였다. 그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대개 소규모 앙상블과 소프라노 및 알토 두 성악가만이 연주하는 작고도 작은 작품이지만, 그 평온하고 고요한 음악 안에 담긴 슬픔의 폭발력과 정화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Stabat Mater(스타바트 마테르)’란 라틴어로 ‘어머니가 서 계시다’는 뜻.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 곁에 비통하게 우시며 성모님이 서 계시네”라는 말로 시작되는 곡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고, 우리말로는 ‘슬픔의 성모’, ‘고통의 성모’ 또는 ‘성모애가(聖母哀歌)’라고 번역한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이었던 야코포네 디 토디가 쓴 장시(長詩)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가 곡을 붙인 것이 최초의 스타바트 마테르였고, 그 뒤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같은 시에 곡을 붙여 발표했다. 예수 그리스도 수난의 과정을 그린 수난곡과 더불어 사순절 기간에 자주 연주되는 이 스타바트 마테르 가운데는 비발디, 페르골레시, 로시니, 구노의 작품 등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가톨릭 전례에서 제외되었던 스타바트 마테르는 1727년 다시 정식으로 전례서에 채택되었고, 이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사순절 및 성모의 고통을 묵상하는 축일(9월 15일)마다 연주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폴리의 산타마리아 성당에서는 너무 긴 세월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반복하는 것에 식상해, 당시 유럽 전역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신진 작곡가 페르골레시에게 새로운 ‘스타바트 마테르’ 작곡을 의뢰했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고 늘 병약했던 페르골레시는 오로지 음악에만 빠져 살다가 열세 살에 나폴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미사곡 등의 교회음악 뿐만 아니라 1733년에 작곡한 막간극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의 대성공으로 음악사에 길이 남은 그는 생전에 이미 유럽 음악계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불과 스물여섯 살이었던 1736년에 폐결핵이 악화된 페르골레시는 의사의 권유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몸을 의탁했다. 삶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번 재산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남은 것은 그 무렵 작곡 중이던 ‘스타바트 마테르’뿐. 병고 속에서도 페르골레지는 천국을 염원하며 이 최후의 작품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요절한 작곡가를 기리고 싶었던 후대 사람들은 ‘천재의 영감에 사로잡힌 페르골레시가 죽기 며칠 전 단숨에 이 작품을 써내려 갔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몬테카지노 수도원에 보존된 자료에 따르면 페르골레지는 이 작품을 2년에 걸쳐 꼼꼼하게 다듬고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이런 고통에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요”라는 가사로 성모의 고통을 노래하며 깊은 공감을 표현하는 전반부와 ‘심판 날에 성모님께서 나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벌을 면하고, 성모님의 통고(痛苦)로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되기를 간구’하는 후반부로 이루어진다. 소프라노와 알토(또는 카운터테너) 가수의 맑고 깊은 음성이 간절한 기원을 담아내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참혹한 고통이 오히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통에 따뜻한 위로가 됨을 느낄 수 있다.
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는 ‘작은 음악’의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작곡가였다. 그의 ‘스타바트 마테르’는 대개 소규모 앙상블과 소프라노 및 알토 두 성악가만이 연주하는 작고도 작은 작품이지만, 그 평온하고 고요한 음악 안에 담긴 슬픔의 폭발력과 정화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Stabat Mater(스타바트 마테르)’란 라틴어로 ‘어머니가 서 계시다’는 뜻. “예수님 달리신 십자가 곁에 비통하게 우시며 성모님이 서 계시네”라는 말로 시작되는 곡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고, 우리말로는 ‘슬픔의 성모’, ‘고통의 성모’ 또는 ‘성모애가(聖母哀歌)’라고 번역한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이었던 야코포네 디 토디가 쓴 장시(長詩)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가 곡을 붙인 것이 최초의 스타바트 마테르였고, 그 뒤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같은 시에 곡을 붙여 발표했다. 예수 그리스도 수난의 과정을 그린 수난곡과 더불어 사순절 기간에 자주 연주되는 이 스타바트 마테르 가운데는 비발디, 페르골레시, 로시니, 구노의 작품 등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가톨릭 전례에서 제외되었던 스타바트 마테르는 1727년 다시 정식으로 전례서에 채택되었고, 이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의 ‘스타바트 마테르’가 사순절 및 성모의 고통을 묵상하는 축일(9월 15일)마다 연주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폴리의 산타마리아 성당에서는 너무 긴 세월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반복하는 것에 식상해, 당시 유럽 전역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신진 작곡가 페르골레시에게 새로운 ‘스타바트 마테르’ 작곡을 의뢰했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고 늘 병약했던 페르골레시는 오로지 음악에만 빠져 살다가 열세 살에 나폴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미사곡 등의 교회음악 뿐만 아니라 1733년에 작곡한 막간극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의 대성공으로 음악사에 길이 남은 그는 생전에 이미 유럽 음악계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불과 스물여섯 살이었던 1736년에 폐결핵이 악화된 페르골레시는 의사의 권유로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몸을 의탁했다. 삶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번 재산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남은 것은 그 무렵 작곡 중이던 ‘스타바트 마테르’뿐. 병고 속에서도 페르골레지는 천국을 염원하며 이 최후의 작품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요절한 작곡가를 기리고 싶었던 후대 사람들은 ‘천재의 영감에 사로잡힌 페르골레시가 죽기 며칠 전 단숨에 이 작품을 써내려 갔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몬테카지노 수도원에 보존된 자료에 따르면 페르골레지는 이 작품을 2년에 걸쳐 꼼꼼하게 다듬고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스타바트 마테르’는 “이런 고통에 누가 함께 울지 않으리요”라는 가사로 성모의 고통을 노래하며 깊은 공감을 표현하는 전반부와 ‘심판 날에 성모님께서 나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벌을 면하고, 성모님의 통고(痛苦)로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되기를 간구’하는 후반부로 이루어진다. 소프라노와 알토(또는 카운터테너) 가수의 맑고 깊은 음성이 간절한 기원을 담아내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참혹한 고통이 오히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고통에 따뜻한 위로가 됨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