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삼 권 제 육 장
이러구러 나는 거만하게 미쳐 날뛰는 사람들 (역주: 마니교도들), 너무나 육체적인 말장이들한테 빠지게 되었는데, 그들의 입안에는 당신과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빠라끌리뚜스 성령의 이름자를 뒤섞어 얼버무린 끈끈이와 악마의 덫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름들이 저들의 입에서 (역주: 마니교도들이 그리스도교의 용어를 제것같이 사용하나, 그 의미 내용은 아주 엉뚱하였음) 떠나지는 않았지만 혀로 하는 소리, 군소리일 뿐, 마음은 참에서 비어 있엇습니다.
말로는 줄창 “진리 진리” 하고, 내게도 으레 그랬지마는 언제한번 그들에게 진리가 있들 아니했고, 오히려 거짓을 말하기는 진실로 진리이신 당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당신의 피조물, 우주의 원소들에 대해서까지 그러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참을 말하는 철학자들마저 나는 당신 사랑 까닭에 뒤로 두어야 했습니다, 지선이시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이신 내 아버지여.
아, 진리 진리! 당신을 그들이 허구헌 책들에 한소리로 자주, 또 가지가지로 내게 속삭여줄 떄, 내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사무치게 당신을 그려 애타하더이까 (역주: 아구스틴에 있어 진리는 차가운 명상의 대상이 아니다. 얻어서 누려야 될 사랑의 대상인 선이요, 행복이다. 심오한 주지주의와 신비주의를 혼연일체한 것이 그의 특징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가 당신을 굶주리던 나에게 당신 대신 해와 달 (역주: 낮이면 해를 향하고, 밤이면 달을 향하여 빌던 마니교도들은 성부는 광명 안에, 성자는 태양 안에, 그리고 달 안에는 그의 지혜가 깃든다 하였다) – 아름다운 당신의 것들을 올려내는 쟁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당신의 것들일 따름, 당신은 아니었고, 맨처음 된 것들도 아니었습니다. 물체가 비록 하늘에 잇고, 빛나는 것이어도 이보다 먼저 당신이 지으신 것은 신스러운 것들이기에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굶주리고 목말라하던 것은 저 먼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변하심도 없고, 변천의 그림자도 없는” 오, 진리 당신뿐이었습니다. 아직도 내게는 저 쟁반들 위의 찬란한 환상들이 올려졌었습니다 – (허나 눈으로 마음을 속이는 거짓스런 것들보다 차라리 눈에나마 진실된 태양을 사랑함이 더 나을 것이엇습니다.)
나는 그것들이 당신인 줄 알고 먹었습니다. 물론 – 있으신 그대로의 당신을 입으로 맛볼 수 없고, 당신은 그런 따위의 실상 없는 가상이 아니시므로 – 아주 달게 먹진 못했삽고, 그로 살로 가지 않았을 뿐더러, 덜고만 허기증이 더해갔습니다.
꿈속의 음식이 생시의 음식에서 다를 바 없으나 잠자는 사람이 그로써 길러지지않음은 자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것들은 – 지금 내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 어느 모로나 조금도 당신과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유형한 꼭두, 허망한 물체로서 이보다는 차라리 육안으로 보는 실체가 – 즉 하늘엣 것이든 땅엣 것이든 – 더욱 확실하고, 그것은 또한 길짐승, 날짐승까지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보는 것이고, 그러지 그려보는 것보다 한결 확실하며, 그리고 또 그려봄이 확실하기는 전혀 있지도 않은 것들을 그것들(상상)로써 더 크고 무한하다고 추측함보다 더한 것입니다. 그즈음의 나는 이런 환상을 먹고 살았지만 살로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하오나 내 사랑이여 – 그 안에 나 다하여짐으로써 굳세어지는 – 당신이여, 당신은 제아무리 하늘에 있다기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물체가 아니시고, 거기 보여지지 않는 그런 것도 아니신 당신은 그것들을 만드시고, 그 따위를 가장 높은 것으로 간주하지도 않으심이니이다.
이럴진대 당신은 나의 환상과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물체의 꼭두에서 그 얼마나 멀으시오니까. 존재하는 물체의 상은 꼭두보다 확실하고, 이에서 더욱 확실한 것이 물체이오나 당신은 이런 따위가 아니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육체의 생명이 되는 – 그러기 육체보다 육체의 생명이 더 위요, 확실하오나 – 영혼도 아니시고, 오직 영혼들의 생명들의 생명으로서 스스로 살으시사 변함이 없으신 내 영혼의 생명이시니이다 (역주: 아마도 쁠로띠노스에게서 얻은 사상으로, 아구스띤이 자주 쓰는 말. 그의 ‘시편주석’은 말한다. “영혼이 떠나면 육체가 죽는 것처럼 하느님이 떠나시면 영혼이 죽는다.”).
그렇다면 그즈음 나의 어디에 계셨길래 나는 당신한테서 멀리 멀리 떠돌아다녔고, “내가 깍지로 먹이던 도야지의 깍지까지 거절을 당한 것이더이까”(루가 15,16). 문법학자와 시인들의 얘기라야 이런 거짓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더이까. 그래도 시와 노래와 “날으는 메데아(역주: 희랍신화에 나오는 마술사. 콜기데왕의 딸로 요술이 능했다)”가 오히려 – 본시 있지도 않고, 믿는 자를 그리 아는 자들을 죽일 따름인 – 그 암흑의 동굴 따라 그려낸 다섯 가지 원소보다는 훨씬 더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나 노래는 실속있는 고깃국이 될 수 있고, 날으는 메데아는 내가 읊기는 할지언정 긍정하지도, 노래를 들어도 믿지도 않았지만 저것들만은 내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으 아으, 어떠한 층대를 밟아서 나는 지옥의 심연으로 끌려들었나이까? 그즈음 나는 주여 – 당신께 하소할 줄 모르던 나를 어여삐 여기신 당신께 고백하오니 – 진리가 아쉬움에 아득바득 허덕이며 당신을, 당신을 찾되 나를 짐승보다 뛰어나게 하신 그 영혼의 지성으로 하지 않고, 육체의 감각으로 하였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가장 안에 그윽히 있으시고, 가장 높은 내 것 위에서 더 솟아 계시었습니다.
말하자면 살로몬의 수수께끼 – 문간 자리를 깔고 앉아 “감추인 빵을랑 즐거이 자시오. 다디단 물을랑 몰래 마시오”라 하는 슬기 아쉽고, 주제넘은 그 여자(역주: 마니교. 그에 흘려서 살기 19년, 즉 374년에서 383년 까지)를 만난 셈이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호렸습니다. 육체의 눈안(역주: 아구스띤의 영혼은 눈 안에만 있는 듯, 하느님마저 그에겐 물체의 영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령적 실체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마니교의 물질주의적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나 밖에 살며 눈으로 삼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내 속으로 되새기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