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말 차림표

2009. 10. 19. 오후 10:30:51

글자
고운말 차림표’ 삶을 윤택하게…
   이 글은 2009.10.12자 가두신문 Focus에 1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아마 읽으신 분들도 계시겠죠.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 신문지를 오려두었는데 이제서야 올립니다.
 
암 투병 이해인 수녀 샘터출판사 특강
 
올해도 어김없이 ‘국정감사의 막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듣기에 민망한 말들이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초등학생의 97%가 욕설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이 시대의 어른들을 더욱 민망하게 하고 있다.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이해인 수녀(64세)에게서 때마침 ‘말의 중요성’에 대해 자신을 돌아볼 사연이 11일 전해졌다.
 
음식점에서 차림표를 보고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도 메뉴가 있어야 합니다.”
 
이 수녀는 최근 샘터출판사 직원들에게 ‘향기로운 관계를 위한 고운말 차림표’를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우리 삶과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지혜를 들려줬다.
그는 먼저 노환으로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1922-2009)과 같은 병원에 입원 했을 때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추기경님이 바로 옆방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그분을 귀찮게 해드리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지요. 그런데 제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추기경님이 먼저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셔 찾아 뵈었지요.
 
추기경님께서 “수녀도 항암이라는걸 하나?”라고 하셔서,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하고 대답했더니 추기경님은 무언가 가만히 생각하시는 듯 했습니다.
 
저는 추기경님이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아라”,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이렇게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주님이라든가 신앙, 거룩함, 기도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한마디, 인간적인 위로가 제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덕이 깊은 사람일수록 그처럼 인간적인 말을 하는 것임을 그날 깨달았습니다.                                (월간 ‘샘터’ 11월호에 강연의 일부가 실린다.)
 
이 수녀는 “좋은 말이라고 해서 함부로 해서는 안되고, 위로에도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했다.”면서 “기쁜 사람에게는 기쁨의 덕담을 해주고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는 슬픔에 어울리는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내 마음의 수첩에 고운말 언어의 차림표를 만들어서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하면서, 매사 실천이 쉽지 않지만 그로 인해 얻는 행복을 ‘어떤 결심’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어떤 결심    -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박영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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