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 권 제 이 장
허나 도대체 그 스스로 즐긴다 함이 무엇이더이까?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더이까?
그렇다고 마음에서 마음에로의 한도가—우정에 있어 경계가 분명하듯—그렇게 지켜지지는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진흙 같은 육욕과 사춘기의 용솟음에서 안개가 자옥이 일어나 내 마음을 흐리우고, 어둡게 해주는 바람에 사랑의 맑음을 흐리터분한 정욕 (역주: ‘성아구스띤’의 저자 빠삐니는 이 표현에서 아구스띤이 남색을 자백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즈음 아구스띤의 생활이 깨끗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는 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요청되지 않는가.)에서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는 흐리마리 내 가냘픈 나이에 열을 뿜고, 정욕의 낭떠러지로 끌어가서는 죄악의 깊은 못 속으로 잠그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분노가 나 위에 세차갔어도 나는 그런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죽어야 할 내 운명의 쇠사슬의 철그렁 소리에 나는 귀가 메어—이는 교만했던 내 영혼의 벌—멀리 멀리 당신을 떠나서 갔어도 당신은 그냥 계시고, 사욕에 흔들리고 들까불리고 나둥그러져 들볶이어도 당신은 잠자코 계시었사오니, 아으, 더디신 내 즐거움이시여! 침묵만 지키시던 그때인지라, 나는 자꾸만 당신 멀리 메마른 비애의 씨앗으로 씨앗으로 가고 있었나이다. 오만스런 허탈, 불안한 고달픔 (역주: 사춘기의 증후. 사람이 조숙하기 마련인 남방에서 오히려 아구스띤은 늦은 편이었다.) 속에.
그즈음 내 비참을 조절해주는 이 누구이더이까? 새로 갈마드는 피조물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바르게 쓰도록 마련해주고, 그 맛깔스러움에 표말을 박아두어서, 달리는 가라앉지 못할 내 청춘의 물결이 결혼의 언덕으로 끓어오르게 해주었던들 주여, 당신의 법이 명하는 대로 자식을 낳는 목적으로 만족했을 것입니다—당신 지당에서 내침받은 가시(역주: 정욕)조차 부드럽게 따뜻한 손길을 펴실 수 있기에 죽을 인간의 후예를 만드시는 당신이 아니시오니까.
실로 우리가 당신한테서 멀리 있을 지라도 당신 전능은 우리에게서 멀지 않으심이니이다.
나는 진정 당신 구름들(역주: 사도들과 성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육체의 곤란을 당하리니 나는 너희를 애석히 여기노라.” 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음이 남자에게 좋으니라.” “아내가 없는 자는 어떻게 하면 주께 의합할까 하고 주의 일을 생각하되, 아내가 있는 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에 맞을까 하여 세속 일을 생각느니라” (1고린 7,28).
이 말씀들에 정신을 똑똑히 차렸었던들 나 차라리 천국을 위한 고자가 되어(마태 19,12) 당신의 포옹을 복되게 복되게 기다렸을 것이로소이다.
그렇건만 가엾어라, 나는 당신을 저버리고는 욕정의 충동을 따라 몸이 닳아서 당신 계명을 어기며, 당신의 채찍을 피하지 못하였사오니, 사람이면 누가 이를 피할 수 있으오리까?
미상불 당신은 항상 내 곁에 계시면서 인자로이 잡도리하시고, 옳지 못한 내 흥미 위에 쓰디쓴 거리낌을 뿌리시와 거리낌없는 즐거움을 찾게 하시었고, 이리 되는 때 당신 이외엔 그 무엇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당신 이외엔—주여, 그러하옵니다. 당신이야말로 괴로움 주시는 체 엄명하시고, 때리시며 낫우시고, 죽이시면서 우리를 당신 떠나 아니 죽게 하시나이다. 내 육체의 나이 열여섯 되던 해 나는 어디 있었으며 당신 궁궐의 환락을 떠난 귀양살이가 얼마나 오래더니이까. 인간의 파렴치 딸 좋아도 당신 법으로 좋지 아니한 정욕의 광란이 나 위에 홀을 쥐어, 나는 그에게 두 손을 다 들어버린 그 시절이 아니었나이까.
내게 가까운 이들조차 망해가는 나를 결혼으로 붙들어줄 생각은 없이, 다만 마음을 쓰는 일이라곤 누구보다도 뛰어난 말솜씨와 설득력을 배우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