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37. 마리아의 노래

2005. 9. 1. 오전 8:56:11

글자

37. 마리아의 노래 (루가 1, 46-49)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 니다.

마리아는 석 달 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해설] 이 내용을 음미하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이날은 마리아께서 입으신 영광을 기념하는 날이다. 즉 마리아께 의미를 두는 날이다. 또한 이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개개인의 바램은 그분을 닮아 그분처럼 되는 것이다. 우리 역시 부활때 육체와 영혼이 위로 들리게 될 것이다.

 

가장 설명이 어려운 세 번째 관점은,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될 터인데, 마리아의 승천은 우리가 반드시 알고 체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제한된 인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폭발이다. 마리아의 승천이 주는 메시지는 겸손해지는 것이 안전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비천함을,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안전하다.

 

마니피캇에서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비천한 종을 돌보셨다.고 노래하신다. 이것은 한낱 신심 깊은 발언이 아니었다. 심원한 체험과 지혜에서 우러난 고백이다. 마리아는 이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알고 계셨다. 그분은 그 점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것이 자기 기쁨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깨달으셨다. “…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그분은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의 텅 빈 공백 한 가운데서 철저한 안식을 누리셨다.

 

사람은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 즉시 하느님의 창조활동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피조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짓된 자아를 말끔히 씻어낸다는 것, 결백해진다는 것을 말한다. 성 토마스는 말한다. 인간의 영혼은 하느님을 수용하는 어떤 능력이다. 이 능력이 물질로 이루어진 몸에 합체되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을 모양새만 있고 텅 빈 공백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리아의 승천은 그 모양새를 채우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성모님의 공간은 곧 하느님의 공간이 되고, 하느님의 공간은 성모님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정도 만큼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실 수 있다.

 

주님께서 친히 요한복음에서 계시하시다시피 당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시는 삶의 모습도 바로 이런 것이다. 영원한 말씀은 아버지께로부터 출현하지만 갈라짐은 전혀 없다. 그분은 세상으로 들어오지만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버지 품안에서 완벽한 안식을 취하신다. 그분은 행동하지만 항상 아버지 안에 거처하신다. 예수, 즉 사람이 되신 말씀께서는 우리에게도 행동하되 우리 근원에 대한 자각을 잃지 말라도 당부하신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요한 6,57)

 

예수께서 당신의 근원이신 아버지와 합일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근원이신 예수와 합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모께서 실천하셨고 지금 그분의 승천이 주는 은총을 통해 우리와 나누고 계시는 바로 그 방법대로 하면 된다. 곧 우리의 비천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댓글 2

  • 2005년 9월 5일 오후 10:31

    찬미예수님 만세가 총무님을 복되다 하리니 주께서 총무님에게 큰 일을 해주신덕분입니다.주님을 두려워하는 총무님에게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 마니피캇 이 기도는 제가 참 좋아하는 기도이며 날마다 드리는 기도인데 은혜가 넘치는 기도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2005년 9월 5일 오후 11:23

    눈썹달님, 쑥스럽게 써놓으시니 당신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이몸에게 일격 먹이시지 않을까 두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