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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구리 뱀과 주님의 십자가!’
독서의 말씀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이해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어,
당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누군가 부당하게 수치스러운 형벌을 받고 죽었다면,
그 일을 자랑하시겠습니까? 더욱이 처형 도구로 사용된
형구를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시겠습니까?
로마 시대, 극악무도한 정치범이나 흉악범의 사형을 집행할 때
십자가형에 처하였는데, 고통이나 그 방법 면에서 너무 수치스럽고
끔찍해서 로마인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죄수에게 사형을 집행할 때 십자가 외에도 여러 도구가 사용되었는데,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참수로 순교했습니다.
그나마 그래도 로마인의 명예를 존중해 준 것이었으니,
바오로 사도는 이른바 명예사한 것이지요!
이와는 달리, 한순간에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서서히 죽어 가게 하는 십자가형은,
단순히 큰 죄에 대한 벌로서만이 아니라 그 형벌을 내리는 편에서 볼 때,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요.
절대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의 최후는 반드시 이러할 것이라는
일종의 교육적인 효과도 고려하여,
십자가형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였고(갈라 6,14 참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수치스러운 처형 도구인 십자가를 곳곳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그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고백합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는 오늘, 이렇게 끔찍한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었다는 커다란 역설을 기억하면서
십자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거기에 담긴 심오한 의미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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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십자가 짊어지신 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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