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할 수 있다

2019. 1. 5. 오후 6: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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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 수 있다 

1800년 중반, 가난한 아일랜드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 가기로 결심을 하고 배 값 마련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간신히 삼등칸 배표를 샀습니다. 하지만 식사비를 낼 돈이 없어서 빵 몇 개만 사서 배에 탔습니다. 빵을 조금씩 아껴 먹었지만 대서양을 항해하는 내내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가 도착하기 전날, 그는 큰맘을 먹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식사만큼은 돈을 다 털어서라도 번듯하게 먹고 싶어서였기 때문입니다. 맛나게 식사를 하고 돈을 내려고 하자 종업원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합니다.

식사는 무료입니다. 운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섣부른 지례짐작으로 인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고 또 얻을 수 있는 것도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앞선 이야기에서 식사 가격만 미리 물어봤더라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청년의 모습이 우리 안에 담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에 나만 만들지 않고 이웃 역시 함께 만드셨습니다. 또한 불편함 없이 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늘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도도 하지 않고 할 수 없다라는 말만을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이유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우리를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이 역시 지례짐작으로 자신은 할 수 없는 일로, 다른 이들만 할 수 있는 일로, 그래서 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마태22,37-40)

우리가 사랑을 살아가면 주님께서는 그 선물로 바구니에 행복을 가득 담아 넘치도록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그것은 주님을 잘 알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간구하면 주님께서는"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하십니다.(마태8,3).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나를 따라라.”(루카 9,59)하고 명령하십니다. 주님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주님과 친해져야 하겠지요. 우리가 한 결 같이 숨을 쉬고 매일같이 음식을 먹어야 육체가 건강하듯이 매일 주님과 대화(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마태 4,4) 주님을 따름으로써 우리가 소망하는 일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마태 7,7-8, 루카 11,9-10) 영적으로 건강해졌을 때 비로소 우리들의 입에서는 할 수 없다’‘시간이 없다’ ‘능력이 안 된다등의 핑계로 작은 희생마저 거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요즘 레지오 단원을 모집하려 해도 한 결 같이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 기존 단원들에게 간부직을 맡아달라고 하면 더 심하게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저 간부 시키면 레지오 퇴단할겁니다"라고요. 생각만 해도 참 서글픈 일이죠.

우리들이 하는 일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사업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여쭤보고(기도) 주님과 함께 하는 사업이기에 부도가 날 일이 없습니다. 그곳에 주님의 계명인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주님이 가신 길을 알고 있기에 그 길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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