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교회의 표상으로서의 순결한 창녀'

2005. 8. 27. 오후 11:50:24

글자

 

' 교회의 표상으로서의 순결한 창녀'

 

 

 

라합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녀이다.(여호 2장).

여호수아가 요르단강 건너편을 정복하기 위하여 예리고로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들을 숨겨주며 정탐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여인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창녀의 도움에 힘입어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고를 점령하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창녀 라함의 충성스러운 마음 위에 세워진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라합은 이스라엘 건국의 일등공신인 셈이다.

 

신약성서의 막달레나도 창녀였다.

이 여인은 예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창녀생활을 청산하고 죽을 때까지 예수를 따른 여인이었다.

 

이런 예수를 두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가 창녀, 세리,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핀잔을 퍼부었지만, 실제로 예수는 이런 하찮은 사람들을 불러모아 교회를 세우셨다.

말하자면 예수의 공동체는 죄인들의 집단이었다.

 

훗날 교부들은 교회를 이들 창녀에 비유하여 순결한 창녀라고 불렀다.

온갖 인간들이 다 모인 교회의 모습이 더러는 얼룩지고 더러는 형편없어 보일지라도 그 심장부에는 이런 인간들을 불러모으는 하느님이 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교회는 인간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공동체로서 실제로는 거룩함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이 하느님을 만나뵈올 수 있다.

그리고 교회는 자기의 이 연약한 모습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의 이 거룩한 구원의 의지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

 

막달레나가 창녀에서 성녀로 변신한 것은 막달레나 자신이 더러운 창녀생활을 벗어버리고 거룩한 삶으로 전환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순결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예수의 거룩한 마음 때문이었다.

예수의 이 마음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막달레나에게 기도한다.

"성녀 막달레나여, 위를 위하여 빌으소서" 라고.

교회가 거룩한 것은 그 마음 깊은 곳에 숨어 계시는 예수의 이런 마음 때문이다

만신창이가 된 듯한 이 세상 이 시대를 그래도 우리가 거룩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하는 것도 이 세상 이 시대 한복판에 교회가 서 있고, 또 예수의 이런 거룩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거룩하지 못한 세상, 어지러운 이 시대의 깊은 곳에서 예수는 그 안의 인간들을 애절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이 마음을 우리는 교회에서 만날 수 있고, 이 거룩한 교회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 이 시대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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