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_
-평화방송 ㆍ 평화신문 상무이사-
‘기러기 아버지’ 얼마 전, 기러기 아버지가 자취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일이
있습니다. 오로지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허리가 휘도록 치다꺼리해
주고, 가족과 떨어져 빈 하늘을 벗삼아 그리움을 달래던 아버지가….
어찌 보면 이 시대 아버지는 모두가 기러기 아버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외톨이 아버지, 아버지는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은
있으나, 정작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없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구들의
관심 속에 제 자리가 있는데 말입니다.
가족이 필요할 때만 아버지가 있을 뿐, 아버지는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전쟁터로 나갑니다. 우렁찬 나팔소리도, 깃발도 없이
발뒤꿈치를 들고 살살 조용히 잠긴 문을 살며시 따고 나갑니다. 식구들이 잠 까봐….
일터에 앉자마자 밀려오는 적군들…. 하루 종일 주어진 일에 또 윗사람에게 와
아랫사람에게 그리고 거래처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싸움을 치릅니다. 가족들
꿈을 등에 짊어져 “예” 할 때 제대로 “예-”하지 못하고, “아니오” 할 때 당당하게
“아니오-” 하지 못하며 속 끓으며 전쟁을 치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소용이 닿는 것을 마음대로 사지 못합니다. 아네의 뭐가 걸리고,
자식이
뭐가 눈에 밟혀서 꺼냈던 지갑을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는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이 돈이면…
괜찮아, 잘했어
허허허-
아버지 너털웃음은
웃음이 아니라
슬픔을 삭이는 울음이다.
아버지 너털웃음은
자식들 앞에서
당당함을 보여
자식들 걱정 끼치지 않으려
만들어 낸 아버지의 슬픈 웃음이다.
괜찮다니까, 애비 걱정 마
허허허
벌써 다 컸구나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웃음 속에 늘 간직한다.
아버지 너털웃음은
서운함을 묻어두고
외로움을 달래는
슬픔을 웃음으로 웃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웃음이다.
제 못난 동시「아버지의 슬픈 웃음」입니다.
아버지는 그저 평안한 가정을 위한다면 고통스럽고, 슬픈 얼굴 위에 뻔뻔하게 웃는
가면을 마다 않고 쓰곤 합니다.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
가는 그런 아버지. ‘명예퇴직’이다. ‘구조 조정’이다. ‘합병’이다 하여 이 시대
아버지는 어디 제대로 서 있을 데가 없습니다. 막상 서 있다 하더라도 살 얼음판에
서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버지께 “안녕히 다녀오세요”, “힘드셨죠”,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다정하게 인사해
주십시오.
그러면 아버지의 어깨는 훨씬 가벼워지고 무거운 마음은 눈 녹듯 녹아 더 많고,
더 큰 일을 해낼 것입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실로 아버지로서 그 자식을 자식으로 보살피지 아니하며, 자식으로서 그 아버지로
모시지 아니하면 그 어찌 세상에 나설 수 있으랴?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상에는
그렇게 옳지 않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비록 아버지가 인자하지 않다 하더라도 자식
으로서는 효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동몽선습』(童蒙先習)에 이른 말씀이다. 물질이 앞서 가는 요즘, 짐작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