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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습니다.
저녁이 되어 메뚜기가 “우리 내일 또 놀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니?” 하고 물었습니다.
메뚜기가 내일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하루살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놀았습니다.
가을이 깊어져 개구리가 “우리 내년에 또 만나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메뚜기는 “내년이 뭐지?” 하고 물었습니다.
개구리가 내년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었지만
메뚜기는 통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하루를 살다가 죽는 하루살이가 내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 해를 살다가 죽는 메뚜기가 내년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일과 내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만 하루살이의 눈으로는 내일이란 없는 것이고,
메뚜기의 눈으로는 내년이란 없는 것입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의 한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눈과
하느님의 눈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55,8-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부활하면
어떠한 삶을 살게 되는지 알려 주십니다. 사두가이들은 하루살이처럼
‘내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메뚜기처럼 ‘내년’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며, 그분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음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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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부활을 만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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