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7세인 박로마나 자매님.
몇 년째 노환으로 걷지도 못하고, 화장실은 물론 세끼 식사도 먹여드려야 할 만큼 편찮아 하루종일
누군가의 수발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18세에 가난한 양반집 농가로 시집와 새댁 때 시어머니 권유로
세례를 받았고, 9남매 모두 유아세례를 받게 하였지요.
효도와 우애가 두텁기로 유명한 시댁. 그녀는 나의 시어머니입니다.
상주하며 돌보는 분이 계시지만 매주 자식들은 돌아가며 어머니를 찾아 뵙지요.
1박 2일 '효도 MT' 라고나 할까요. 자식들 모두는 조금의 불평없이 기꺼이 정성스럽게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죽을 떠 먹여드립니다. 정신이 가물가물하셔서 이야기 나누기 어렵지만, 곁에서 내내 조곤조곤 말을 건내며 어머니께 사랑을 전합니다.
작은 몸집의 그녀는 언제나 당당 씩씩하고, 총명했습니다.
어릴 적에 배웠던 시조는 물론, 남편이 전쟁터에서 보낸 많은 편지를 자구하나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외우시는 비상하고 놀라운 기억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그녀.
그러나 이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밥 한술 떠넣을 수 없이 쇄약해진 그녀입니다.
그동안 며느리인 나는, 사실 내 순번이 되면 모의고사 앞둔 학생처럼 웬지 늘 긴장과 난감한 마음이었습니다. 한 주 내내 바쁘게 보낸 터라 피곤하기도 했고, 어르신 수발이 그리 간단치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세례받기로 하고 예비자 공부를 시작한 후,
주름 가득한 얼굴의 그녀가 아이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측은함과 감사함으로 그녀를 돌보게 되더군요. 나도 알 수 없이 마음이 그리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지요.
오늘 그녀는 누운 채로 작은 딸의 도움으로 묵주기도를 하셨습니다.
가슴에 묵주를 올려놓으시고, 치아가 다 빠져 움푹패인 입에 어눌한 발음으로 성모송을 몇차례 반복하시며, 작은 소리로 '아멘' 하시더군요.
가난한 살림에 고단하게 사시며, 많은 자식들의 대소사를 앞두고 수천 수만번 기도하셨을 그 성모송.
작은 방에 고물고물 나란히 누워 잠든 어린 자식들 머리 맡에서, 우물가에서, 그리고 퇴약볕에서 밭을 매시며 수없이 바치셨을 성모송. 얼마만이셨을까요.
잠시 돌아온 정신으로 바치신 그 성모송이 제게는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가물가물 기억조차 못해 잊으셨던 내 이름을 부르시며, "에미야, 성당에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받은 것을 알리 없으셨던 어머니, 기억이 조금 돌아오신 오늘 그녀가 내게 해주신 첫 말씀,
가슴 메이도록 감사했습니다.
죽 한 그릇 맛나게 드시고 아이처럼 잠드신 어머니 옆에서 누워 저도 스르르 달콤하고 행복한 낮잠을
잤습니다. "저 세례받았어요 어머니. 감사해요".
어서 일어나 저와 함께 성당에도 나가시고, 같이 묵주기도도 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