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32.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

2005. 8. 24. 오전 8: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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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 (마태 24, 45-51)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구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 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해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이 가야할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신앙, 특히 알지 못하는 곳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름에 흔쾌하게 따라나서는 관상적 신앙의 전형적인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바로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이 비유는 불확실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영적 여정은 일정을 미리 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시사함으로서, 우리가 깨어 지키고 기다리면서도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의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내해야 하도록 하고 있다. , 이 비유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고, 여정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이며, 가능하다면 우리가 변모하여 합일을 이루는 정확한 날짜가 언제인지를 알고자 하는 우리의 고질적인 욕구를 엄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그분이 마침내 도착하실 때 우리가 지체없이 문을 열어드리고 그분의 현존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불시에 들이닥치는 침입자로 표상하신다. 이 비유는 단순히 육체적인 죽음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불시에 우리 삶 속에 들이닥쳐 갑자기 우리를 사로잡으시는 여러 순간들도 상징하고 있다. 그분은 때로 우리가 한없이 가라앉고 있는 시간에 찾아오시곤 한다. 불안과 분노, 쓰라림, 음탕한 생각, 버림당한 느낌이 한창 고조되고 있을 때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에 찬 현존이 느껴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싶어진다. 그래, 대체 무엇이 문제냐? 무엇 때문에 속상해 하고 있느냐? 날이 꽤나 어두워져서 네가 날 알아보지 못했구나.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려라. 사람의 아들은 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오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때가 바로 가장 어두운 한밤중이다. 주님은 우리가 애원한다고 해서 돌아오시지 않는다. 그분은 당신이 봐서 우리가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되는 그때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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