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2014. 7. 6. 오전 2: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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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성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을 앞둔 어느 날 오후, 모처럼 서울 대신학교의 성당에서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성당에 신부님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또한 그것을 바라보며 기도하던 신학생 시절의 긴 세월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김 신부님 곁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학교에는 신부님의 유해를 찾아 순례하는 사람들 때문인지 유해의 안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거기의 설명 가운데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901년 5월 23일 미리내를 출발하여 오후 1시 45분 용산 신학교에 도착했다. 1902년 6월 23일 유해를 용산 신학교 성당에 정식으로 제대 밑에 안치했다. 1950년 6·25 사변이 일어나자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암매장하였다가 유해의 머리 부분이 경남 밀양으로 소신학생들과 더불어 피난하는 수난을 겪었다.” 김대건 신부님이 하늘나라에 가신 뒤에도 늘 당신이 사랑하셨던 이 나라, 이 겨레와 함께하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신학생 시절, 김 신부님에 대한 저의 인상은 늘 집안의 큰 어르신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당에서 묵상하던 그날은 ‘청년’ 김대건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품에 안고 돌아온 젊디젊은 사제가 몸을 숨겨서야 겨우 조국에 발을 디딜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헤아려 보니 참으로 애잔하였습니다. 『가톨릭 성가』 287번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의 노래’의 2절이 떠올랐습니다.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진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 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낙담하고 체념할 만도 하건만 김 신부님은 희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는 만큼이나 사랑하셨던 자신의 나라가 새로운 길, 올바른 길을 찾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셨고, 언젠가는 주님의 섭리로 그리되리라고 믿으셨습니다. 문초를 받으시고 형장으로 끌려가시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절망적인 상황에서 남기신 신부님의 말씀은, 오늘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부님의 그 깊은 신앙과 순교 정신,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질 역사에 대한 의연한 희망의 모범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낙담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수고의 씨를 뿌리는, 하느님의 영이 깃든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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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14.07.08조회 36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14.07.07조회 35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14.07.06조회 35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14.07.05조회 34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14.07.04조회 35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14.07.03조회 34예수님께서는 때가 되기도 전에 마귀들을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다.>14.07.02조회 34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14.07.01조회 34나를 따라라.14.06.30조회 34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14.06.29조회 34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14.06.28조회 34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14.06.27조회 36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14.06.26조회 38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14.06.25조회 38그의 이름은 요한이다.14.06.24조회 40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14.06.23조회 39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14.06.22조회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