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제삼권 제칠장

2005. 9. 23. 오전 12:08:56

글자

제 삼 권  제 칠 장

 

나는 실다이 있는 또 하나를 모르고, 어리석은 사기꾼들이 질문을 할적에 바늘에라도 찔리우듯 움직거려 그들의 편이 되었습니다. 악은 어디서 오느냐? 하느님이 형체를 지니느냐? 따라서 발톱, 머리털이 있느냐? 그리고 아내를 한꺼번에 여럿 두고,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제사하는 자들도 의인이냐는 따위의 물음이었습니다. 이런일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고, 진리에서 어긋나면서 진리로 향하는 듯 보였으니 선이 없는 것이 곧 악이요, 결국 존재하는 것이 아니람을 깜깜하게 모르는 소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눈으로 육체를, 정신으로 환상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어떻게 이를 볼 수 있었겠나이까.

하느님이 신이라는 것, 그에겐 길고 넓은 지체란 없을 뿐더러, 양이 도무지 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양에 있어 부분은 전체보다 적으며, 설사 그것이 한량없다손 치더라도 어느 일정한 공간에 국한되어 있으면 무한보다는 못한 것이며, 이러고 보면 어디나 두루 있는 신이나 하느님 같지 않은 것이 아니오리까.

그렇건만 나는 우리 안에 있는 본모습이 무엇이며, 성서가 하느님의 모습대로(창세 1,27)라고 옳게 표현한 바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진정한 내적 정의마저 몰랐사오니 이의 심판은 인간의 풍습이 아닌 전능하신 하느님의 극히 엄정한 율법에서 좇아 오는 것으로 지방과 시대를 따라 그 지방, 그 시대의 습속이 틀잡혀지기는 실로 이를 말미암음이요, 이것은 또한 언제 어디서나 변함이 없어, 여기서는 이렇고 저기선 저렇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세, 그리고 다윗이며 하느님의 입으로 기림을 받는 모든 이들이 의인이 되는 것도 이 법을 좇음이거늘 멋모르는 자들이 그들을 죄인이라 심판하오니 인간의 방식대로 판단함이요, 제 습속 따라 인류 전체의 하는 노릇을 재량함이로소이다.

이는 마치 몸의 어디에 무엇이 맞는지, 무장을 모르는 사람이 정강이 받이를 머리에 덮어쓰고, 투굴랑 발에 신고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거와 같사오며, 오후부터는 쉬기로 되어 있는 날에 오전에 약속한 상품을 내주지 않는다고 노발대발하는 자와도 같은가 하오면, 또 비유하건대 누가 어느 집에서 술심부름꾼에게 금지된 것에 한 종이 손대는 것을 보거나, 식탁 앞에서 말아야 할 일을 구유 뒤에서 하는 것을 보고는 같은 방, 같은 집안에서 자리마다 사람마다 맡은 일이 똑같지 않다고 성내는 거와 같사옵니다.

이와 같이 의인들이 저 시대에 할 수 있던 무엇을 이 시대의 의인들이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고 성내는 자들도 마찬가지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때 그때 이유가 있어서 그때 사람에겐 그것을, 이때 사람에겐 이것을 명하시어도 정의 그것에 복종하기는 둘이 다 매일반인 까닭이옵니다. 더구나 같은 날, 같은 집, 같은 사람이라도 식구 앞앞이 맞는 일이 따로요, 아까는 해서 무방하더 일이 시간이 지난 뒤엔 그렇지 못하고, 저 구석에서 허용, 명령된 일이 이 구석에선 금지, 처벌되는 것쯤 저희들도 잘 보고 있는 사실이옵니다.

그렇대서 정의가 여럿이고, 또 바뀌는 것이오리까? 아니오이다. 그것은 정의가 올라앉은 시간일 따름, 시간의 흐름이 같지 않사오니 그는 시간인 까닭이옵나이다.

지상생활이 짧다란 인간인지라,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옛 세상, 딴 민족의 경위를 몸소 체험한 바와 부합시킬 수 없는 반면에 한몸, 한날, 한집에서는 무엇이 어느 식구, 어느 떄, 어느 구석, 누구들에게 적당한지를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지낸 일을 그르다 하고, 이젯 일만 옳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줄을 모르고 엄벙덤벙 산 것이 그 당시의 나였었고, 사방에서 내 눈에 밟히는 것들이 그런 따위였으나 나는 보지 못한 그대로였습니다.

그 시절, 나는 시를 지어 읊었습니다만 각운을 아무 데나 붙여서는 아니되고, 여기는 이 운, 저기는 저 운, 이런 식으로 시 한 수에도 자리마다 운이 달라야 된다는 것이엇습니다. 그래도 내가 지어 읊는 그 기교만은 여기 따로, 저기 따로가 없이 모두가 한타령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착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받드는 정의가 하느님의 명하시는 모든 것을, 보다 더 드높고 뛰어나게 다 지니고 있고, 그 어느 부분에도 변함이 없을지라도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나누고, 명하심을 따라 모두가 일매지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러므로 까막눈인 나는 성조(聖祖)들이 하느님이 명하시고 비춰주시는 대로 현재엣 일들을 쓸 뿐 아니라, 하느님이 열어 보이시는 대로 미래를 미리 말하는 것조차 쳐서 말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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