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2014. 12. 27. 오전 4:26:00

글자

 

    오늘의 묵상
    지난가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작품 전시회에 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첫 번째 전시회로, 많은 사람이 그의 유명한 그림 ‘절규’를 직접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림 옆에는 화가가 이 그림의 영감이 된, 그가 프랑스의 항구 도시 니스에서 어느 날 받은 느낌을 적어 둔 글귀가 있었습니다.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함이 엄습했다./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추어 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중략)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불안한 시대에 사람들이 겪는 내적 분열,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표현한 ‘절규’는 그려진 지 이미 백 년도 더 되었으나 마치 오늘날을 예언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그것이 이 작품이 현대인들의 정신적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뒤늦게 명성을 얻은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 그림에 전율하면서도 공감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 곳곳에 불안과 절망과 피맺힌 절규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참으로 어둠이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성탄 팔일 축제’의 시기는 이처럼 어두운 시대에 ‘죽음으로 가는 병’인 절망의 유혹 앞에 선 많은 이에게 희망의 길을 보여 주는 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은 그의 복음의 머리글에서, 어둠은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빛은 생명이며, 생명은 말씀이신 하느님 안에 있다고 전합니다. 또한 요한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에 사신다고 증언합니다. 어둠속에 있는 우리는 이 참된 증언에서 빛을 봅니다. 시시각각 절망과 죽음으로 내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빛은 생명을 줍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난 우리의 삶을 치유하게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온 이러한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신앙인의 몫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Gloria in excelsis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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