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5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요한 5,1-3ㄱ.5-16

2011. 4. 5. 오전 6: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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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5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제키엘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복음 요한 5,1-3ㄱ.5-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보름간의 외도(?)가 모두 끝났습니다. 다시 말해 열흘간의 성지순례 그리고 3일간의 비엔나에서의 피정강의까지 모두 마치고 이제 제 방입니다. 사실 보름을 밖에서 살다보니 불편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불편을 뛰어 넘어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너무나도 먼 곳인 비엔나까지 가서 한 피정강의를 통해서는 주님 말씀에 목말라하고 있는 신자들의 열정을 볼 수 있어 좋았고(그래서 더 열심히 묵상하고 공부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성지순례를 통해서는 내 삶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성지에서 오랫동안 묵상하며 주님 사랑이 드러나는 것을 먼저 해야지, 결코 나와 관계되는 것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할 일이 얼마나 많던 지요. 얼마 전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에서 보았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눈먼 사람이 태양 빛을 보지 못할 때, 그것은 태양의 빛이 빛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눈먼 사람은 자기 눈을 나무라야 합니다. 이처럼 당신 영혼의 눈도 죄악과 악행 때문에 어두워져 있습니다.”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던 어리석음에 깊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아무튼 저 역시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있었음을 반성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주님 닮은 내가 되겠다는 약속을 감히 해 봅니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을 갖고 어제 비행기를 탔지요. 그런데 그 마음이 그렇게 오래 가지 않더군요. 두 명의 갓난아기와 한 명의 꼬마아이가 제 앞자리에 있었는데 교대로 우는 것입니다. 오늘 두 개의 강의가 있어서 비행기 안에서 잠 좀 자야하는데, 아이들 우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짜증이 났고, 이 아이들을 조용하게 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미웠습니다. 또 다시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지요.

바로 그 순간, 이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습니다. 성인인 저 역시도 무척이나 답답한 비행기 안인데,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안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정도 우는 것도 꽤 잘 참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니 너무나도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의 마음,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랑의 마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벳자타 못에서 38년동안 앓고 있었던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주셨다고 난리를 칩니다. 즉, 그들은 안식일에도 사랑을 베푸신다는 주님을 깨닫기보다는 율법의 조항에 갇혀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굳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굳은 마음이 치유를 받은 38년 동안 앓고 있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박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될 때는 주님의 마음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름 동안 기다려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욱 더 열심히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 제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행복은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아서 루빈스타인).



교육의 가치(‘좋은생각’ 중에서)

우주 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권위자로 198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37년, 28세의 찬드라세카르는 미국 위스콘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일했다. 연구소에서 10년째 일하던 어느 날,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겨울방학 동안 시카고대에서 고급 물리학에 관한 특강을 해 달라는 초빙 전화였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지만 몇 주 뒤 학교 측으로부터 특강을 신청한 학생이 두 명뿐이어서 일정을 취소해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강의를 듣는 학생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니, 강의를 신청한 두 학생에 관한 정보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는 두 학생에 관한 상세한 소개서를 받아 보고 특강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고는 매주 두 번씩 2시간 동안 차가운 눈보라를 맞으면서 학교를 오갔다. 또한 단 한 번도 수업을 거르지 않고 두 학생을 아주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찬드라세카르에게 특강을 받았던 두 학생이 1957년 공동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중국계 미국 과학자 리정다오 박사와 양전닝이었다. 두 사람은 노벨상을 수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10년 전 겨울방학 때 우리를 앞에 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하시던 찬드라세카르 박사님 덕분입니다.“

찬드라세카르에게는 인재를 보는 눈이 있었고, 두 어린 과학도에게는 배움의 의지와 진정한 대가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댓글 1

  • 2011년 4월 5일 오후 10:26

    이렇게 교육의 힘이 놀랍군요...오늘은 좋은 교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 신 앙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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