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스승이었네
《19세기 최고의 시인 롱펠로우(1087-1882)는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기 한 해 전인 1835년에 부인을 잃었습니다. 이후 재혼을 했으나 그 부인마저 1861년에 불행한 사고를 당해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예술가로서는 성공을 거두었으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는 온갖 쓰라린 아픔을 견디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임종이 다가왔을 때 어느 기자가 찾아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 있었는지요?”
롱펠로우는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대답했습니다.
“저 나무가 내 스승이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지만 해마다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더군, 그리고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나오기도 하지.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날마다 새 생명을 공급받아왔지. 그리하여 매년 예술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던 걸세.”
유물론적 철학자 포이어바흐도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혼자 있었어도 혼자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남겼습니다. 주님의 새 생명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집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되면 이상 혼자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인간의 운명은 결국 하느님 안에 있으며 사람의 미래는 주님의 것입니다. 평범한 이 진리를 깨달아야 롱펠로우처럼 삶이 안겨주는 고통과 불안을 기꺼운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꽃피우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아무리 발달해도,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인 힘과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느님뿐입니다. 주님의 자녀요 지체인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인생의 모든 희망과 가능성이 사라집니다. 인간 이성이 촛불의 빛이라면 신앙은 태양의 빛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이 없다면 인생은 연속된 하나의 수수께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있으면 모든 일들은 또렷이 보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주님이 계시면 문제는 없습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요 내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는 주님 한 분만 계시면 충분합니다. 그분은 내 모든 수고를 반드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송현 신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주시는 주님이 성탄절인 오늘(12월 25일)에 우리 곁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단원들은 빛으로 오신 주님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바로 사랑과 순명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였고 말씀에 순명하신 것입니다.
성당의 신심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기도생활을 즐기는 것도 주님과 친해지고 주님께 순명하는 길이겠지요. 요즘 레지오도 단원들이 고령화되면서 봉사활동에 소극적입니다. 대부분 나이 탓을 하시죠.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지만 해마다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단원들도 나이와 상관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복음을 묵상하며 이웃에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복음 선포는 나의 일상을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들의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레지오 단원이 됩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