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 있는 나무를 놓아라
-송현 로마노 신부-
한 겨울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한 사나이가 산을 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수십 미터를 구르다가 간신히 나무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렸고 날은 점점 추워졌습니다. 살려달라고 목청껏 외쳐보았지만 어두운 산속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호소했습니다.
“하느님,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기도를 끝내자 놀랍게도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살려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 지금 네가 잡고 있는 나무를 손에서 놓도록 하여라.” 그가 화를 내며 대들었습니다.
“하느님도 참 너무하십니다. 살려고 간신히 잡은 이 나무를 놓으라니요!”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나무를 더욱 힘껏 움켜잡았습니다.
며칠 후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어떤 이가 나무를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얼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점은 그의 발에서 땅까지는 불과 일 미터도 채 안 되는 높이였다는 것입니다.
사나이는 한 밤중이라 나무에 매달린 그곳의 높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나무를 놓았더라면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지 못해 끝까지 나무를 움켜잡았고 결국에는 그 형태 그대로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들의 안타깝고도 애처로운 모습입니다.
밧줄로 제 마음을 꽁꽁 묶고서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양손에 무언가를 꼭꼭 움켜쥐고 하느님과 이웃 앞에 감히 손을 펼쳐 보이지 못합니다.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울타리를 높이 쌓고 무덤과 같은 곳에서 가족끼리만 지냅니다.
동양의 ‘팡새(pensees)'로 비견되는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采根譚)‘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무는 잎이 떨어져 뿌리만 남은 뒤에야 꽃과 가지와 잎의 영화(榮華)가 헛된 것임을 알 것이요, 사람은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는 것임을 알게 되리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진 바에 대한 애착‘을 넘어서서 ’자신에 대한 애착‘까지도 버려야 하는 일입니다.
본성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는 이기심, 자존심, 자애심 등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종이와 여백이 필요하고 물을 담으려면 빈 그릇이 필요합니다. 내 것을 버리면 버릴수록, 움켜쥔 손을 펼치면 펼칠수록 주님은 그만큼 당신 것으로 채워주시지 않을까요.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사실을 교훈삼아, 겸손, 봉사, 사랑을 실천하는 변화된 삶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빛과 소금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구자(先驅者)가 되도록 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