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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길고 엄숙한 수난 복음을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고, 심문받고,
사형수 ‘바라빠’와 비교되는 장면들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이 복음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는지요?
유다인들은 새로운 임금이 출현하면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역시 그런 의미로 성지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말합니다.
우리가 환영하는 예수님은 임금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수난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복음 내용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예수님’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무 저항 없이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를 믿는 이들도 그렇게
‘삶의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면 십자가는 무거워집니다.
성질대로 하면 점점 귀찮아집니다.
자신을 죽이려 할 때 은총은 ‘그 사람 안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전혀 예기치 않던 곳에서 하늘의 힘을 얻게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함을 체험합니다. 실패를 만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수난 복음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시라면,
우리 역시 당당한 ‘조연’입니다.
그러니 인생의 ‘아픔’을 의미 없는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일생에도 사순 시기에 해당되는 시련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체험’ 역시 반드시 주어집니다.
오늘은 이 신비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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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Misa Criolla - Ky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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