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4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루카 16,19-31

2011. 3. 24. 오전 6: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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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4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예레미야서 17,5-10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복음 루카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서로의 근황을 묻고 있었습니다.

“야, 넌 요새 무슨 일 하냐?”

이 물음에 그 친구는 뻔하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 그냥 전에 하던 거 계속하고 있지 뭐.”

“그래? 그런데 니가 전에 뭐 했더라?”

그러자 자신 있게 이렇게 말하네요.

“놀았잖아.”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위축될 때가 많습니다. 또한 스스로 실패자라고 하면서 심한 자책과 함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하긴 이러한 말도 있더라고요.

20대가 취직하면 가문의 영광,
30대가 직장 다니면 동네 잔치할 일,
4,50대가 아직 퇴직 안했으면 국가적 경사,
60대가 아직도 은퇴 안했으면 세계 8대 불가사의.

그러나 이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순간일 뿐입니다. 실패의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은 자기가 만든 감옥 속에 스스로 갇히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든지 주님 안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어쩌면 이미 왔는데 내가 둔해서 아직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포기와 좌절 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희망을 두면서, 주님과 함께 행복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라자로의 이 세상 삶은 어떠했습니까?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처럼만 보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은 죽음 이후의 삶에서는 완전히 역전이 되고 맙니다. 아브라함 곁에서 참 행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에 반해서 부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여유 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였지만, 죽음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시 상황이 역전되어 불길 속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지낼 수밖에 없었지요. 따라서 우리는 오늘 독서의 이 말씀을 가슴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바로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좌절도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희망을 간직하며 힘차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모습을 갖춘 사람이 바로 내가 되도록 합시다.

한 사람이 외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그의 내적 사고의 표현이자 완성이다.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생각이 분명해야 하고, 품위 있게 행동하려면 생각이 훌륭해야 한다(윌리엄 엘러리 채닝).
 

 기다려보세요  

-김효준신부-

 

두 개의 물통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과 희망과 건강과 부유함의 물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슬픔과 절망과 질병과 가난의 물통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이런 두 개의 물통을 함께 가지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기쁨과 희망과 건강과

부유함의 물통이 주어질 것입니다. 물통이 채워진 만큼, 기쁨과 희망과 건강과

부유함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게서 슬픔과 절망과 질병과
가난의 물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물통 역시 내가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채워질 것입니다. 내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나에게는 왜 이런 고통과 절망의

물통만이 주어지냐고 울부짖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평하신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시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러니 애태우며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거두는 분이시고 또한 베푸는 분이십니다.

 

댓글 2

  • 2011년 3월 24일 오전 9:24

    두 개의 물통 : 애태우며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불평할 필요도 없습니다, amen

  • 2011년 3월 25일 오후 4: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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