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34. 달란트의 비유

2005. 8. 26. 오전 9:14:41

글자

34. 달란트의 비유 (마태 25, 1-13)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그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달란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두 달란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 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 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해설] 이 비유의 원 메시지는 윤리적인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이 세 번째 종을 단죄하고 징벌하는 이유는, 이 종이 자신에게 맡겨진 돈으로 윤리적인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창의성과 적극성을 발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은 종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자신이 나누어 준 재산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불려 나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세 번째 종은 주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주인에게서 받은 한 달란트가 자신의 능력에 비해 너무 적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아니면 혹시라도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한 때문인지, 그것을 안전한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다시 주인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제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무엇을 가르치시고자 하는 지 분명해졌다. 하늘나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을 고정되고 정체된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율법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도 같은데, 율법의 근본정신을 더욱 완성시켜나가는 일은 제쳐놓고, 그 세부사항만을 철저히 지키고 보존하는 일에만 주력한다면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율법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주신 시간과 건강, 지성과 재능, 자녀와 재물, 사랑할 수 있는 능력 등은, 갖가지 은혜를 잘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묵혀 두었다가 그대로 그분께 돌려 드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자유로운 인간으로 창조하셨다. 우리가 실패할까 두려워, 또한 그분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심판관으로 생각하여 우리 자신에게 맡겨진 그분의 달란트를 감추어 둔다면, 책망 정도가 아니라 매우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비유의 세 번째 종은 받은 것을 고스란히 보존하려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과거의 잘못된 상식과 인습에 구애됨 없이 과감히 투자하고 과감히 행동하기를 바라신다. 실수할까 두려워 하느님께 받은 재능을 묻어두는 일은 우리에게 창의성과 자유와 적극성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달란트는 현대에 와서 재능, 인재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이 달란트에 관련된 비유가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 안에 다 같이 등장한다. 두 복음 저자는 이 비유에 각각 종말론적인 요소와 그리스도론적 요수를 부여하면서, 마지막 결산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의 의무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판단하시는 각각의 능력에 따라 그분에게서 귀중한 선물을 받는다. 이 선물은 그분에게 속한 재산으로서 언젠가는 그분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 그것은 예수 당대의 유다인들이 그토록 자랑삼았던 율법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 시간이나 좋은 환경, 부와 명예, 지위와 권력, 자녀와 배우자, 학식과 지혜,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밝은 성격, 미모와 건강 등일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다양한 선물을 각 사람에게 주시며 바라시는 바는, 그 선물을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만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낡은 인습과 굳어진 제도에서 벗어나서, 그분의 선물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인간의 생명과 온 누리를 보다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를 원하신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능력에 알맞게 주어진 선물일진대 우리가 그 선물을 가꾸는 데 최선을 다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내놓는 결과의 양이나 질에 상관없이 우리의 노력을 귀한 값으로 거두어 주실 것이다. 때로는 그분을 실패나 실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시는 무서운 분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선물을 활용하는 데 있어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투자하기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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