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비는 걷히고 한여름의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이 아열대 기후가 된다더니 그런가봅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이 시작되는 7월의 첫날입니다. 새벽에 깨니 그런대로 시원한 여름밤입니다.
더위 내내 늘어져서 앓았습니다. 그냥 아팠습니다. 방학이면 오는 늘어짐성 우울입니다.
드러누워 있으면 세상이 가라앉고 침대 속으로 내가 말려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야 방학이 시작되고, 그렇게 생활의 리듬이 전환됩니다.
나도 이러기 싫지만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내일부터는 계절학기가 시작됩니다. 재수강하는 꼴통들을 모아놓고 또 역설을 풀어냅니다.
지겹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갈 수 없는 삶이 짜증도 납니다.
그러나 마음을 돌립니다. 내가 아니면 이 골치덩이들이 어떻게 졸업을 하도록 도와줄 것인가?
물론 내가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이 있겠지만 내 앞에 온 일이라면 내가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융통성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오십이지만 칠십살에 어느 할아버지와 오고가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우습게도 사람에게 그런 구석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부끄럼 보다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 뿐이야..그렇게 나를 달래봅니다.
삶에 부속된 이 많은 감정들을 하느님이 제한하여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좋고 옳고 훌륭한 구석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의 죄가 진홍같이 붉다고 하여도 하얗게 잊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나를 아시는 그분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지 모릅니다. 한 곳에 묶여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훨훨 자유롭고 넉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무소부재의 그분..없는 곳이 없으신 그분..
빗줄기 속에도, 신음하는 우울 속에도, 더운 땀방울 속에도
그분은 함께 계십니다. 그 찌지리 같은 '나'의 곁에서..함께 가고 계십니다.
그 사랑은 삶의 희망이 되어주고, 그 사랑은 삶을 지탱시켜줍니다.
그 사랑은 허공 속에서의 허우적거림이 아니라 이웃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그 속에서 움직입니다.
가장 고약한 이웃이 하느님이라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고통이지만 나를 풀어주는 해독약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이웃이 하느님이라고 생각해보면, 그 환희는 나를 감싸안아 견디게 해줍니다.
이렇게 무소부재의 하느님, 내 곁에 계시는 그분을 느끼면서 내가 꼭 필요로 할때는
곁에 그분이 나타나신다는 것을 이제는 믿습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두렵지가 않습니다.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안쓰는 하느님들..그 이웃들과 삶을 나누고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