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30. 첫째 가는 계명

2005. 8. 22. 오후 1:21:27

글자

30. 첫째 가는 계명 (마태 22, 34-40)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영혼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비슷하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해설] 거짓된 자아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우리의 힘이 갖가지 욕망으로 분산되어 있다면 이 계명은 지키기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쨌거나 이것은 우리가 회심한 첫날부터 준수할 수 있는 그런 계명이 아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 좀더 분명하게 말해서, 우리가 행복을 지향하는 감정적 프로그램들의 영향을 받고있는 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이 계명이 요구하는 만큼 실천해 나갈 수 없다.

 

예수께서 이 젊은 율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구약성서의 첫째가는 계명을 이해하는 그의 추상적인 깨달음이 옳다는 것이요, 만일 그가 그 길을 추구한다면 쾌락과 권력과 안정에 매달리는 거짓 자아의 가치관에서 점차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는 깨달음으로 이행한다. 그런 움직임과 함께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능력이 생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 현존의 신비에 접근함으로써 다른 사람 안에 계시는 하느님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 위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특징짓고 있는 새로운 계명은 율사가 지녔던 통찰력을 한 단계 더 들어 높인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개성과 독자성, 인격적 특성, 이기적인 성향, 개인적인 경력을 포함하여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이런저런 모습을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이요, 바꾸어 말해서 저마다 허물이며 견디기 힘든 습성과 터무니 없는 요구, 대책없는 성격을 지닌 있는 그대로의 우리 이웃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계명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러니까 그들의 변화를 바라는 털끝만한 원의도 없이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나름대로 개성을 지닌 이웃들을 사랑하는 일, 바로 그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이었던, 조건없는 사랑이라는 적극적인 교훈이다. 이것은 거짓된 자아를 벗어 던지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예수 친히 보여주신 자기 수련법이다. 이는 우리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부터 꾸준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자기 수련법을 인격적인 모욕과 무례와 박해는 물론 심지어 죽음의 순간까지도 확대 적용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온전히 몸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명확하게 확인시켜주는 계명이다. 하느님 나라에 몸담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자신을 내맡긴 채 우리에게 삶의 방법을 알려주는 그리스도의 계시가 세상에서 이어져 나가도록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젊은 율사에게는 결여되어 있던 통찰력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통찰력을 당신의 유언이자 계약으로 제자들에게 제시하셨다.

 

거짓된 자아를 벗어던지는 일은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이것이야말로 꾸준히 지속시켜 나가야 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줄기차게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자비를 본받고 전수하여야 한다.

댓글 1

  • 2005년 8월 23일 오전 9:57

    하느님사랑은 머리로만 그리는 관념적 사랑만이 아니고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꾸준히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실현 되어야지 조금씩 더 사랑에로 근접하게 만들고 자라나게 만드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