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특수한 백성

2007. 3. 10. 오전 1:42:30

글자

Saturday, March 10, 2007 Saturday of the Second Week of Lent
First Reading: Micah 7:14-15, 18-20 Responsorial Psalm 103 Gospel: Luke 15:1-3, 11-32

2007 3 10
사순 2주간 토요일
1독서: 미카 7, 14-15. 18-20 화답송: 시편 103 복음: 루카 15, 1-3. 11-32

THE PRODIGAL BROTHER
"The son grew angry at this and would not go in; but his father came out and began to plead with him."-- Luke 15:28

특수한 백성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일렀다.” -- 루카 15, 28

We always hear about the prodigal son, but his older brother was at least as prodigal. The older brother looked good but was just as alienated from his father as the younger brother. The younger brother did not feel worthy to be called his father's son (Lk 15:19). However, the older brother spoke of life with his father as slavery (Lk 15:29). He did not know that everything his father had was available to him (Lk 15:31). The older son felt resentful his father had never given him "so much as a kid goat" (Lk 15:29).
우리는 항상 돌아온 탕자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만 형도 못지않게 방탕했습니다. 형은 착해 보이지만 동생만큼이나 아버지와 거리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루카 15, 19). 그러나 형은 아버지와의 삶은 종살이였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루카 15, 29). 형은 아버지의 것이 자신의 것임을 몰랐습니다 (루카 15, 31).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염소 마리조차 적이 없음에 화가 있었습니다 (루카 15, 29).

Many Christians today are like the older son. We appear to never disobey one of God the Father's orders (Lk 15:29). We are church-goers, good citizens, and hard workers. Our vices are socially acceptable. We look good, but aren't in a good relationship with our heavenly Father. We're not cheerfully serving God but begrudgingly slaving for Him out of fear, habit, or social pressures. Our Father has come out and is pleading with us to accept a personal relationship with Him. Say "Yes" this Lent.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아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명을 한번도 어기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루카 15, 29). 교회에 나가고 선량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나쁜 점이 있다 해도 사회는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하느님 아버지와 관계에 있어서는 별로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기쁘게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습관, 또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마지 못해 주님을 종처럼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이미 분명히 하셨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받아들일 것을 간곡히 청하고 계십니다. 사순 시기, 주님께라고 대답하십시오.

 

★★★
prodigal
낭비하는 (of); 방탕한. “the prodigal son 직역하면방탕한 아들이지만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돌아온 탕자 번역했습니다. prodigal에는 또는 (재물이) 풍부한, 남아도는 뜻도 있습니다. 아들도 동생만큼이나 방탕하게 지낼 있는 환경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alienated 남과 멀리하다, 소원하게 하다, 이간하다의 뜻을 지닌 alienate 과거분사 형으로 쓰여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이다로 번역됩니다.
resentful
분개한; 골을 내는
so much as a kid goat   so much as not, without 함께 쓰여조차도, …까지 , even 의미로 쓰입니다. 본문에서는새끼 염소 마리 조차 번역되겠죠.
never disobey ‘never’ ‘dis’ 부정의 뜻을 가진 단어가 함께 쓰여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한번도 어긴 적이 없는, 순종하는
cheerfully
기분 좋게, 쾌활하게, 명랑하게, 기꺼이
begrudgingly 같은 문장 안에서 cheerfully 대조적으로 쓰이며, 마지못해, 아까운 듯이, 인색하게
has come out
현재완료. 원형은come out”. 문맥상 뜻은, “(입장, 주의, 태도, 진리 등을) 분명히 밝히다.”

personal relationship with Him =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다음 설명은 저희 번역봉사단의 견해입니다.) personal relationship 문맥에 따라 대략 4 가지 뜻으로 그때 그때 다르게 번역하고 이해해야 . (personal 워낙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

 인격적 관계: 예수님의 수난을 통해서 있듯, 하느님은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고 분노하시는 인격적인 분이기도 합니다. , 신성과 인성을 모두 소유하셨기에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합니다.

 직접적 관계: 하느님의 계시 등은 직접적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속시키신 하지만 삼위일체이므로 직접 몸소 대속하신 것입니다.

개인적 관계: 흔히 개신교는 개인적 관계, 가톨릭은 개인적 관계 + 올바른 관계를 강조한다고 합니다. 개신교는성경말씀 강조하는데 비해 가톨릭은 '성경말씀' 물론, 상대적으로 ‘7성사 기성 정통 교리를 더욱 강조합니다

 친밀한 관계: 하느님 아버지 하고 기도하는 데서 보듯, 아버지로 부를 있는친밀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문맥상 personal relationship 친밀한 관계 + 인격적 관계 번역했습니다.

pleading  plead with 사람 for + ()명사 / to + 동사원형 누구에게 for/to 이하를 간청하다, 탄원하다.

★★★

 

 

 

* 이 짧은 묵상글은 "영어로 만나는 오마이 갓" 으로부터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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