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5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히브리서 10,4-10

2011. 3. 25. 오전 6: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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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야서 7,10-14; 8,10ㄷ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8,10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

복음 히브리서 10,4-10
형제 여러분,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합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는 아오모리 현은 일본 최대의 사과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지난 1991년 태풍이 덮쳐 수확을 앞두고 있던 사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90%의 사과가 떨어졌고 그래서 전체 사과 수확량의 10%만이 남게 된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망연자실해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농부만이 오히려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농부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웃을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괜찮다며 웃으니까요. 이 농부는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가 10%나 남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었습니다.

남은 사과들이 강력한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데 착안을 해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브랜드화해서 일반 사과의 10배에 가까운 가격으로 수험생들에게 판매를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0배나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아오모리 현은 전국적인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단 한 명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농부 덕분에 절망의 상황을 희망의 상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겨우 10%만 남은 사과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었지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 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우리의 구원자가 이 땅에 오신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으로 인류 모두에게는 기쁨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입장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아직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당시의 풍습으로 돌에 맞아 죽어야만 했지요. 더군다나 15~16세의 나이에 엄마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성모님께서 너무나 어리지 않습니까?

따라서 성모님에게는 분명 고통과 시련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앞서 한 농부의 긍정적인 생각이 그 지역 모든 농부를 부유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하느님께 순명하신 성모님 덕분에 온 인류가 구원의 은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쉽게 좌절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그 상황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상황이지 결코 ‘좋고 나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님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격렬하게 말하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부족하다는 것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양승국신부
 
                               <단순함과 소박함에서 오는 기쁨>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는 쑥쓰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왠만해서는 말문을 열기가 어렵습니다만, 그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붙임성이 많고 또 인사성이 밝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또 그분들과 몇 마디 이런 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깐 나눴는데, 얼마나 순수하고 또 단순하신지,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게들 사시는지... 
솔직히 그분들의 삶은 저보다 훨씬 영적이고 또 하느님 중심적이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따뜻한 인간미를 풍기며 그렇게들 살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은 이미 이 세상의 고통을 깊이 체험하고 계셨기에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과 멸시, 소외에도 이미 깊이 동참하고 계셨습니다.  
왠만한 십자가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십니다. 고통을 수용하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는데 완전히 이력이 나신 분들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살아가시는 분들, 그분들의 장점은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또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왠만한 세상의 어려움 앞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들이 겪은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시련들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 길에 상당히 동참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의 상상은 무참히도 깨어질 것입니다. 자신이 잘 났다고 여기는 사람들, 큰 소리 떵떵 치는 사람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 하느님 앞에 큰 코 다칠 것입니다
반면에 마리아와 같이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 견디기 힘든 십자가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려니 하고 기쁘게 지고 가는 사람들, 언제나 어디서나 기쁘게 "" 하고 응답한 사람들,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아둔해 보이는 사람들, 마리아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상급을 받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그들 안에는 교만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단순하고 소박함에서 오는 감사함과 기쁨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기쁘고 기꺼운 응답(피앗)을 묵상하면서 우리 삶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음과 가난함은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체험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늘 현존해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가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만심이나 이기심이 극에 달했기에, 우리 자신으로 가득 차있기에 하느님께사 개입하실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비참하게 되면 비참하게 될수록, 깨지면 깨질수록, 천대받고 모욕당하면 당할수록 우리 영적 생활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입니다.  
시련의 때, 고통의 순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기 위해 준비하시는 은총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1

  • 2011년 3월 25일 오후 4:51

    은총의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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