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제이권 제삼장

2005. 8. 21. 오전 10:04:02

글자

제 이 권  제 삼 장

 

그해 공부는 중단이 되었습니다. 문학과 웅변술을 배우고 있던 근읍 마다우라(역주: 그의 고향 따가스떼에서 24킬로 떨어진 곳)에서 돌아온 나에게 훨씬 먼 까르타고에로의 여비가 마련되는 중이었습니다. 그것은 따가스떼에서도 그리 넉넉지 못하던 아버지의 재력(역주: 고백록에 종, 계집종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다지 가난한 편이 아니었고, 중류계급에 속하였음.)보다도 그의 열성에서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지금 누구한테 이야기하고 앉았답니까?

하느님, 말할 나위 없이 당신께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당신 곁에서 내 겨레, 어쩌다가 이 변변치 못한 글을 읽게 될 사람들 일부분에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나나 이것을 읽는 그 누구나 아득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는다 함을 생각하자는 것이옵니다.

당신 귀에 가장 가까운 것 고백하는 마음, 그리고 믿음을 말미암은 삶보다 더한 것이 또 무엇이오리까.

그즈음 멀리 유학길을 떠나는 자식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집안의 힘에 겨웁도록 마련해주는 내 아비를 추켜서 칭송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많아도 자식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비가 당신 앞에서의 내 성장과 깨끗한 품행에다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신언서판을 갖추라는 것 뿐, 차라리 당신엣 가꿈에는 거친 놈이 되라는 셈이었습니다. 당신의 밭, 내 마음의 오직 한 분 참되고 좋으신 임자시여, 하느님이시여.

그 열여섯 살 나던 해,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놀게 되었을 적에 학교를 완전히 쉬고, 부모들과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만 정욕의 가시덤불이 내 머리에 뻗어올랐어도 뽑아줄 손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아비가 목욕탕에서 자칫하면 큰일날 사춘기의 젊은 내 육체를 보고는 어느새 손자라도 본 듯이 기뻐하면서 어미에게 알렸던 것입니다. 그 기쁨이야말로 사사스럽고 밑창으로 기울어지는 아욕의 보이지 않는 술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제 창조주를 잊고, 당신의 피조물을 당신 대신 사랑한 그 잔뜩 취함이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어미의 가슴에 이미 당신의 궁전과 당신 거룩한 처소의 밑절미를 착수하시었으니 그는 벌써 예비신자였고, 그것도 오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직 믿음을 갖지 않은 나이었지만 당신께 얼굴 아닌 등을 대고(예레 2,27) 걷는 빗근 길을 내가 걸을까 하여 내 어미는 거룩한 두려움에 오들오들 덜고 있었습니다.

철없던 나! 내 주여, 나 당신을 떠나 멀리 갔었거늘 당신이 말없으시었다고 감히 이르오리까. 정말 그때 당신이 나한테 침묵만 지키고 계셨더이까. 그렇다면 당신을 믿던 내 어미를 통하여 내 귓전에 노래하신 그 말씀들이 당신의 것 아니고 누구의 것이었답니까.

물론 내가 실행하리 만큼어느 한 마디가 마음속에 젖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떠오릅니다만 어미는 행여 내가 음행을 범할세라, 누구의 아내를 간음할세라, 제발 그러지 말라고 혼자서 여간 가슴을 태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훈계가 내게는 여자스럽게 보여져서 고분고분하는 것이 쑥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게 모두 당신이 하시는 일이었건만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당신은 침묵하신 채 그만이 말하는 줄로 여겼습니다. 실상 당신은 그를 거쳐 내게 말하시고, 그이 안에서 나한테서, 그의 자식, 당신 종의 자식, 바로 당신 종놈한테서 업신여김을 당하시던 것이었습니다. 아둔한 채 나는 청맹과니로 곤두박질치는 것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같은 또래들이 저희네 죄악을 자랑삼아, 더구나 추잡할수록 더 우쭐대면 얘기하는 것을 듣고는 파렴치 모자람을 부끄러이 여기고, 음행을 실천한 뿐더러 기리기까지 즐겨했던 것입니다. 못된 짓처럼 흉잡힐 것이 무엇이리까?

흉잡힐까 두려워 나는 못된 짓을 더 하고, 무엇이 빠져서 방탕아들과 겨눌 수 없을 성싶으면 하지 않은 짓까지 한 듯이 꾸며서, 깨끗할수록 못난이, 조촐할수록 얼간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보소서. 나 어떠한 벗들과 함께 바빌로니아의 거리와 거리를 싸다니며 그 흙탕 속을 마치 관계(官桂)와 향유 속인 양 뒹굴고 있었는지.

그런 바닥으로 더욱 쑤셔박히도록 보이잖는 원수는 내게 발길질을 하여 끌어들이는 것이었으니 내가 호락호락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바빌론(역주: 속세를 바빌론에 비기는 것은 흔히 잘 쓰는 저자의 표현이다.)의 복판에서 몸을 피하여(예레 51,6) 그 둘레를 서서히 걷고 있던 내 어미도 몸을 깨끗이 가지라고 타이른 그였지만 자기 남편이 나를 들어 말한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왕 몸에 번져서 앞으로도 위험한 것을 송두리째 끊어버릴 수 없을 바에야 굳이 부부애란 구속으로 억제할 것이 없다고 느낀 까닭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미가 관심을 두지 않았음은 내 희망이 아내라는 칼에 씌워질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희망이라야 어미가 당신께 거는, 올 세상의 것이 아니었고, 오직 학문의 희망, 말하자면 그것을 내가 터득하는 것만이 양친이 열망하던 것으로, 아비는 당신 대하여 거의 아무것도, 나 대해선 헛된 꿈을 생각하기 때문이었고, 한편 어미는 그런 학문이 당신을 얻는 데에 장애물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앞으로 쓸모가 있으리라고 믿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회상하는 대로는 내 부모의 행동이 그랬던 것만 같사옵니다.

하롱하롱 놀기 위하여 내 굴레는 절제있는 엄격의 도를 넘어 갖가지 허랑한 감정으로 늦추어졌고, 이리하여 주여, 당신 진리의 맑고 깨끗함을 어둠이 사뭇 내 앞에서 가로막아서 내 죄악은 흡사 비계에서처럼 돋아나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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