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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예수님의 이름을 그리 낯설게 여기지 않습니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현대인이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제법 익숙합니다.
기나긴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축적된 신학, 미술, 건축, 문학, 영화, 철학 등
인류의 문화유산에는 그분에 대한 이야기와 해석들이 가득 담겨 있고,
대중 매체는 사람들이 이를 손쉽게 대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이나 그분의 활동을 수시로 듣고 보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달으려는 노력에 오히려 더 소홀하지는 않을까요?
그분에 대해 익숙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더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문자로 쓰인 법이 올바른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
곧 당신께 행위의 참됨이 달려 있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율법 규정 자체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 여기서 보여 주시는 행적을 통하여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진리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를
‘절대적’ 신뢰로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규정도, 거룩한 성전조차도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고, 살아 계시는 주님 앞에서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유한한 진리가 진리 자체이신 분을 가려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진리 밖에 있다 하더라도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남는 쪽을 택할 것’이라는,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말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을 이처럼 절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은 그분께서 진리 자체이시라는
근본적 신뢰에서 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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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진리의 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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