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2015. 1. 7. 오전 4: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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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왜 어머니일까? 그냥 내 어머니이다. 가장 가깝고 죽음에 이르도록 갈라질 수 없는 혈연이다. 넘어지면 달려와 일으켜 주고, 끼니를 해결해 준다. 요술 부리듯 어딘가에서 간식도 꺼내 주고, 철 따라 옷 입히며 잠자리까지 보살펴 준다. 항상 내 곁에 있는 분이다.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하고 불렀을 때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 시간에 밭에서 김매고 있을 모습이 떠오르지만 몰아치는 공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고구마 순을 잔뜩 인 채 사립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엄마!” 하며 부를 때라야 마음이 놓인다. 어머니는 짐도 내려놓기 전에 말한다. “그래, 일찍 돌아왔구나!” 이 말을 다른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두려워하지 마! 엄마 여기 있다.” 하느님도 그냥 하느님이시다. 주님이라는 믿음이 분명하다면 그냥 주님이시다.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을 진정한 주님으로 고백하지 못했다. 악령을 추방하시고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는 능력을 가지셨고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베푸셨지만, 주님은 그런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분으로만 여겼다. 자기 경험 속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유령과 구별이 없어진 것이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말씀을 “뭘 겁내고 그러느냐. 나다. 괜찮다.”로 읽는다. 하느님이 우리의 생각 안에 갇혀서는 유령이 되고 만다. 그것이 두려움의 실체다. 철부지 아이는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엄마를 알아보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모습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이유를 복음서는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매일 미사-


♬ Nada te tur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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