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이 된 아빠
15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해 오던 아빠가 명예퇴직을 당했다. 처음에 나는 그런 아빠가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마지막 출근을 하고 저녁에 들어오시던 날, 아빠의 쓸쓸한 어깨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이후 나는 아빠 맘을 편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했지만 한 달 두 달 지나는 동안 매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계시거나 소일 삼아 낚시를 다니고, 술을 드시다가 잠들곤 하는 아빠의 모습에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빠 대신 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하시는 엄마의 피곤한 모습을 볼 때면 더욱 아빠가 미웠다. 그러나 내가 엄마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면 엄마는 "이제껏 아빠가 힘들게 일하였으니 조금 더 이해해 드리자" 하며 나를 달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도 견디기 힘드셨는지 우리들 몰래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새까맣게 탄 얼굴로 들어오셔서 "일자리 때문에 공장에 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서 아주 난처했다" 고 허탈하게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그 모습에 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제 아빠는 나이가 많아서 일할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 며칠 뒤 아빠가 식구들을 모두 불렀다. 그리곤 한참동안 망설이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아는 분이 아파트 경비 일을 소개해 주어 시작해 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는 거였다. 순간 식구들 모두 당황했다.
이사라는 직책까지 지내셨던 아빠가 경비 일을 하신다니…. 그러나 곧 나는 가슴 한쪽이 아파 왔다. 우리에게 그 말을 하시기 위해 열 번, 백 번쯤 혼자 고민하고 망설이셨을 아빠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지금 아빠는 작은 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는다. 밤부터 새벽까지 고단하게 일하고 돌아오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좋은생각 메거진 제158호]
요즘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위 글은 IMF 때 인터넷에서 발췌한 글인데, 경제가 그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네요. 게다가 겨울 바람이 차가우니 마음이 더더욱 움추려들고요.
지난 토요일 성당에 손님이 찾아 왔었습니다.
그 이름 “새터민”생소한 이름 이리사구요? 들어보신 분들 많이 계시죠. 북한 동포들이 살기 힘들어 정들었던 고향 땅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우리나라로 오신 분들인데, 부부가 함께 성당을 찾아 왔습니다. 약 30분간 면담을 하였습니다.
그분들이 자유를 찾아 월남을 하였는데, 부인이 임신 6개월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년 3월부터 정부에서 마련해준 직업 훈련소에서, 남한에 대한 적응 훈련과 직업훈련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신앙 상담을 하고, 내년에 시작되는 교리반에 등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일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온 세계가 경제가 위축되다 보니, 우리 이웃엔 직장에 근무하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일자리를 마련해보려고 어제 성당에서 몇 분과 얘기를 함께 나눠보았는데, 모두들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한 대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이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을까 싶어 글을 올려 보았습니다.
날씨가 스산합니다. 그러나 12월 첫날, 오늘 하루 기분 좋게 출발하세요. 연초에 계획하신 모든 일, 모든 소망 다 이루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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