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단원의 충성(교본 제29장 : 257-259쪽) -최경용 신부-
『군 복무를 마친 지 몇 10년이 흘러도 남자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군대 생활 얘기를 종종 합니다. 희로애락의 체험이 생생하고 강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충성심이, 필수적인 군인 정신입니다. 흔한 경례 구호도 ‘충성’입니다. 국가와 상관에게 충성으로 복종하겠다는 뜻입니다.충성은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말로만 충성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무력한 군대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탈영, 하극상, 총기 탈취 등의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을 총사령관으로 모신 영적 군대로서 고대 로마 군단처럼 충성을 강조합니다. 레지오에서 충성이란 쁘레시디움에 대한 단원들의 충성을 비롯하여 모든 상급기관에 대한 충성을 말하며 또한 영적 지도자, 교구장, 교황 등 교권에 대한 충성을 말합니다. 충성은 레지오 전체를 결합시키는 접착제이며 생명선입니다.
평신도였던 프랭크 더프는 그 당시의 성직자들이 하던 영적인 활동을 실시함으로써 반성직주의자, 반교권주의자라는 비난과 오해를 받았지만 교회 권위에 끝까지 충성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레지오 창설 50주년에는 아일랜드 주교단으로부터 레지오가 한결같이 보여준 복종과 충성에 대한 찬사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레지오에서 충성을 강조하는 근거는 성모마리아의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충성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동정녀로서 구세주 잉태 예고를 듣고 죽음을 무릅쓰고 순명하셨고 일생 동안 하느님께 충성하셨습니다.
평의회와 단장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지면 기강이 해이해져 힘없는 군대가 되고 맙니다. 예컨대, 쁘레시디움을 분단하려고 해도 단원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원 수가 많은 지단에서 단원 수가 턱없이 부족한 지단에 차출하여 배치하려고 해도 순명하지 않으려 합니다. 인재가 많은 지단에서 차출하여 간부급 단원이 없는 지단으로 가서 도와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한마디로 군인으로서의 충성심이 부족한 것입니다.
단장에게 충성하는 것은 단장이 단원보다 레지오에 대해 더 잘 알거나 인격 면이나 능력 면에서 단원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장에게 순명하는 것은 조직의 정당한 권위에서 순명하는 것입니다. 순명은 충성의 열매입니다. 주 회합에서나 평의회에서 단장으로부터 지시 받은 일을 성모님께서 지시하신 일로 여기고 순명하는 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충성입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은 단장과 관리 기관 그리고 교회의 권위에 순명과 복종으로 충성함으로써 고대 로마 군단처럼 성모님의 강력한 군단을 이루어야 합니다.』
최경용 신부님의 ‘레지오 단원의 충성’이라는 글을 읽고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충성’은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아닌가! 라고요. 아무리 좋은 내용을 활동지시 하여도 되울림이 없는 메아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되울림이 없는 메아리, 그것을 우린 공허한 메아리라고 하지요. 메아리는 산에서 내가 소리를 보내면 그 소리가 되돌아옵니다. 답이 있어야 메아리로서의 의미를 다한 것이지요. 그런데 활동 지시를 하면 가타부타 답이 없습니다. 활동지시를 하면 결과 보고가 있어야 하는데 결과보고가 없습니다.
어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전에 본당 서류 함 정리 및 사제관 뒤편 배수구 정비를 한다고 봉사 가능한 인원을 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순교자들의 모후와 다윗의 탑 쁘레시디움을 제외하고 다른 쁘레시디움은 답이 없었습니다. 사전에 인원이 파악되어야 계획을 세우고 일을 추진할 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대답을 합니다. ‘네!’라고요. 대답은 소통의 시작입니다. 레지오 단원의 충성은 소통에서 부터라고 정의해봅니다.
어제 몇 개 쁘레시디움에서는 개별적으로 쁘레시디움 함을 정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배수구 정리와 창고 정리를 하는데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아직 쁘레시움 함 정리를 못한 쁘레시디움은 빠른 시일 안에 정리하시고 문서 보존 규정에 따라 보존기간이 지난 문서는 폐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