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 마리애 명칭과 기원(교본 23-26쪽)
1)레지오 마리애 장의와 설립 취지 및 창설자
레지오 마리애는 심심 단체인 동시에 조직적 활동 단체입니다. 교분에 따르면 “레지오 마리애는 가톨릭교회가 승인한 단체로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이시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강력한 지휘 아래, 세속과 그 악의 세력에 맞서는 교회의 싸움에 참가하기 위해 설립된 군대”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레지오 마리애는 공인된 신심단체로서 성모 마리아를 사령관으로 모시고 교회를 돕는 영적 군대입니다. 이것은 설립 취지를 밝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단체의 창설자는 교본 20쪽에 잘 드러나 있듯이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프랭크 더프입니다. 그는 1889년 6월 7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공무원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기도와 독서가 저절로 몸에 배는 환경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10세 때 영성체를 했고 18세에 국가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1913년 그가 24세 때 빈첸시오 아 바올로회에 가입하여 그리스도 신비체 교리를 터득함으로써 불우한 이웃을 그리스도로 여기며 무료 급식소를 운영했습니다.
그는 1914년에 ‘예수 성심 단주회’에도 가입하여 알코올 의존자들을 돕고 가정에 예수 성심상 모시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1915년에는 재속 가르멜회에 입회하여 성모소일과(성무일도)를 매일 바쳤습니다. 이듬해에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인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를 출판했습니다. 또한 프랑스 몽포르 출신 성 루도비꼬 마리아 그라뇽이 지은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개론’을 여러 번 읽고 성모님의 지휘와 역할을 소화시켰습니다.
그는 20세기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선구자였습니다. 1921년에 여성들로 구성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레지오 마리애)를 창설하여 병원 방문 활동부터 착수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회개한 윤락녀들과 미혼모들, 노숙자들을 위한 숙박소를 마련하여 운영했습니다. 1929년에는 최초의 남성 쁘레시디움을 설립했습니다.
1932년 더블린에서 개최된 세계 성체대회를 계기로 전 세계 레지오 보급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44세 때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오로지 레지오 마리애에만 전념하고 헌신했습니다. 1941년에는 개신교 및 유다교 지도자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교회 일치운동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성모 신심, 평신도 사도직, 선교 활동, 교회 일치 운동 등 다방면에 기여한 동로가 인정되어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초청 받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레지오 마리애 창설은 중세기 대 수도회 창설 이후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였다.’는 극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1979년에 알현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는 레지오 마리애를 위해 ‘마리아를 통한 승리’라는 특별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1980년 11월 7일 91세의 나이로 더블린 자택에서 선종하여 더블린의 글라스네빈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종 프랭크 더프 시복 청원 기도문’에도 그의 공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 마리애가 어떤 단체인지, 창설자가 어떤 분인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